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546
한자 扶餘 客舍
이칭/별칭 부풍관,백제관,객사,관북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관북리 28-4]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안승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69년연표보기 - 부여 객사 건립
현 소재지 부여 객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관북리 28-4]지도보기
원소재지 부여 객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관북리 28-4]
성격 객사
정면 칸수 3칸[정당]|3칸[동서익실]
측면 칸수 2칸[정당]|2칸[동서익실]
소유자 부여군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부여현 관아의 객사.

[개설]

부여 객사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개항기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다. 각종 의례를 행하거나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이 지방에 머물 때 사용하던 숙소였다. 부여 객사는 ‘부풍관(扶風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현재는 ‘백제관(百濟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객사 내부에는 1880년(고종 17) 중수하면서 김복현이 기록한 『부풍관중수기』가 보존되어 있다.

[위치]

부여 객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관북리 28-4] 부소산 아래에 있다. 부여 객사의 동쪽에는 부여동헌, 부여 내동헌, 도강영당이 있다.

[변천]

부여 객사는 1869년 건립되었고, 1880년 중수되었다. 일제 강점기 보통학교 교사, 부여고적보존회 진열실, 조선총독부박물관 부여분관 진열실 등으로 이용되었다. 광복 후에는 국립부여박물관의 유물전시실로 사용하다가 1985년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중수되었다. 『여지도서』에는 22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형태]

부여 객사는 솟을지붕으로 건립되었는데, 중앙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정당을 한층 높게 세웠고, 정당의 좌우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동서익실(東西翼室)이 각각 있는데 여기에는 안쪽 후면으로 1칸씩의 온돌방이 설치되어 있다. 백제 시대 장대석과 면석으로 축조한 기단 위에 역시 백제 시대 주춧돌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정당은 출목(出目)이 없는 2익공식 공포(二翼工式栱包)로 되어 있으나, 동서익실은 초익공(初翼工) 계통의 기법을 따랐다. 정당 미간(楣間)에는 화반(花盤)[주심도리 및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1개씩 배치하였으나 중앙칸만 화반 대신 이익공 공포형을 두고 있으며 쇠서[牛舌]에 봉황머리를 조각하였다. 정당의 지붕은 단층 맞배지붕이며, 동서익실은 단층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현황]

부여 객사부여동헌, 부여 내동헌과 함께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객사는 관아 시설 중 가장 위계가 높은 시설로 부여 객사는 조선 시대 관아 연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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