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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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立巖集板刻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충절로2631번길 60-10[모리 29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10월 17일 - 민입암집판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4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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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민입암집판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민입암집판각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민입암집판각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충절로2631번길 60-10[모리 290] |
성격 | 목판 |
재질 | 목재 |
크기(높이,길이,너비) | 515㎝[가로]|17㎝[세로] |
소유자 | 사유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모리 여흥 민씨 입암집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는 입암 민제인의 시문집을 새긴 조선 후기 목판.
[개설]
민제인(閔齊仁)은 자는 희중(希仲), 호는 입암(立巖)이며,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1520년(중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제학,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헌, 평안도 관찰사, 형조판서, 병조판서, 의정부 우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명종 초 을사사화가 발생하였을 때 대사헌과 호조판서를 지내면서 윤임 등을 몰아내는 데 역할을 하였다. 민제인의 저술로는 『입암집(立巖集)』 6권,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이 있고, 박세무와 함께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입암집』은 6권 3책으로 이루어졌으며, 임진왜란 이전에 초판이 간행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지고, 인쇄본 또한 전하지 않는다. 1610년(광해군 2)에 민제인의 손자 민여임(閔汝任)이 다시 간행하였고, 1669년(현종 10)에는 5대손 민저동(閔著童)이 송시열이 쓴 신도비문을 부록으로 추가하여 재간행하였다. 1736년(영조 12)에는 7대손 민응수(閔應洙)가 누락된 시문 및 을사사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여 간행하였다. 권두(卷頭)에는 유근(柳根)의 서문이 실려 있으며, 권1~5에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민입암집판각(閔立巖集板刻)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모리 여흥 민씨 입암집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다. 1995년 10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4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형태]
민입암집판각의 목판은 총 135매이며,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씨는 앞면에 이어 뒷면에도 새겨져 있으며, 크기는 판각이 가로 512㎝, 세로 17㎝이다. 한 행에 16자, 총 9행으로 되어 있다.
[특징]
민입암집판각의 대부분은 검은색으로 보이는데, 중간에 밝게 보이는 판각은 분실로 인해 다시 새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여흥 민씨 입암집 장판각 벽면에는 ‘입암집 장판각기’ 현판이 있어 입암집판각이 장판각에 오게 된 경위를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