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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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鴻山 掛佛祈雨齋 |
영어공식명칭 | Hongsan Gwaebul-Giuj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만수리 116]|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동헌로 38[남촌리 18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의례 장소 | 홍산동헌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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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의례 |
신당/신체 | 괘불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에 있던 홍산동헌 앞마당에서 행하던 기우제.
[개설]
홍산 괘불기우제는 일제 강점기에 무량사(無量寺)에 봉안되어 있던 괘불을 홍산동헌(鴻山東軒) 앞마당에 걸어 놓고 읍민들이 합동으로 가뭄의 해소를 기원하였던 의례이다. 민관이 합동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괘불을 사찰 밖으로 옮겨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괘불기우제는 극심한 가뭄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드문 의례이고 승려들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베풀어지기 어려웠다. 실제로 홍산 괘불기우제가 거행된 1930년대 당시 문헌에도 “100년 만에 무량사 화상이 나들이를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괘불을 보관하던 무량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만수리 116]에 있는 사찰로, 조선 시대에는 홍산현에 속하였던 유명한 사찰이다. 홍산동헌은 부여군 홍산면 동헌로 38[남촌리 187]에 있으며,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연원 및 변천]
홍산 괘불기우제는 조선 후기 홍산 고을에서 주관하던 읍치기우제(邑治祈雨祭)를 계승한 것이다. 농경 중심 사회였던 전통시대에 가뭄의 해결은 통치자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할 뿐 아니라 지방관의 선정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덕목이었다. 가뭄이 지속되는 것은 곧 지방관이 부덕하여 민생을 돌보지 못한 탓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가뭄을 만나면 목민관은 경건한 마음으로 몸을 깨끗이 씻고 정성을 들여 신이 비를 내려 줄 것을 묵묵히 빌어야 할 것이다”라고 상기시킨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예부터 국가는 물론이고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기우제를 행하였는데,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법당 앞에 걸어 놓는 그림인 괘불이 기우제에 사용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부처라는 신적 존재에 기대어 가뭄을 해소하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하겠다.
1930년대 민·관·사찰 공동으로 거행한 홍산 괘불기우제는 유교식 기우제와 무량사의 불교식 괘불기우재(掛佛祈雨齋)를 혼합하여 행한 독특한 의례였다. 또, 기우제와 연계하여 홍산 고을에서는 가뭄 극복을 위하여 오일장을 임시로 옮기고 비를 기원하는 사시기우(徙市祈雨) 관행, 이른바 ‘장내기’도 행하였음이 포착된다
[현황]
부여 지역에서는 1930년대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홍산 괘불기우제가 다시 행해지지 않았다.
[의의]
기우 행사에 불법의 상징인 괘불을 내건 것은 고통받는 참담한 현실에 불교계가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뭄이라는 하늘의 재앙에 직면한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함으로써 민심을 통합하고, 나아가 혹독한 가뭄이라는 위기 극복의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