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동면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에 있는 산. 창원시와 경상남도 김해시, 부산광역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북서쪽의 불모산과 화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진해구와 김해시 장유면, 부산광역시 강서구와의 경계를 이룬다. ‘굴암산’이라는 지명은 산 정상의 큰 바위 아래 암자가 있어 ‘굴암산’이라 불렀다고 하며, 산에서 땔나무를 많이 베어 바위만 남은 것에서 이름이 유래되었...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사회운동가 아버지는 웅천군의 마지막 군수였던 김재형[1864~1948]이었으며, 남편은 웅동면에 살았던 배익우이다. 조봉암의 부인이었던 김조이는 김남이의 조카이다. 일본에 유학하고 와서 1928년 ‘웅천 여자 청년회’를 창립하여 대표자로 활동했다. 1930년 혼인하면서 사회활동을 중단하였다....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농민 운동 단체. 1920년대 중반 이후 농민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전국 각지에는 수많은 농민 운동 단체들이 생겨났다. 특히 1930년대 초반에는 농민 운동 단체가 급격히 증가했다. 총독부의 지원을 받는 개량적 농민 단체에서부터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혁명적 농민 조합에 이르기까지 그 성격은 다양했다. 농민 운동의 내용에서도 생존권 확보 투쟁에서...
-
일제 강점기 창원 지역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1910년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인의 저항을 막고 영구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무단 통치를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전역은 수탈과 착취 아래 놓였고 조선의 백성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항쟁하였다. 창원 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청년 운동·문화 운동·3·1 만세 운동·농민·노동 운동...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두동은 띠골과 점골 마을의 두 마을을 합쳐 두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형되어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두동은 원래 웅천군(熊川郡) 동면(東面)에 속한 지역으로 띠골 또는 모곡이라 하였다. 두동은 1908년(융희 2) 창원군(昌原郡) 웅동면(熊東面)에 편입되었다가 1910년 마산부(馬山府)에 편입되었다. 1914년...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마천동은 북쪽의 마봉산 서쪽 기슭으로 흐르는 말내[馬川]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마천동은 원래 웅천군(熊川郡) 동면(東面)에 속한 지역으로, 1908년(융희 2년) 창원군(昌原郡) 웅동면(熊東面)에 편입되었다가 1910년 마산부(馬山府)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
1919년 3·1 운동 때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 마산 지역 일제 강점으로 인한 억압과 수탈은 일부 매판자본가·기생지주(寄生地主)들을 제외한 우리의 대다수 민중들을 몰락과 고통으로 몰고 갔다. 마산 지역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마산에 1909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마산 출장소를 설치하고, 농민들의 토지 박탈과 고율의 소작료...
-
일제 강점기 마산 문창 교회와 평양 산정현 교회를 담임했던 목회자·설교자·순교자·민족 운동가. 주기철(朱基徹)[1897~1944] 목사는 경상남도 창원시가 배출한 위대한 목회자이자 순교자였고 민족 운동가였다. 장로교 목사로 마산 문창 교회에서 목회하는 등 목회자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식민 정책에 반대하고 싸웠던 민족 운동가였다. 주기철 목사는 1897년...
-
일제의 무단 통치가 자행되던 1915년 3월에 사립학교 규칙이 대폭 개정되어 발표된다. 이 규칙의 내용은 사립학교 설치는 반드시 총독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인가 없이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규칙은 당시 사립학교 사정으로 매우 가혹한 처사였고, 그 적용 범위는 한국인을 교육하는 모든 사립학교에 적용되었다. 학교의 경영자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 이 규칙을 적용...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안골동의 동명은 바다가 방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안골동은 원래 웅천군(熊川郡) 동면(東面)에 속한 지역으로, 안곡 또는 안골포라 하였다. 안골포는 1908년(융희 2)에 창원군(昌原郡) 웅동면(熊東面)에 편입되었으며, 1910년 마산부(馬山府)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
개항기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창원시로 통합되기 전까지의 진해시 지역은 1452년(문종 9)에 웅신현(熊神縣), 완포현(莞浦縣), 천읍부곡(川邑部曲)과 창원 남산 일부를 합하여 웅천현이 된 이래 조선시대에 계속해서 웅천현(熊川縣)으로 존재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실시된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전국 행정 구역이 23부 336군으로...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창원시는 경상남도의 중부에서 내륙 쪽으로 깊숙이 만입한 고성군과 내륙으로는 함안군, 김해시와 인접해 있는 경상남도의 중심 도시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과 천주산 북쪽으로 낙동강에 이르는 평야 지형이었던 관계로 교통이 불편하여 주변과의 교류가 일정 부분 한정됨으로써 이전부터 사회·문화적으로 독특한 특...
-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창원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시기. 1. 마산 1914년 3월 1일 부·군제의 실시와 함께 창원부 외서면 마산포 일대는 마산부로 개칭되었다. 당시 마산포의 인구는 2만 3000여 명에 불과하여 부(府)의 기준에 미달하였다. 그러나 마산항의 병참 기지로서의 중요성과 대일 교역상의 입지적 특성이 중시되어 부로 편...
-
일제 강점기 진해 지역에서 지주와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횡포에 맞서 소작 관계 개선과 농조 건설을 위한 농민 운동. 지나친 소작료의 징수 고리대의 악용 등 농민들은 늘 수탈의 대상이 되었고 여기에 마름들의 농간과 그들에 의한 소작권의 빈번한 이동으로 소작 농민들의 삶이 매우 힘들어졌다. 이에 지주와 동척의 횡포에 맞서 소작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농민 조합의 건설이 필요하였다....
-
일본 해군의 군사 도시이자 근대적 계획도시로 건설된 일제 시기의 진해. 경상남도 창원시로 통합되기 전까지의 진해시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웅천현(熊川縣)이었으나 1912년 1월 웅중면 전부와 웅서면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해면(鎭海面)으로 개편하면서 ‘진해’라는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이 지역에 일본 해군의 군항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바다를 제압한다는 의미를 가진 ‘...
-
일제 강점기 창원 지역의 독립운동가. 정운조(鄭云朝)[1888~1951]는 1919년 4월 창원군(昌原郡) 웅동면(熊東面) 지역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적으로 활약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웅동면 계광 학교의 교사인 주기용(朱基容) 등이 웅동면 사무소에서 주도한 4월 3일 만세 운동에 참여 하였는데, 이 시위는 당시 인근에서 가장 큰 시위였다. 시위가 있던 날 11...
-
창원 출신의 교육자·정치가. 주기용(朱基瑢)[1897~1966]은 1916년 평안북도 정주 오산 중학교(五山中學校)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웅동면에 있던 계광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 학교에 재직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여러 사람과 뜻을 모아 웅천, 웅동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옥살이를 하였다. 이후 옥살이를 마치자 설립자이자 장인이신 남강 이승훈의...
-
일제 강점기 진해 지역에서 조선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국치일(國恥日)을 맞이하여 격문이 뿌려지고 포스터가 붙은 사건. 1930년 8월 29일 국치일을 맞아 진해 웅천면과 웅동면 일대에서 항일 운동을 고취하는 격문이 뿌려졌다. 일제 강점기 기록인 ‘고등 경찰관 계적록’[1919~1935]에 의하면 “일한 병합 기념일 당일, 9월 2일, 9월 22일의 3일에 걸쳐 창원군 웅천면 박정환...
-
1934년 일제 강점기에 진해 지역 미혼 여성들로 구성된 비밀 결사 조직. 진해 처녀회의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웅동적화비사(熊東赤化秘社)’를 통하여 진해 처녀회의 활동을 추정할 수 있다. ‘웅동 적화 비사’는 부산 경찰서 고등계에서 검거하여 조사 중인 소위 ‘진해 여공 적화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웅동에 있는 조맹규와 백태식 등이 부산에 있는...
-
조선 시대의 웅천현 지역에 1912년 일본 해군 군항이 들어서며 붙여진 명칭의 유래. 진해 지역은 1452년(문종 9)에 웅신현(熊神縣), 완포현(莞浦縣), 천읍부곡(川邑部曲)과 창원 남산 일부를 합하여 웅천현이 된 이래 조선 시대에 계속해서 웅천현(熊川縣)으로 존재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실시된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전국 행정 구역이 23부 336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