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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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美術 |
영어의미역 | Fine Arts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집필자 | 이규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8년 1월 - 문신 개인전 개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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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5년 - 흑마회 결성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9년 - 창원 문화제 시작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2년 7월 7일 - 한국 미술 협회 마산 지부 결성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6년 - 창원 문화제 폐막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8년 - 경상남도 미술 전람회[약칭 경남도전] 개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6년 5월 31일 - 한국 미술 협회 창원 지부 창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3년 10월 29일 - 제36회 경상남도미술대전 개최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이루어지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여 눈으로 볼 수 있는 미를 표현한 예술로서 지역 특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활동.
[개설]
창원, 마산, 진해의 미술을 개관하여 보면, 가야계의 미술 공예를 생성 원류로 하여 일제 강점기 동경 유학생들의 활동에서 현대적 미술의 여명기를 맞는다. 이후 창원 문화제 형성기를 거쳐 창원시 승격 이후 통합 창원시가 출범한 오늘날까지로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변천]
1. 삼국 시대
창원 미술의 원류는 가야 문화권 내의 토기 공예에 있다. 창원 지역은 옛 금관 가야국, 소 가야국, 아라 가야국으로 연결되는 삼각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이것은 창원 지역 가야 토기의 공예가 그 독보적 특성을 갖도록 하였다. 1974년 발굴된 성산 패총 출토의 회백색 연질 토기류는 가야 토기 공예의 독특한 특성을 보여주었고, 1986년 발굴한 도계동 고분군의 가야 토기들도 독특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2. 통일 신라 시대
현존하는 대표적 유물로는 보물 제436호 ‘창원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昌原 佛谷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이 있다. 이것은 850년에서 90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비로자나불 중의 하나로,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불상 양식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부석사 계통을 잇는 불상으로, 당시 선종의 위세를 알려준다. 이외에도 화강암으로 건조된 신라 후기의 ‘의림사 삼층 석탑(義林寺三層石塔)’도 주목된다.
3. 고려 시대~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고려 시대 작품으로는 ‘지귀동 봉림사지 삼층 석탑(知歸洞鳳林寺址三層石塔)[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6호]’, ‘성주사 삼층 석탑(聖住寺三層石塔)[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5호]’, ‘창원 성주사 관음보살입상(昌原聖住寺觀音菩薩立像)[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35호]’, ‘용화전 석조여래좌상(龍華殿石造如來坐像)[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43호]’ 등이 있다.
조선 시대의 것으로는 ‘불곡사 일주문(佛谷寺一株門)[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33호]’, ‘성주사 대웅전(聖住寺大雄殿)[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4호]’, ‘창원 향교 대성전(昌原鄕校大成殿)[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등 건축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4.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초기 창원 지역의 미술은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가운데 독립성 있는 미술은 드물고 향교·서원을 중심으로 한 시(詩)·서(書)·화(畵)를 다소 찾을 수 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창원 지역에서는 김종영, 문신 등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현대 미술의 초석을 놓았다.
1941년 4월에는 마산 최초의 동양화 개인전이 열렸고, 1942년에는 마산 시내 초·중학교의 일본인 미술 교사들이 주최한 ‘제1회 마산 미술 전람회’가 마산 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이외에 신마산 금융 조합[현 신마산 농협 위치]에서 열린 몇 차례의 포스터 전시회를 제외하곤 별다른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 시기 전국을 무대로 작품 활동을 하던 많은 동양화와 서예인들이 자주 마산을 찾았는데, 이것은 해방 이후의 본격적인 마산 미술을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5. 현대
1) 여명기
옛 창원의 현대 미술은 1915년 창원 소답동에서 출생한 조각가 김종영(金鍾瑛)의 작가 형성기를 중심으로 그 맥락을 찾을 수 있다. 김종영은 우리나라 조각계 최초의 동경 유학생으로, 우리나라에 현대 조각을 도입한 작가이자 교육자였다.
김종영은 창원이라는 문화적 토양 속에서 시(詩)·서(書)·화(畵)에 능통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군자적 덕행을 갖춘 어진 선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김종영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43년 고향에 돌아와서 1948년 서울 대학교 교수가 될 때까지 5년간 고향 창원에 묻혀서 은둔 생활을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당시 김종영이 인접한 마산 작가들과 교분 관계를 활발하게 맺었던 것은, 동일 문화권으로서 당시 마산이란 도시적 형태를 향토적 토양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창원의 김종영과 마산의 문신은 일본 도쿄 미술 학교[東京美術學校] 선후배이면서 당시 침체된 향토 미술계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2) 창원 문화제 형성기
8·15 해방 직후 만들어진 창원 문화 동지회에 의해 1959년 탄생한 창원 문화제에는 창원 출신의 문화 인사들 뿐 아니라 인접한 마산·진해 등지의 문화 인사들도 참여하였다. 이 후 1966년까지 창원 문화제를 통한 미술 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창원 문화제 초청 작가전에는 제1회부터 제8회까지 마산의 최운(崔雲), 진해의 유택렬(劉澤烈) 등이 작품을 출품하면서 심사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서예 작품에는 변지섭 등이 독특한 경지를 보인 작품을 출품하였다. 1950~1960년대에 이수홍(李水洪), 이준(李俊) 화백 등이 마산·창원의 향토 미술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림(李林) 화백은 1960년 서울에 이주하기 전까지 마산 문화제 운동을 부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면서 창원 문화제에도 관계하였다.
창원 문화제는 자생적인 문화 운동이자 향토 문화제로서 그 토대가 단단하였다. 그러다가 차츰 문화계 인사들의 생활 터전이 도시로 바뀌면서 1966년 제8회를 끝으로 창원 문화제의 막은 내렸다. 창원 문화제가 지역 문화와 미술 교육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실로 크다고 할 것이다.
3) 마산
해방 후 마산 미술계는 우리의 손으로 우리 미술을 꽃피울 수 있다는 희망의 시기였다. 유학길에 오른 청년 미술인들이 속속 귀국하였고, 마산에서도 임호[본명 채완], 이림, 문신, 이준, 이수홍, 최운, 안윤봉 등이 중심이 되어 화단을 정비하였다. 1947년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마산 백화점[현 한일 은행 마산 지점 위치]에서 ‘제1회 미술 전람회’가 열려 동양화, 서양화, 조각, 섬유 공예 부문에서 전국 각지의 정상급 작가 39명의 작품 108점이 전시되었다.
1948년 1월에는 8·15 해방 후 마산에서의 첫 개인전인 문신의 개인전이 마산 다방에서 열렸다. 1949년에는 서울에 기반을 둔 유명 작가인 허민과 변관식의 동양화 개인전이 마산에서 열렸다. 같은 해 4월에는 제1회 경남 미술 연구회 작품전이 부산부 공회당에서 열렸는데 마산에서는 이림, 이준, 임호, 전혁림 등 4명이 출품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마산 상공 회의소에서 문신의 두 번째 개인전이 열려 「무학산」 등 30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6·25전쟁으로 전국 각지의 문학, 예술인들이 마산으로 오자 지역의 미술인들은 그들과 교류를 통해서 마산 미술의 중흥을 위한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1950년 5월 경상남도 최초의 동인전인 ‘혁토사전(爀土社展)’이 부산의 미국 문화원에서 열렸고, 마산에서는 임호, 전혁림, 이준 등이 참여하였으나 이내 6·25 전쟁을 맞게 되었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의 마산 미술은 지방의 중소 도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문화 예술적 역량을 보였다. 1956년 판 『마산 문화 연감』에 의하면, 1955년 서울에서는 연간 30회의 각종 미술전이 열린 데 비해 마산에서는 연간 17회의 전시가 있었다. 해방 후 10년간을 결산하는 자료에서 미술전 62회 중 합동전 10회, 동양화전 5회, 서양화전 26회, 시화전 6회, 학생전 15회를 기록했으며 총 2,014점이 전시되었다고 한다.
마산 미술사에 있어 특기할 만한 것은 1955년 마산 문화 협의회 미술 단체로 향토 미술의 대중화를 내걸고 창립한 흑마회의 활동이 있다. 그들은 화랑이 없어 전시에 제약이 많았던 당시의 여건을 뛰어넘어 과감히 가두 전시를 열어 100호 내외의 대작들을 선보였으며, 대부분이 야수파 계열의 강렬한 색채와 구성을 선보였다. 또한 1956년부터 1959년까지 총 65회의 전시회를 가졌다. 이들은 1960년 7회를 기록하며 활발하고 왕성한 활동을 보이다가 5·16쿠데타로 모든 기존의 예술 단체가 활동을 중단하게 되면서 해체되었다.
비록 1962년 7월 7일 정부의 문화 예술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 미술 협회의 마산 지부가 결성되기는 했지만 마산 미술은 1970년대 중반까지 황폐와 상실의 시련기였다. 일부 작가들은 보다 나의 창작 여건을 찾아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혹은 해외로 떠났으며, 젊은 작가들은 대학이 있는 타지로 유학하여 마산 미술은 당분간 공백기를 맞기도 하였다. 박홍석이 '1964년과 마산 미술인의 과제'라는 마산 일보 미술 단평[1964년 1월 30일자]에서 안일한 작가 정신과 배타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미협의 활동에 의한 비미술적 요소의 배제를 강력히 촉구했지만 별다른 개선은 없었다.
하지만 1969년부터는 마산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1969년 마산 교육 대학이 설립되고 1971년 경남 대학교 미술 교육과의 인가로 그 동안 외지로 보내기만 했던 전문 미술 교육이 향토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1970년부터는 마산 교육 대학생들의 작품전이 시작되었으며 1971년부터 마산의 첫 재학 동문전인 ‘갈마 동인전’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1975년부터는 경남 대학교의 졸업 작품전이 시작되었다. 또한 양 대학 교수들의 작품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1977년부터는 경남 대학교의 교수 작품전이 열려 지역 미술의 새로운 양상으로 자리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초반의 마산 미술은 서서히 단체의 힘이 약화되면서 개인의 역량이 중시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73년에는 마산의 첫 화랑인 동서 화랑이 문을 열었고, 1976년에는 청탑 화랑과 마산 화랑이, 1977년에는 가야 화랑이 문을 열었다. 1978년에는 도내 첫 공모전인 경상남도 미술 전람회[약칭 경남도전]가 도내 미술인들의 관심과 성원을 업고 첫 출발을 하게 되었다. 마산의 청년 미술인들도 이 공모전을 통하여 발굴되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산의 많은 미술인들이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79년에는 경남대 동문전이 창립되어 활동하였다. 1970년대는 황폐해진 마산 미술의 회복기였으며 본격적인 미술 교육의 활성화는 다음 세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예비기로 평가할 수 있겠다.
4) 창원시 승격 이후
1981년 4월 국제적인 산업 도시의 면모를 갖추면서 시로 승격한 창원은 도시 구조의 변혁은 물론 사회·경제·교육·문화 전반에 걸쳐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미 1978년에 설립된 창원 전문대학[당시 창원 여자 전문대학]과 1982년에 마산 가포에서 이전한 창원 대학교가 정착하면서 창원시의 교육과 문화의 발전은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1982년 경남 신문사 신축 사옥의 이전 준공과 함께 1층에 상설 화랑이 개설된 것은 창원 미술을 진흥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1982년 11월에는 경남 신문사 신축 이전과 함께 준공식을 기념하는 중진 작가 초대전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1983년에 들어와서 창원 미술에는 급격한 변모가 있었다. 창원 대학교가 창원시 사림동으로 이전하면서 예능 계열의 미술학과 활동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경상남도청사의 신축 이전과 함께 도 단위 규모의 미술 행사가 열리면서 명실공히 창원은 문화 예술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1983년 7월 경상남도 청사가 이전되었고, 1983년 10월에 신축 이전된 도청사 도민홀에서 제6회 경상남도 미술 대전이 열렸는데, 이 행사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먼저 과거 관 주도로 열렸던 도전이 전국적으로 12개 시·도 미술 대전으로 명칭이 개칭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술 문화의 본질적 목적인 미술인의 의지와 자립적 바탕 위에 생성, 발전할 수 있는 민영화 제도가 수용됨으로서 한국 미술 협회 경상남도 지부가 주관 업무를 공식적으로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경상남도 미술 대전은 2008년 현재 제31회를 맞고 있다.
1986년에 열린 ‘창원 시민의 날 기념 미술 초대전’은 창원 미술 협회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한국 미술 협회 창원 지부는 1986년 5월 31일 창립총회를 갖고 창립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현재까지 창원 예술제와 성산 미술 대전 및 경남 학생 미술 실기 대회 등 크고 작은 지역 행사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남의 수부 도시이면서도 문화 예술 단체가 생겨나지 못하다가 드디어 탄생한 창원 미술 협회는 공식 미술 기구의 출범이라는 점에서 창원 미술의 변혁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1986년 창원 대학교 미술학과 제5회 졸업 작품전과 ‘창원 대학교 미술전’이라는 명칭으로 신축 개관된 예술과의 전시실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창원 대학교 미술학과가 탄생한 지 8년 만에 전용 예술관인 아트홀(Art Hall)과 미술 전시실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또한 이 전시회 기간 중에 현대 미술 세미나를 개최하여 더욱 활기 있는 행사가 되었다.
창원시 주최 중고등학교 미술 실기 대회도 창원의 미술 활동의 한 장르로 들 수 있다. 해마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창원시의 학생 미술 실기 대회는 창원의 성산 패총 야외 박물관에서 개최되고 있다. 창원시의 학생 미술 실기 대회는 청소년의 정서 교육과 예능 교육의 신장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1987년 제1회 고향의 봄 축제 창원 미술 협회 회원전이 경남 신문사 전시실에서 개최되었고, 시민 학생 미술 실기 대회가 용지 공원에서 성대히 개최되었다. 축제 사업 중 가장 규모 있는 미술 행사로서 제1회 창원 미술 대전이 열렸는데, 창원 미술 대전에는 지역 미술의 발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미전 형식으로 출범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1989년에 들어서자 창원 미술 협회는 가야 문화권의 옛 중심지였던 창원 지역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창원 미술 대전을 가야 미술 대전으로 개칭하고 응모 범위를 넓힘으로써 전국 단위의 민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93년에 창원 대학교에 예술 대학이 설립되면서 도청 소재지 대학교라는 자긍심을 안고 활발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미술학과와 산업 디자인학과 등의 미술 계열의 발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96년에 그간 가야 미술 대전에서 배출된 가야 미술 대전의 초대 작가전이 열려 가야 미술 대전의 역사성을 보여주었다. ‘고향의 봄’으로 열리는 시민 학생 미술 실기 대회는 제8회가 되었고 가야 미술 대전은 제7회가 되는 등 창원 미술의 성장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창원 미술 협회 회원전도 1994년에 제11회를 맞았다. 2008년 현재 고향의 봄 축제 기념 시민 학생 미술 서예 실기 대회는 제22회를 맞아 용지 공원 일대에서 개최되었고, 경상남도 창원시 사림동에 있는 경남 도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경상남도 미술 대전은 제31회를 맞았으며, 성산 아트홀 주관의 전국 공모전인 성산 미술 대전은 제21회를 맞았다.
2004년에 창원 미술 청년 작가회와 (재)성산 아트홀의 주최로 아시아 청년 미술제를 시작하였고, 2006년부터 창원 미술 협회의 참여로 창원 아시아 미술제로 확대되었다. 2004년 ‘아시아, 아시아(Asia, Asia)’, 2005년 ‘담(談, Discours)’, 2006년 ‘무지개 너머(Beyond the Rainbow)’, 2007년 ‘복숭아꽃, 살구꽃(Peach flower, Apricot flower)’, 2008년에는 ‘후기도시인-길을 찾아서(Post Citizen-Finding Our Way)’, 2009년에는 'Hi, Asia 안녕하세요?!(Hi, Asia)'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전시관 및 박물관 현황]
창원 지역의 전시관 및 박물관으로는 경남 도립 미술관과 창원 대학교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사림동에 있는 경남 도립 미술관은 2001년 4월 경남 도립 종합 미술 박물관 기공에 이어 2004년 3월에 준공, 6월에 개관하였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로 5개의 대형 전시실, 다목적홀, 영상 전시실, 옥외 전시실인 야외 조각 공원을 갖추고 있는 경남을 대표하는 문화 시설이다. 지역 작가 조명전, 한국 현대 미술전, 세계 근현대 미술의 흐름전, 국제 전시, 소장 작품전 등 다양한 전시를 개최하여 지역 미술 문화의 정립과 더불어 320만 경상남도 도민들에게 높은 수준의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경남 도립 미술관은 경제 성장에 걸맞는 320만 도민의 미술 문화 향유 욕구에 부응하고 문화 도민으로서의 긍지 고양과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21세기 문화의 세기를 여는 지역 문화 발전의 상징 사업으로 건립되어 공립 미술관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미술관 이외에 역사 유물과 미술품은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전시되어 있다. 도립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경상남도 창원시 사림동에 있는 창원 대학교 박물관은 마산, 창원을 포함한 경상남도 지역의 유물을 중심으로 주로 선사 및 고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2000년 개관한 성산 아트홀은 품격 높은 문화 예술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창원 지역 문화 예술의 메카로서 역할을 하는 복합 예술 공간이다. 그 외 성산 아트홀 인근에 1997년에 개관한 늘푸른 전당, 용지 야외무대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공간이 있다.
그밖에 창원 지역의 사립 미술관으로는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유등리 마을에 위치한 대산 미술관이 있다. 소외된 농촌 지역을 위한 미술관이라는 취지로 1999년 개관한 대산 미술관은 비수도권 지역의 문화 공간에서 다양한 미술의 실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또한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소[옛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가 창원에 소재하고 있다.
창원 지역의 미술관 및 갤러리에는 리안 갤러리, 대안 공간 마루, 씨티 갤러리, 희련 갤러리, 창원 문화원, 창원 갤러리, 주나 美 아트 스페이스 등이 있다. 창원에 근간을 둔 미술 관련 단체로는 한국 미술 협회 창원 지부와 창원 청년작가협회, 기타 대학 동문 미술 동호인 단체들이 다수 활동 중에 있다.
마산 지역의 미술 전시관으로는 문신 미술관, 삼진 미술관, 구복 예술촌, 마산 아트 센터, 창동 예술촌 등의 문화 예술 공간이 있다.
진해 지역의 전시관 및 박물관으로는 진해 문화 센터, 진해 시립 박물관, 해군 사관 학교 박물관, 김달진 문학관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창원 지역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보아서 옛 가야 문화권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곳으로서 고풍과 현대와의 조화로운 도시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이 배여 있는 창원 지역의 미술은 창원이라는 지역 안에서의 국지적으로 좁고 편협하거나 소극적인 미술 문화가 아닌 한국 현대 미술사에 있어서도 충분한 영향력을 가진 미술 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사적 맥락 속에서 자리한 창원 지역의 현대 미술은 공립 미술관, 사립 미술관과 박물관, 여러 미술 단체들의 활동과 미술인들의 노력으로 발전 속도를 가속화해 가고 있다.
마산 지역은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왔는데, 마산 지역만의 차별화된 특수한 문화 정체성을 찾아야 하고, 마산 지역 특성과 현재적 의미를 자리 매김 해야 할 것이다. 마산 지역은 지역 특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시립 박물관을 건립하여 지역 사회의 여러 특성들을 이해하고 찾는 일에 정성을 쏟았고 지역과 지역민들은 사라져가는 창동 문화를 중심으로 한 재생 사업으로 예술촌을 형성하였다. 마산 지역은 지속적으로 지역의 문화가 소외되지 않고,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진해 지역은 알차고 내실 있는 전시회를 위해 공공 기관과 학교, 예술 단체, 동호회, 취미 클럽 등으로부터 연중 전시물을 접수받고 있으며 그림, 사진, 공예품, 도자기, 난, 수석, 분재 등 전시를 원하는 구민의 적극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진해 군항제라는 지역 축제로서 도시의 이미지를 드높이고 지역민의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해오고 있다. ‘충무공’이라는 군사적 이미지와 ‘벚꽃’이라는 환경 친화적인 이미지를 결합시켜 진해구를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