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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2027
한자 佛敎
영어의미역 Buddhism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범홍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개설]

불교라는 말에는 석가모니인 부처가 설한 교법과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석존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된 불교는 그의 생전에 이미 교단이 조직되어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으나 교세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입멸 이후부터이다.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시작된 불교의 전파는 서역과 중국을 거쳐서 한국에도 유입되었다.

한반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삼국 중 최초로 고구려가 받아들인 불교[372년. 소수림왕 2년]는 주로 전진(前秦)을 비롯한 북방 중국의 불교였으며, 백제가 받아들인 불교[374년. 침류왕 원년]는 주로 동진(東晉)을 비롯한 중국 남방의 불교였다. 마지막 신라의 경우는 고구려. 백제의 양국에 비해서 무려 1세기 반이나 늦게 공인되었다[527년, 법흥왕 14년]. 그러나 여러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백제는 말할 것도 없고 신라도 이미 공인되기 전부터 불교가 유입되어 신앙하는 자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불법을 위한 순교자마저 배출한 신라이고 보면, 통상 신라 불교 초전(初傳)의 해라고 전하는 527년(법흥왕 14)은 단지 국가가 공인한 해였을 뿐이다. 따라서 국가적인 공인이 있기 전부터 처음에는 고구려로부터, 그 이후는 백제나 중국 등지에서도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의 불교는 왕실과 귀족들에 의해 국가적인 호국 사상과 현세 이익 사상을 형성하였으며, 통일 신라 이후에는 정토 사상에 바탕을 둔 불교의 대중화와 통불교(通佛敎)라는 한국 불교 사상의 특수성이 두드러진다. 특히 이와 같은 사조의 변화는 원효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의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고려 시대의 불교는 국가의 지배 이념으로 작용하여, 승과 제도(僧科制度)를 통해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국사(國師)와 왕사(王師)를 두어 국가나 왕실의 정신적 의지를 삼기도 했다. 또한 두 차례에 걸친 대장경의 조조(雕造)를 통해 고려의 문화 선양은 물론 불력을 통한 국난 극복을 기원했으며, 나아가 각종 제회(齊會)와 도량[道場]의 설립, 그리고 수많은 사탑의 건립 등은 고려의 시대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사상적으로는 통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의천(義天)지눌(知訥)로 대표되는 교관 겸수(敎觀兼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융합을 지향하는 한편 많은 종파들을 통합하여 오교 양종(五敎兩宗)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의 불교는 숭유 억불(崇儒抑佛)을 표방하는 국가 정책의 변화로 인해 크게 위축되었다. 도첩제의 실시와 승과의 폐지를 필두로 사전(寺田)에 과세하고 승려가 궁중과 도성(都城)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나아가서는 사찰을 기방(妓房)으로 삼는가 하면 비구니를 궁중의 노비(奴婢)로 삼고 승려들을 모두 환속(還俗)시키기도 하였다. 더구나 불상(佛像)을 녹여 무기를 만들고 사찰을 헐어 그 재목을 민가에 나누어 주는 등 그 탄압은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불경을 번역하고 간행했으며, 모든 종파를 선교 양종(禪敎兩宗)으로 정리하기도 하였다. 또한 무학(無學), 함허(涵虛), 보우(普雨)를 위시한 걸출한 명승들이 배출되었으며, 특히 임진·병자 양란을 통해 구국의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서산(西山)·사명(四溟)·처영(處英)·영규(靈圭) 등 수많은 승병들의 호국 정신은 한국 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도 계속 이어지는데, 3·1 독립 만세 운동에는 수많은 승려들이 주도적으로 가담했으며 특히 한용운(韓龍雲)·백용성(白龍成) 등은 기미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33인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불교는 한반도에 유입된 이래 한 때는 시대를 주도하고 지배하는 정신적 이념으로 꽃을 피우기도 하고, 또 한 때는 나락으로 떨어져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끈질긴 생명력과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서 민간 신앙과 고유한 습속 등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와 잘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민족 문화 창달에 훌륭한 모체 역할을 담당하였다.

[불교의 전래와 유물·유적]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언제부터 불교가 유입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창원시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서 전해오는 전설이나 명칭을 통해 일찍부터 불교가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도 탑골, 부처골, 절골, 부처 고개 등과 불모산, 전단산 등의 지명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학계의 공인된 학설은 아니지만 남방 불교 전래설의 연원이 되는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허황후에 얽힌 설화 역시 창원 지역의 불교 전래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창원 불교의 시작과 관련하여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南白月二聖努肹夫得怛怛朴朴)조에 나오는 백월산(白月山) 남사(南寺)에 관한 내용이다. 백월산은 현재 행정 구역상 창원시 북면 월백리에 속한다. 그 내용은, 백월산에서 수행하던 노힐부득달달박박이라는 두 사람이 관음보살의 가피력으로 모두 성불했다는 설화이다. 그리하여 신라 제35대 경덕왕[764년. 재위 742~765]이 ‘백월산 남사’라는 절을 세우고 노힐부득이 화현한 미륵존상을 조성하여 금당(金堂)에 모시고 ‘현신성도 미륵지전(現身成道彌勒之殿)’이라고 쓴 편액을, 달달박박이 화현한 아미타불을 만들어 강당(講堂)에 모시고 ‘현신성도 무량수전(現身成道無量壽殿)’이라고 쓴 편액을 걸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삼국유사』의 찬자인 일연(一然)노힐부득달달박박이 수행하던 남암과 북암에 대한 찬문을 남기고 있다.

지금도 백월산 주변에는 석불 좌상과 기단부가 없는 3층 석탑을 비롯하여 석재 불두, 석탑 상륜부 등의 석물들과 기와 조각이 출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탑재와 석등의 부재들이 흩어져 있어 이와 같은 설화가 역사적 사실임을 알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입증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여러 해 전 여기서 수습된 기와 조각 중에 ‘남사’라는 명문이 들어간 것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따라서 이곳이 문헌에 나타난 창원 지역 최초의 불교 유적지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같은 곳에서 회진암(懷眞庵)이나 유리 광사(瑠璃光寺) 등을 비롯한 여러 절의 이름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백월산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사찰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와 더불어 창원 불교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현재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에 폐사지로 남아 있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봉림산 봉림사(鳳林寺)가 있다. 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에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 구산선문의 등장은, 종래 한국 불교의 흐름을 바꾸었을 뿐 만 아니라 현재 한국 불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현재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에 위치하고 있던 봉림산문(鳳林山門)의 개산이다.

5세기 초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의해서 시작된 선불교(禪佛敎)는 크게 위세를 떨치며 이 땅에 유입되었다. 특히 이 땅에서는 전국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아홉 개의 산을 중심으로 선문을 열었다. 이것으로 선불교는 나라 전체로 확산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창원의 봉림산문이다. 이 산문은 원감 국사(圓鑑國師) 현욱(玄昱)[787~868]에 의해 개산되었다. 현욱은 824년 입당(入唐)하여 선불교를 배운 후 837년 귀국하여 44대 민애왕·45대 신무·46대 문성·47대 헌안·48대 경문왕 등 역대 제왕들의 귀의를 받고 크게 종풍(宗風)을 떨치다가 경문왕 8년 승랍(僧臘) 60년, 세수(世壽) 82세로 입적하였다. 제자로는 봉림사 진경 대사 보월능공탑[보물 제362호]과 봉림사 진경 대사 보월능공탑비[보물 제363호]의 주인공인 심희(審希)[855~923]가 있다.

심희는 어려서부터 불교를 좋아하여 이미 9세에 현욱을 찾아가 수행을 계속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그 후 교화와 수행을 계속하다가 현재의 창원시 봉림산록에 봉림사를 창건하였는데 이것이 곧 선문구산 중 하나인 봉림산 봉림사이다. 경명왕이 스승의 예를 갖추어서 법응 대사(法膺大師)라는 존호를 하사했으며, 왕의 부탁으로 궁중에서 설법했을 때 그를 따라 전상(殿上)에 올라앉은 제자들이 무려 80여 명이나 되었을 정도로 그 위상이 높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심희는 경명왕 7년 법랍 50년, 세수 70세로 봉림사에서 입적하였으며 제자인 원종 대사(元宗大師) 찬유(璨幽)[869~958]가 그의 뒤를 이어받아 봉림산문은 명성을 더욱 떨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위세를 떨쳤던 봉림사도 결국 폐사되고 말았다. 그 시기가 임진왜란 이후 혹은 18세기 이후라고 전해지나 모두 분명한 것은 아니며, 폐사된 연유도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어렴풋이 여주 이씨(驪州李氏) 문중과 얽힌 전설만 전해 오고 있을 뿐이다. 현재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 봉림산 중턱 분지의 논 가운데에 폐사지가 있으나 완벽하게 폐허가 되어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진경 대사의 탑과 탑비를 “대정 8년 기미 3월 서울 박물관으로 옮겼다”는 팻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탑과 탑비는 1919년 3월 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겨진 뒤 경복궁 박물관을 거쳐 현재는 용산의 국립 중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봉림사의 3층 석탑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반출될 목적으로 해체되어 팔려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1960년 창원 상북 초등학교 교정에 옮겨진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창원시의 불교 유물·유적 중에서 보물은 1966년 2월 지정된 성산구 대방동 불곡사 소재의 창원 불곡사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제436호]이 유일하였다. 그보다 앞서 1963년 1월 창원 봉림사지 진경 대사 탑비가 보물 제363호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제 강점기부터 창원시를 떠나 현재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 중앙 박물관 내 가족 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가 지난 2011년 12월 성산구 천선동 성주사 소재의 창원 성주사 목조 석가여래삼불좌상[제1729호], 창원 성주사 감로왕도[제1732호], 몽산 화상 육도 보설[제1737호] 등이 동시에 보물로 지정되어 창원시는 총 4점의 불교 문화재를 보물로 보유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창원시의 전통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적지 않는 경상남도 지정 유형 문화재와 인근 주변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불교 문화재들이, 화려했던 지난날 창원 지역의 불교를 말없이 전해 주고 있다.

[현황]

1. 사찰

2010년 10월 창원시청 문화 관광과에 등록되어 있는 사찰의 총수는 234곳이다. 그러나 창원, 마산, 진해의 통합 과정에서 아직 등록이 완료되지 않았거나 혹은 규모가 작은 사찰까지 포함한다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해안을 감싸고 있는 창원시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작은 포구나 해안을 중심으로 형성된 민간 신앙의 형태와 습합된 불교가 굿당 역할을 하는 사찰의 모습으로 변모된 예는 창원 지역에만 국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찰이라 하더라도 굿당과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드물지 않으며, 이런 경우는 특정한 종파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이 운영하는 사찰이 대부분이다.

일단 창원시에 등록된 사찰의 소속 종단을 살펴보면, 한국 불교 종단 협의회에 소속된 종단들이 거의 대부분 활동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대한 불교 조계종을 비롯하여 한국 불교 태고종, 대한 불교 천태종, 대한 불교 진각종, 대한 불교 관음종, 대한 불교 보문종, 대한 불교 총화종, 불교 총지종, 대한 불교 원효종, 대한 불교 일승종, 대한 불교 대각종, 대한 불교 일붕 선교종, 대한 불교 원융종, 대한 불교 조동종, 대한 불교 용화종, 대한 불교 대승종, 대한 불교 삼론종, 한국 불교 여래종, 한국 불교 미륵종, 보국 불교 염불종, 대한 불교 진언종, 대승 불교 본원종, 한국 불교 법륜종, 대한 불교 법상종, 대한 불교 법화종, 대한 불교 정토종 등 총 26개의 불교 종단이 그것이다. 더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성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소규모 불교 종단이나 혹은 법인 종단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창원시의 대한 불교 승가종, 대승 불교 달마종, 대한 불교 해동종과 종단 자체가 불분명한 화엄 선종, 소원종 등이 있다. 따라서 창원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사찰과 그 소속 종파의 정확한 숫자를 밝히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현재 창원시의 사찰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파의 사찰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창원시에는 8곳의 전통 사찰이 지정되어 있다. 예전 창원시의 성주사, 불곡사. 우곡사 등 3곳, 마산의 의림사, 광산사, 성덕암, 정법사 등 4곳, 진해의 성흥사 1곳이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찰은 근래에 건립되었다. 그중에서 최근에 크게 발전하여 적극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사찰을 든다면, 창원의 불지사, 길상사, 구룡사, 원흥사, 마산의 정인사, 삼학사, 진해의 대광사, 정암사, 해장사 등 10여 곳의 활약이 특히 눈에 띤다.

2. 불교 단체

창원 지역 대부분의 불교 관련 활동은 각 사찰의 개별적 행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대규모 행사의 경우는 주로 마산·창원 불교 사암 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두 지역이 공동으로 시행해 왔다. 그러나 창원시의 출범과 더불어 시작된 급격한 인구 증가로 불교 인구 또한 급속도로 많아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95년 3월 마산·창원 불교 사암 연합회에서 분리하여 독자적인 창원 불교 사암 연합회가 구성되었다. 그 후 창원시의 불교 활동은 주로 창원 불교 사암 연합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통합 창원시의 인구는 자연스럽게 약 110만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충분한 논의 없이 정치적 이해관계로 급하게 이루어진 인위적인 통합의 성격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통합 시의 명칭 문제와 새로운 시청사의 위치 문제로 야기된 갈등이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행정적인 통합은 이루어졌으나 다른 유관 단체의 통합이 극히 부진한 가운데 먼저 불교계가 해결의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즉 마창 불교 연합회와 진해 불교 연합회가 2010년 9월 총회를 개최하여 통합 창원시 불교 연합회가 창립되었다. 그 후 소통, 화합, 상생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2010년 11월 창원시청 시민홀에서 창원시 불교 연합회 창립 기념 법회를 개최함으로써 명실공이 불교 단체의 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창원 불교 연합회는 창원·마산·진해에 위치하는 각 사암의 승려들로 구성되어 있는 불교 단체이다. 특히 통합 창원시 불교 연합회 출범의 목적은 소통, 화합, 상생이라는 기치에서 보듯이 통합 창원시의 지역적 갈등을 해소하고 시민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동시에 보살 정신의 구현을 통한 이웃의 배려와 불국 정토의 건설을 도모하고 있다. 창원 불교 연합회의 편제는 회장 1인과 수석 부회장을 포함한 부회장 6인, 사무처장 1인, 총무 위원회, 재무 위원회, 문화 포교 위원회, 사회 복지 위원회, 인권 환경 위원회의 위원장 각 1인 그리고 감사 3인과 상임 고문 2인을 포함한 고문 8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통합 창원시 불교의 재가 단체를 아우르는 조직은 없다. 2010년 설립된 사단 법인 경남 불교 신도회가 창원시에 사무처를 두고 있긴 하지만 그 활동은 미미한 실정이다. 한국의 최대 불교 종단인 대한 불교 조계종의 전국 신도 조직은 중앙 신도회 산하에 25개 교구 신도회와 직능별 전국 단위 신도 단체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러므로 행정 단위별 신도 단체는 중앙 신도회와 아무런 관련 없이 임의로 구성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대한 불교 조계종의 경우 시군을 표방하는 불교 신도회나 불교 단체의 활동은 근원적으로 한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것은 창원시의 불교 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특정 사찰이나 승려와 관계없이 몇몇 재가들의 자율적인 불교 단체가 있긴 하지만 활약은 미미한 형편이다. 창원시 불자들의 신행 활동도 다른 시도와 마찬가지로 소속 사찰의 내부적인 단체나 조직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즉 사찰의 규모나 여건에 따라서 보현회(普賢會)니 관음회(觀音會)니 수선회(修禪會)니 하는 각각의 신도 조직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또는 조직을 통합해서 사찰 신도회 아래 모든 단체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통합 창원시 불교 연합회의 주요 사업은 통합 전 마창 불교 연합회와 진해 불교 사암 연합회의 사업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크게는 문화 사업, 복지 사업, 포교 사업, 상담 사업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문화 사업으로는 해마다 개최되는 시민의 날 시민 연등제를 비롯하여 부처님 오신 날 연합 봉축 대법회, 시민 불교 문화상 시상 등과 관련된 행사를 주관하고 있으며, 전통 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복지 사업으로는 각 지역에서 개최하는 경로 효 잔치와 모자 가정 위안 법회를 열고 있으며 무료 급식소 운영과 청소년 장학 사업 등도 전개하고 있다.

포교 사업으로는 불교 교리 강좌, 어린이 및 청소년 포교, 구치소 및 경찰서의 재소자들을 위한 교화에 주력하고 있다.

상담 사업으로는 생활 신앙 상담과 법률 무료 상담, 소비자 피해 상담 등을 중점적으로 시행해 나가고 있다.

2013년 제2대 창원시 불교 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된 창원시 마산회원구 소재의 정인사 주지인 승려 원행의 취임사는 이 단체의 역할과 목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초종파적으로 많은 사암으로 구성된 이 연합회를 무리 없이 이끌어 가야 된다고 생각하니 …. 하지만 앞으로 창원시 불교 연합회 창립 목적인 창원시 불교 연합회에 참여하는 사암들의 협력을 도모하고 불교 전통 문화 발전과 나라와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목적과 사업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현재 창원시 불교 단체의 현장 모습이라 볼 수 있다.

한편 2010년 7월 통합된 창원시는 진해시를 포함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군항 도시인 진해시의 특수성을 수용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진해는 대한민국 해군의 본거지인 동시에 해군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도시인 관계로 해군 및 군인 가족의 신행 활동을 위한 해군 법당의 필요성이 일찍부터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적인 해군 기지란 이름에 걸맞게 해군의 법당 네 곳이 현재 건립되어 있다. 1972년 해군의 법당으로는 최초로 건립된 진해의 해군 사관학교 법당인 호국사(護國寺)를 비롯하여 진해 해군 교육 사령부 법당인 흥국사(興國寺)와 보국사(保國寺), 그리고 해군 진해 기지 사령부 법당인 해안사(海安寺) 등이 그것이다. 특히 호국사는 사관생도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통하여 정신 전력 및 사생관의 확립, 투철한 군인 정신을 함양하여 명실공이 국가의 간성이 될 수 있는 초급 장교의 육성에 목적을 두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교육 사령부는 사령부 안팎 두 곳에 법당을 두었는데, 영내에 위치한 보국사와 영외의 흥국사가 그것이다. 영내의 보국사는 주로 교육중인 군인들의 법회 장소로 이용되며 영외의 흥국사는 군인과 그 가족 및 지역 주민들의 신앙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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