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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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鈗 |
영어음역 | Yi Yun |
이칭/별칭 | 노칙(魯則),묵재(黙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헌규 |
성격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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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
성별 | 남 |
생년 | 1757년 |
몰년 | 1782년 7월 14일 |
본관 | 벽진 |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노칙(魯則), 호는 묵재(黙齋).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悤言)을 시조로 하고, 절충장군 이말정(李末丁)을 칠곡 입향조로 하는 벽진이씨의 후손이다. 오일헌(五一軒) 이주세(李柱世)의 후손이며 이익록(李翊祿)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고성이씨, 부인은 의성김씨이다.
[활동사항]
1757년(영조 33)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영달하여 일찍이 성취하였다. 18세에 난곡(蘭谷) 김강한(金江漢) 집안의 사위가 되어 『중용(中庸)』·『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 등을 강론하면서 뜻을 설명하는데 물 흐르듯 하니 장인이 말하기를 “이군(李君)이 향한 바가 대단히 발라서 거의 나의 퇴폐(頹廢)를 깨우쳐 일으킨다”라고 하였다. 후에 동생 이건(李鍵)과 더불어 귀와(龜窩) 김굉(金宏)의 문하에서 유학했는데,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물러나서는 동생과 화합하여 더불어 학문을 갈고 닦아 선비들의 추증을 받았다. 시문을 모아 만든 책이 있다고 전한다.
[묘소]
칠곡군 지천면 송정리 금정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족질 이천영(李天永)이 행장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