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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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潛 |
영어음역 | Jang Jam |
이칭/별칭 | 호원(浩源),죽정(竹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조선 중기의 칠곡 지역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호원(浩源), 호는 죽정(竹亭).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읍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하고 있다. 충순위 장적손(張嫡孫)의 차남이고 어머니는 화순최씨, 부인은 오천정씨이다.
[활동사항]
1531년(중종 26)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학문에 정심(精深)하고 효성과 우애가 있었다. 1519년(중종 14)에 조광조(趙光祖)가 귀양을 감에 귀양지까지 따라 갔으며 스스로 상소를 올렸다. 특별히 선생께서 복직이 되셨는데 사화(士禍)가 빈번하자 물러나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세우고 학업을 닦고 도를 구하였다. 당시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본군(本郡)에 임하여 있음에 공무(公務)를 마치면 방문하여 바위 위에 앉아서 서로 대하여 학문을 논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바위를 이현암(二賢巖)이라 했다. 성리학을 탐구하여 높은 학덕으로 추존(推尊) 받았으며, 인동의 현암서원에 제향(祭享) 되었다.
[묘소]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현암서원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