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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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府事例 |
영어공식명칭 | Daegu-bu Sarye |
이칭/별칭 | 영남대구읍사례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류명환 |
[정의]
개항기 간행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사례.
[편찬/간행 경위]
『대구부사례(大邱府事例)』는 미사액원사(未賜額院祠) 항목에 1871년의 서원훼철령이 기록되어 있고, 1869년 부임하여 1874년 이임된 관찰사 김세호(金世鎬)가 대구도호부의 전결(田結)에 부과된 세금을 감면해 준 사실 기록 등으로 볼 때 1871년(고종 8)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경상도 각 읍에서 읍지를 상송하면서 함께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읍사례는 판심에 ‘의정부(議政府)’라고 명기된 적색 인찰판(印札板)에 필사되어 있어, 의정부에서 주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형태/서지]
『대구부사례』의 표제는 ‘영남대구읍사례’이고, 내제는 ‘대구부사례’이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1책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28.9㎝, 가로 18.0㎝이며, 행자는 10행 자수부정이다.
[구성/내용]
『대구부사례』는 향교(鄕校), 사액서원(賜額書院), 미사액원사, 사전(祀典), 봉대(烽臺), 역도(驛道), 방면호구총(坊面戶口摠), 성첩(城堞), 결총(結摠), 곡총(穀摠), 군총(軍摠), 향청(鄕廳), 군관청(軍官廳), 포청(砲廳), 호장(戶長), 이방(吏房), 호방(戶房), 형방(刑房), 병방(兵房), 예방(禮房), 공방(工房), 공고(工庫), 장감고(場監考), 승발(承發), 대동색(大同色), 호적색(戶籍色), 부창색(府倉色), 어영색(御營色), 금위색(禁衛色), 포보색(砲保色), 속오색(束伍色), 아병색(牙兵色), 군기색(軍器色), 고마색(雇馬色), 관청(官廳), 지소(紙所), 외지소(外紙所), 내지소(內紙所), 의생(醫生), 절선소(節扇所)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액서원 조는 연경서원(硏經書院), 표충서원(表忠書院), 낙빈서원(洛濱書院) 등 3개 서원의 배향 인물과 위치를 기록하였다. 미사액원사 조에는 “1869년[기사년]에 조령(朝令)으로 인하여 제물의 봉진이 중지되었고, 1871년[신미년]에 조령으로 인하여 훼철되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사전(祀典)에는 사직단, 여단, 성황당 등 제향 장소의 위치와 현황을 기술하였다. 방면호구총 조에는 관내 각 면의 부에서의 거리, 소속 동(洞)의 개수, 인구 등의 현황을 수록하였는데, 전체 34면 264동이며, 인호 1만 3499호, 인구 6만 467명, 남자 2만 5812명, 여자 3만 4655명이다.
세금을 낼 수 있는 결총은 모두 7,960결 1부 9속이고, 군총 조에는 각군(各軍) 9,161명의 현황을 기록했다. 향청 조에는 좌수(座首), 별감(別監) 등의 인원과 둔전 전결수, 장인 및 무녀에게 지급되는 비용 등이 실려 있다. 육방 및 각소의 기술은 담당 아전의 수, 재원의 현황 등을 기술하여 각방 및 각소의 업무분장 상황을 보여 준다. 또한 뒷부분에는 대구도호부에서 사용하는 물품의 현황과 소요처, 그리고 가격 등을 수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부사례』는 19세기 대구도호부의 각 관청별 재정 수입과 지출 현황을 비롯하여 중앙정부에 납입하는 재원 현황을 잘 보여 주는데, 부 내의 각방(各房)과 각색(各色) 별로 연혁과 재원 현황을 정리하여 대구도호부의 수입, 지출 방식 및 부세 운영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