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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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齡鎬 |
영어공식명칭 | Lee Yeongh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영호(李齡鎬)[1893~1964]는 1893년 7월 14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대구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이영호는 평소 한국인에 대한 일제의 대우가 불공정하며, 민족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세금 징수와 공동묘지 조성 및 도로 개수 등 시설 부족에 대하여서도 불만을 품고 있었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4시 30분 무렵 덕산정 동문시장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당시 대구에 머물고 있던 이영호는 1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적극 가담하였다. 이영호를 비롯한 시위대가 열을 지어 행진하려 하자 대구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해산하였다. 이때 이영호는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19년 5월 30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및 「조선형사령」 제42조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6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영호는 1964년 7월 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영호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