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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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光陽傘 |
영어공식명칭 | Shingwangyangsan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서구 팔달로2길 29[비산동 2003-3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노광 |
설립 시기/일시 | 1961년 - 신광양산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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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83년 - 신광양산 폐업 |
최초 설립지 | 신광양산 - 대구광역시 서구 팔달로2길 29[비산동 2003-33] |
성격 | 제조업체 |
설립자 | 장병호 |
[정의]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 있었던 양산 생산 업체.
[개설]
신광양산은 1961년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서 장병호 사장이 설립하였다.
[변천]
대구는 섬유와 안경으로 유명하며, 한때는 국내 우산·양산 생산량의 80%를 차지하였고 업체 수도 100여 개에 달하였다. 대구에 양산 산업을 일으킨 기업은 협립양산과 신광양산이다. 장병호가 1961년에 대구 비산동에서 신광양산을 설립하였으며, 1970년대에 수출 바람을 타고 급성장하였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이 100억 달러였던 1977년에 신광양산은 250만 달러를 수출하였으며, 수출 기준 기업 순위로는 190등이었다고 한다. 또 1981년에는 경북 도내[대구시 포함]소득세 순위 8위를 기록하였다.
세계 양산 시장의 흐름을 보면, 1970년대 후반부터 대만이 저임금과 자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양산 수출을 늘렸다. 또 국내시장에서도 수출 호황으로 양산 업계로 진출하는 기업이 증가하여 경쟁이 과열된 탓에 상표 도용, 베끼기 등의 혼탁 양상이 벌어졌다. 장병호 사장은 1983년에 신광양산을 정리하고, 1987년에 밸브 전문 회사인 화성밸브를 설립하였다. LPG 용기용 밸브, 플랜지형 볼벨브 등의 제조 및 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였으며, 2000년 3월에는 코스닥시장에 등록하였다.
장병호 대표는 협립양산 박삼근 회장보다는 뒤늦게 양산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협립과 쌍벽을 이루며 양산 전문가를 배출하였다. 백태술 태광양산 사장, 정광환 광운양산 사장이 신광양산 출신이다. 협립양산에 근무하다가 신광으로 옮겨 실력을 닦은 뒤 독립한 양산 인맥도 있다. 고급 살대를 생산하는 이현교 안심양산 사장은 1960년대 후반 협립양산에 입사하여 조립반장까지 지낸 뒤 신광양산으로 옮겨 생산관리과장으로 근무하였다. 이판암 대상공업사 사장도 협립양산에 기능공으로 입사하여 기계반장까지 지낸 후 신광양산에서 기계반장과 공장장을 거쳤다. 김시태 시대양산 사장도 신광양산에서 2년여를 근무하다가 협립으로 옮겨 작업반장을 지낸 인물이다.
[의의와 평가]
양산 산업은 전형적인 도시형 중소기업 업종으로서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대다수 업체가 도심지 내에서 종업원 50명 미만의 영세한 가내공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생산 형태도 주로 주문생산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저가공세를 펼치는 중국 제품이 양산 시장을 크게 위협하고 있지만, 이에 맞서 고급 제품 출시로 재도약을 꿈꾸는 양산 인맥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은 협립양산과 신광양산이 뿌린 씨앗의 결과다.
또 2016년 6월 30일에 공익법인 화성장병호장학재단[이사장 장원규]이 설립되어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