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318
한자 石岡里
영어공식명칭 Seokg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하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28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개설
성격 법정리
가구수 173세대
인구[남/여] 341명[남자 152명, 여자 189명]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속하는 법정리.

[개설]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 속하는 10개 법정리 중 한 지역이다. 석강리(石岡里)에는 생초리, 왕대리, 석강리 등 3개 행정리가 있고, 생초리에 속한 생초 마을, 왕대리에 속한 왕대 마을, 석강리에 속한 들마 마을, 동산재 마을, 재동 마을의 5개 자연 마을이 있다.

[명칭 유래]

생초 마을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 당시 말을 먹일 풀을 대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소새’라고도 불렸다. 생초 마을에는 ‘우륵 터’가 있는데, 근래 가야금의 창시자인 우륵의 고향으로 알려진 ‘성열(省熱)’이 현재의 생초 마을인 것으로 재조명되기도 하였다. 왕대 마을은 임금이 태어날 좋은 마을이라 하여 ‘왕대촌’이라고 하였다가 이후 임금 왕 자와 큰 대 자를 합한 구경할 농(弄) 자를 써서 농촌(弄村)이라고도 하였다. 이후 1995년 다시 왕대 마을로 변경되었다. 들마 마을은 들 한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란 뜻으로 ‘평촌’이라고도 불렸다. 재동 마을은 양씨 집안의 서재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비롯된 이름으로 ‘서재골’로 불리기도 하였다. 동산재 마을은 마을이 들어선 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하가남면(下加南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하가남면이 가서면에 통합되고 이후 1928년 가서면이 가동면과 통합되어 가조면이 되면서 오늘날 가조면 석강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석강리는 미녀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누워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미녀봉을 남쪽에 두고, 북쪽 경계인 지산천까지 점차 해발 고도가 낮아지는 형태의 산간 지형이다. 그래서 미녀산 자락 이외에 상대적으로 고도가 평탄한 북쪽 지역은 농림 지역으로 논과 밭이 발달되어 있다. 내륙 산간 지역으로 일교차가 심하며,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내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현황]

석강리의 인구는 2016년 4월 말 현재 173세대, 341명[남자 152명, 여자 189명]으로 가조면 전체 인구 4,010명의 8.5%에 해당한다.

석강리는 거창 지역에서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의 첫 결의가 있었던 곳이다. 1919년 3월 19일 석강리의 정자나무 아래에 오문현, 김호, 어명철 등이 3월 22일의 거창 장날에 맞춰 독립 만세 운동을 펼칠 것을 결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강3길을 따라 1998년 완공된 152,242㎡ 면적의 석강 농공 단지가 있다. 현재 9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후 인근에 34,612㎡ 면적의 석강 제2 농공 단지가 2013년에 추가로 완공되어 130여 명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였다. 최근 2016년 7월에는 우륵길 410-284 일대에 ‘에콜리안 거창 골프장’이 개장하였다. 국민 체육 진흥 공단과 거창군이 골프 대중화를 위해 조성한 공공 스포츠 복지 시설이며,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 골프장을 지향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