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 직후 선산은 길재(吉再)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길재의 관료 생활은 길지 않았고 정계에서 주목받은 것도 아니었다. 34세가 되던 1386년(우왕 12) 문과에 합격한 이후 1387년(우왕 13) 성균관 학정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낙향하는 1390년(창왕 3)까지 4년 동안, 길재는 성균관의 박사(博士), 교수(敎授)와 같은 교육 관련 하위직에서 근무했을...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영가(寧可). 호는 율정(栗亭). 박서생(朴瑞生)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음보(蔭補)로 성균학정이 되었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 3등으로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서 을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조참판과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벼슬...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백인(伯仁). 할아버지는 대사헌 박서생(朴瑞生)이다. 박효원은 1464년(세조 10)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 사간을 역임하였다....
조선시대 구미 지역을 중심으로 성리학통을 전개한 유학자들. 해평길씨 길재가 정몽주의 학통을 이어 받아 고향 선산으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고 선산김씨 김종직 부자가 그의 학통을 계승하면서 선산은 15세기 영남사림파 형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고려 말에 성주·선산 등지 토성들의 상경종사(上京從仕)가 활발해지자 재경 관인이나 혹은 타읍 출신의 사족들이 대거 선산 지방으로 모여 들었다...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上龜尾面)·하구미면(下龜尾面)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하구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 개칭된 데 기인한다. 독립된 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시로 승격하면서 성립하였고,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