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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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時代 |
영어의미역 | Joseon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한충희 |
[정의]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개설]
구미시의 ‘구미’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上龜尾面)·하구미면(下龜尾面)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하구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 개칭된 데 기인한다. 독립된 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시로 승격하면서 성립하였고, 1995년에 선산군을 통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구미시는 조선시대에는 선산도호부 관내의 한 면이었지만 오늘날의 시역은 조선시대의 선산도호부와 인동현을 포괄하는 지역이다.
[연혁]
조선은 1392년(태조 1) 개국과 함께 고려의 지방제도를 답습하여 개성부·7도·2면 300여 군현을 두고 통치하였다. 당시 선산은 고려 말의 선주(善州)가 그대로 이어졌다. 이후 1413년(태종 13)에 목사관이 아니면서 ‘주(州)’ 자의 명호를 지닌 60여 개 지주관(知州官)의 명칭을 ‘산(山)’ 자 또는 ‘천(川)’ 자로 개칭하고 도호부·군·현으로 정비함에 따라 선산군으로 개정되었고, 1415년(태종 15)에 민호가 1,000호 이상으로 증가하여 선산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선산도호부는 1895년(고종 33) 근대적 지방제도의 개편에 따라 선산군으로 개정되었다.
[대표 인물]
조선시대 선산 지역은 서북방~남동을 관류하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광활하고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어 많은 사족이 거주하였고, 관인·학자·효자·열녀 등 명망 있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양반 가문에는 신천강씨, 제주고씨, 해평길씨, 경주김씨, 서흥김씨, 선산김씨, 일선김씨, 해평김씨, 안강노씨, 밀양박씨, 비안박씨, 달성서씨, 야성송씨, 성주여씨, 울산오씨, 의령옥씨, 파평윤씨, 해평윤씨, 덕수이씨, 성주이씨, 전주이씨, 선산임씨, 안동장씨, 담양전씨, 하동정씨, 해주정씨, 전주최씨, 진주하씨, 김해허씨, 덕산황씨 등이 있었다.
문과급제자는 김종리(金從理)·전가식(田可植)·하담(河澹) 등 100여 명을 배출하였다. 이 중 윤호(尹壕, 성종 국구, 우의정, 영원부원군)·김종직(金宗直, 판서)·김응기(金應箕, 좌의정)·이호민(李好閔, 좌찬성, 연릉부원군) 등 종2품 이상의 재상까지 진출한 인물은 20여 명이었다. 학자는 길재·김숙자·김치·박서생·길구·김종리·김종직·강백진·강중진·정붕·김진종·허백기·박영·이호민·박운·김취성·김취문·최응룡·노종함·길면지·김주·강재산·최현·박황·김하정·허훈·허위 등 수십 명을 배출하였다.
이 중 길재-김숙자-김종직으로 계승된 선산의 성리학은 조선 성리학을 정착시키는 토대가 되었고, 다시 김종직의 제자인 김굉필과 김굉필의 제자인 조광조·김안국·김정국·정붕 등과 이들의 제자인 기준·성수침·백인걸·유희춘·박영 등으로 계승되어 영남사림파로 정착하여 조선 말기까지 조선 성리학의 주류가 되었다.
절신(節臣)에는 고려에 충절을 다하고 조선시대를 통하여 정몽주·이숭인과 함께 ‘삼은(三隱)’으로 불리고 절신의 대표적 인물로 추앙된 길재, 단종에게 충절을 다하여 성삼문 등과 함께 사육신으로 존숭된 하위지와 그 형제인 하강지·하기지, 단종에게 충절을 지켜 은퇴한 이맹전이 있었다.
효자에는 전좌명·김치·장한·임재·송씨(이름 불명)·유저·임을지·박운·이훈·김내근·김언제·김기 등이 있었다. 열녀에는 황계종의 처 연내, 김격의 처 강씨, 도성유의 처 김씨, 송진성의 처 이씨, 정방준의 처 변씨, 김향의 처 황씨, 김격의 처 김씨, 최잠의 처 박씨, 노경건의 처 송씨, 김도의 처 하씨, 김석지의 처 강씨, 이지경의 처 허씨, 김우의 처 강씨, 김대원의 처 김씨, 김희준 처 최씨, 곽잠의 처 임씨, 배학산의 처 소사 등이 있었으며, 효녀에는 김낭이 있었다. 이처럼 선산에서는 길재 이래로 절의와 성리학적 학통이 계승되면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고, 이 점을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전해 오는 말에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에 있다”고 표현하였듯이 문향으로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
[사회]
선산의 호수, 인구수, 전결수는 조선 개국 초에는 불분명하나, 1450년(세종 32) 이전에 1,002호(선산 809호, 해평 196호)와 9,170결의 토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호수는 임진왜란 이전의 1,124호에서 1789년(정조 13)에 8,863호로 증가하고 1879년(고종 16)에는 9,012호로 증가하였다. 인구수는 임진왜란 전에는 1,026정(丁)에서 1789년(정조 13)에 42,979구(口)로 증가하고 1879년(고종 16)에 12,165구로 증가하였다. 전결은 1634년(인조 12) 8,218결에서 1879년(고종 16) 8,898결로 증가하였다.
[문화]
선산은 고려 말에 길재가 낙향하여 후진 교육에 전념한 지역으로 이 기풍이 후대로 계승, 앙양되었다. 관학 교육기관인 선산향교·해평향교와 금오서원·월암서원·낙봉서원·무동서원·송산서원 등 수많은 서원이 설립되어 지방 자제를 교육하였다. 또한 역대 수령이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학관인 유학교수(儒學敎授)가 교육에 진력하고 명망 있는 학자가 제자 양성에 노력한 결과, 선산에서는 많은 학자가 배출되어 유교 문화가 융성하였다.
또 이 지역에서 위세를 누린 사족은 규모가 큰 가옥을 조영하고 명승지에 누정을 지어 사족 간의 유대를 도모하면서 유교 문화를 선도하였다. 전통가옥으로는 해평리 쌍암 고택·북애 종택 등이 있고, 누정으로는 인풍루·봉하루·찰미루·낙남루·채미정·매학정·여차정·노자정·월파정·운경정·군자정·낙서정·공북정 등이 있다. 불교 또한 신라시대 이래로 수많은 사찰이 조성되어 융성하였다. 대표적 사찰에는 도리사·수다사·옥림사·진남사·대둔사·미봉사 등이 있다.
[교육기관]
향교로는 인동향교·선산향교 등이 있다. 고려 말에 창건된 인동향교는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1635년(인조 13)에 중건되었고, 1680년(숙종 6)과 1725년(영조 1)에 각각 중수하였다. 1450년(문종 1)에 창건한 선산향교는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1600년(선조 33)과 1623년(인조 1) 두 차례에 걸쳐 중건되었고, 선산읍 교리에 현존하고 있다.
서원으로는 금오서원, 동락서원, 낙봉서원, 월암서원 등이 있다. 1570년(선조 3)에 건립한 금오서원은 1575년(선조 8)에 사액되었으나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 1602년(선조 35)에 선산읍 원리에 복원하였고, 1609년(광해군 1)에 다시 사액을 받았다. 1655년(효종 6)에 건립한 동락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32년에 복원하여 임수동에 있다.
오산서원은 1574년에 건립하여 1609년(광해군 1)에 사액을 받았고, 무을면 월암리에 있는 월암서원은 1630년에 건립하여 1694년(숙종 20)에 사액을 받았다. 해평면 낙성리에 있는 낙봉서원은 1647년에 건립하여 1787년(정조 11)에 사액을 받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1년에 복원하였다. 그 외에도 무동서원·송산서원·사양서원·소암사우·현암사우 등이 건립되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되었다.
[교통]
경상도의 중앙에 위치한 선산은 남해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육로, 남해에서 안동까지 연결되는 수로, 경상도 감영인 대구와 도내의 요충지인 경주·상주·안동·성주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산은 국방의 중심 지역으로도 중시되었다. 관방 시설에는 유사시 방어의 거점이 된 금오산성과 천생산성이 있었고, 통신 시설에는 석현봉수·남산봉수가 있었으며, 교통 시설에는 유곡도(찰방)의 지휘를 받는 구며역·안곡역·연향역·상림역과 죽현원·안곡원·상림원 등이 있었다.
[경제]
구미 지역은 사방이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고 낙동강이 서북에서 동남으로 관류하면서 광활한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농산물과 약초 등 특산물이 생산되었다. 농산물에는 벼·보리·콩 등이 있었고, 토산물에는 해송자(海松子, 잣)·율(栗, 밤)·완초(莞草, 돗자리)·칠(漆)·시(柿, 감)·즉어(鯽魚, 붕어)·이어(鯉魚, 잉어)·은구어(銀口魚, 은어)·금린어(錦鱗魚)·눌어(訥魚) 등과 약재인 백복령(白茯苓)·산약(山藥)·백지(白芷)·맥문동(麥門冬)·구기(拘杞) 등이 있었다.
구미 지역의 대표적 특산물로는 땅콩, 배추, 무, 인삼, 선산약주 등이 있었다. 특히 낙동강 연안에서 재배되는 질 좋은 땅콩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고아읍 괴평리·다식리와 해평면 문량리 앞들의 배추와 예강리 앞들의 무는 예로부터 서울·부산에서 비싼 시세로 거래될 정도로 유명하였다. 해마다 가을철 김장할 무렵이면 무·배추를 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상인들로 일대 혼잡을 이루었다.
또한 조선시대부터 진상품으로 유명한 도개인삼은 송도의 인삼 재배법을 옮겨와서 재배한 인삼으로, 그 품질의 우수함이 송도인삼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선산약주는 일명 송로주(松露酒)로, 선산 지방에서 5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찹쌀·멥쌀·누룩으로 빚은 민속주이다. 엷은 황갈색에 감칠맛이 감돌며 달콤하다. 장시에 대한 기록은 『임원경제지』·『영남읍지』 등에 있다. 『임원경제지』·『영남읍지』에 의하면, 1830년경의 5일장으로는 군내에는 읍내장이 2·7일, 해평장이 4·8일, 두천장이 5·10일, 구미장이 1·6일, 인동부내장(仁同府內場)이 2·7일, 대교장(大橋場) 등이 개시되어 곡물·무명·소·식염·해산물 등이 거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