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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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凰山里 |
영어음역 | Hwangsan-ri |
이칭/별칭 | 물항,물목,봉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황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향림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앞에 비봉산이 있어서 봉산(鳳山)이라 하였다가, 수놈인 봉(鳳)끼리 마주 보는 것은 좋지 않다 하여 황산(凰山)이라 하였다. 또 비봉산의 봉(鳳)과 황산동의 황(凰)이 앞들의 소나무 숲이 우거진 오봉산에서 알을 낳고 그 알을 서로 지켜보았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물항(勿項)·물목이라고도 부른다.
자연마을로 가운데골목, 큰골목, 동누케(동녘), 새터 등이 있다. 가운데골목은 동네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약 70m의 긴 골목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큰골목은 가운데골목에서 서쪽으로 약 30m 떨어진 곳에 있는 넓고 큰 골목이다. 옛날에 큰골목을 중심으로 가옥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동누케는 가운데골목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처음 동쪽에 집이 들어설 때는 없는 이름이었으나 서쪽 새터에 집이 많이 들어서자 새터에서 볼 때 동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는 가운데골목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는 마을로 동누케 서쪽에 새로운 생긴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초기에 서내방(西內坊)에 속한 퇴항동리(退項洞里)로 1896년 서내면(西內面) 황산동리(凰山洞里)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아면(高牙面) 황산동이 되었고, 1988년 동이 리(里)로 바뀜에 따라 고아면 황산리가 되었다. 1995년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고아면 황산리가 되었고, 1997년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고아읍 황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감천이 흐르고, 마을 앞에는 비옥한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마을 뒤쪽은 산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배산임수 지형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산으로는 선주교에서 마을 진입로 왼쪽에 부래산, 공동묘지와 안골 사이에 백마산, 파산리과 경계 지점에 진등산, 당산(재실뒷산)의 주산인 장구장산, 새터 뒤쪽에서 감천을 막아선 양숙산 등이 있다. 논으로는 동네논·내갈논·술집배달논·새배달논·정지나무걸·쌍거름배기·웃장나들·아랫장나들·어상개·덤붕가·굼논·시파다·깁낭골·석수·갯논·밭새·하수문걸 등이 있고, 밭으로는 갯밭·고감내·갱변·뒷개 등이 있다. 못골, 가랑골, 성지골, 잿샘골, 불당골, 막등, 진등, 새골, 안골 등의 산골짜기가 있다.
[현황]
고아읍 소재지 서북쪽 4.5㎞ 지점에 있는 마을로,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3.89㎢이며, 총 115가구에 285명[남 139명, 여 14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파평윤씨·인동장씨·김해김씨 순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특히 파평윤씨는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90년 이후 이농 현상으로 가구 수가 해마다 줄고 있으며, 노인 인구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방도 916호선이 신촌들에서 황산 뒷개고개를 거쳐 마을 앞길을 따라 선산농협 앞 도로와 연결된다.
특산물로 사과와 땅콩, 수박 등을 재배하였으나 지금은 뚜렷한 밭농사 작목이 없고 상황에 따라 참깨나 고구마 등을 재배한다. 오래전부터 왕골을 재배하여 한때는 물목돗자리의 명성을 높인 적도 있다.
주민들 대부분이 유교와 불교를 믿으며, 기독교는 1950년대 중반에 선산읍교회에서 처음 선교 활동을 시작한 후 주민의 호응이 없어 10여 년간 교회를 방치하였다가 1988년에 활동을 재개하였다. 유적으로는 못골 위 산66~69번지 일대의 고분군, 282번지의 불당골, 402번지의 연안김씨 열녀각, 당산 밑 373번지 파평윤씨 재실 등이 있다.
마을 형성기부터 매년 정월 대보름 당산(堂山)에서 당제(堂祭)를 지내 오다가 1972년을 마지막으로 지내지 않는다. 또 한 해 농사가 끝나면 동짓달 하순에 음식을 마련하여 마루, 부엌, 광, 마구간, 마당 등에 있는 여러 신에게 제를 지내고 소지(燒紙)를 올려 그해의 수확에 감사하고 다음 해의 풍년을 빌기도 하였다.
마을에는 비봉산의 봉황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 온다. 비봉산의 수컷 봉(鳳)과 황산(凰山)의 암컷 황(凰)은 서로 마주 보는 형상인데, 두 마리의 봉황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그물을 친다는 뜻에서 이름을 망장방(網張坊)이라 하고, 오로리 뒷산에 매[鷹]를 두어 잡새들의 침입을 막는다는 뜻에서 매방골[鷹放山]이라 이름 지어 봉황을 보호했다고 한다.
그 후 선산읍 앞들 동산걸[冬至山]의 숲을 베어 냈을 때 다섯 개의 동산이 마치 봉황의 알처럼 드러났는데, 이에 두 마리의 봉황이 알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라 하여 이곳을 명당이라 하였다. 뒷개고개 마루와 봇돌고개 밑 약샘 앞에 성황당이 있었으나 뒷개고개 성황당은 고개가 시멘트로 포장됨에 따라 흔적이 없어졌고, 봇돌고개 성황당은 밭으로 개간되고 통행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