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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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天行 |
영어음역 | Bak Cheonhaeng |
이칭/별칭 | 여건(汝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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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729년 |
몰년 | 1791년 |
본관 | 밀양 |
대표관직 | 대간원대사간 |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여건(汝健).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박춘보(朴春普)이다.
[활동사항]
박천행은 1774년(영조 50) 45세의 만학으로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의 문학·사서·필선, 사헌부의 지평·장령·집의, 홍문관의 부수찬·수찬·부교리·교리·부응교·응교, 승정원의 동부승지·좌부승지, 사간원의 대사간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안동대도호부사를 역임하였다. 박천행은 간관으로 재직 시 칼날 같은 권세도 무서워하지 않고 소임을 다하였다. 그와 관련하여 다음의 기록이 전한다.
1779년(정조 3) 11월 21일 사헌부지평이었을 때, 홍문관 관원을 소집한 자리에서 “조정에서 곡식을 사들이고 팔고 하는 것은, 예규(例規)에 있어서는 곡식이 흔할 때 값을 올려 사들임으로써 농민을 이롭게 하고 귀할 때 값을 내려 균청(均廳)에 쌀을 팔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들이고 팔고 하는 예를 보면 쌀이 떨어졌다고 하여 비쌀 때는 상인들로부터 사들여 시중의 쌀값을 폭등시키고 민정을 갈급(渴急)하게 하니 전하께서는 이를 금단(禁斷)하시어 도시민(都市民)으로 하여금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 계언하였다. 이에 정조가 즉시 해당 관서에 명하여 시장을 조사하도록 하니 과연 쌀값이 엄청나게 비싼 것을 확인하고 시정토록 했다.
또 1780년(정조 4) 5월 홍국영(洪國榮)이 도승지로 있을 때 여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 비행이 많았다. 이에 박천행은 사헌부대사헌, 사간원대사간으로서 부제학 심염조(沈念祖) 등과 삼사 합동으로 상소하여 5~6년 후에 정조가 홍국영을 파직하고 유배보내도록 하였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손자 박내만(朴來萬)이 높은 벼슬에 오르자 이조참판겸홍문관제학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