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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 사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994
한자 院里寺址
영어의미역 Temple site in Won-ri
이칭/별칭 강락사지(江洛寺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183 일원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희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지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통일신라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183 일원지도보기
소유자 직지사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절터.

[개설]

선산 읍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6㎞ 떨어진 원리(院里)에서 낙동강안을 따라 북쪽으로 1㎞쯤 보행하면 강창(江倉)마을에 이르는데, 이 마을 남쪽 산록에 옛 절터가 있다. 강창은 지금까지도 불리는 이 마을의 통칭인데 강창이라는 지명 자체가 역사, 지리적인 유래를 지니고 있다.

30년 전에도 해평면 일대에서 도보로 선산 읍내로 들어올 때에 나룻배를 이용할 경우 반드시 이곳 강창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강창이 조선시대에 성했던 하운창(河運倉)을 연상케 하나, 현재 이 지역에서 하운창으로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유적은 전혀 없다.

[위치]

선산읍 원리 서원마을을 지나 낙동강 서안 범람원을 따라 난 소로로 끝까지 들어가다 보면 왼쪽 편에 대나무 밭이 나타난다. 원리 사지는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68년 조사에서 발견된 원리 사지의 삼층석탑은 도괴되어 탑재만이 산재하고 있었다. 당시 주민의 말에 의하면 “1930년대 말엽까지도 이 석탑은 건재하여서 어릴 때부터 이 탑에 올라가 놀았는데 일제강점기 말에 괴한 두 명이 나타나 이 석탑을 쓰러뜨리고 보물을 가져갔다”고 한다.

삼층석탑은 1917년의 사진을 보아 완전한 형태였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도 ‘높이 1장5척(高サ一丈五尺)의 완전한 삼층석탑’이라고 하였다. 이후 이 석탑은 도괴되어 주변에 탑재가 방치되어 있는데, 각 부재가 완전하지 않았다. 사방 공사 때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석축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파괴하였다는 것이다.

1968년에도 근처의 석축에서 정연히 치석된 탑재의 파편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지붕돌[옥개석] 3석이 완전하고 탑신은 2석만 완전하나 깨어진 탑재 수편이 남아 있어 원형은 짐작되었다. 현재 삼층석탑은 직지사 성보박물관 건물의 뒤편 마당에 옮겨졌다.

[현황]

삼층석탑이 있었던 자리에는 현재 ‘강락사삼층석탑지(江洛寺三層石塔址)’라 음각된 표석이 세워져 있고, 이 뒷면에는 원리 삼층석탑을 1976년 선산군청 구내로 옮겼다가 1980년에 직지사로 옮겨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직지사에 옮겨 세운 삼층석탑은 현재 성보박물관 건물의 뒤편 마당에 있는데, 기단부 일부의 석재와 탑신부 약간의 석재를 보강하고 상륜부를 새로이 조성하였다. 원리사지에는 현재 논밭으로 경작되는 곳에 토기편, 기와편, 자기편 등이 산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곳 원리 사지에 있었던 석탑에 관하여는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선산면 원동 탑의 높이는 1장5척의 3중 석탑으로 완전하다(善山面 院洞 塔ハ高サ一丈五尺ノ 三重石塔ニ ツテ 完全ナリ)”라는 기록이 보인다. 석탑은 완형에 가깝고 강락 사지로 추정되므로 발굴 조사를 통하여 정확한 사명, 사역, 창건 연대 등을 밝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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