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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호 처 양성이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122
한자 郭泰鎬妻陽城李氏
영어의미역 Virtuous Woman Mrs. Yi, Gwak Taeho's Wife
이칭/별칭 열녀 양성이씨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열녀
출신지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성별
생년 1897년연표보기
몰년 1918년연표보기
본관 양성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열녀.

[개설]

본관은 양성(陽城). 아버지는 이석배(李碩培)이며, 남편은 현풍곽씨(玄風郭氏) 곽태호(郭泰鎬)이다.

[활동사항]

곽태호의 처 양성이씨는 16세에 시집온 후 시부모와 남편을 잘 모시고 부도(婦道)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이 중병으로 5년 동안 앓게 되자 그 병을 자기가 대신 앓기를 매일 같이 기도했지만, 남편은 끝내 1918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양성이씨는 남편을 따라 죽고자 마음먹었으나 시부모님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유복(遺腹)인 딸을 낳았다. 그 후에 며칠 동안 단식하면서 남편의 빈소에서 통곡하다가 뜰에 떨어져 자결하였다. 10년 뒤에 개장(改葬)하게 되었을 때, 남편 곽태호의 시신은 육탈하였으나 양성이씨의 시신은 생시와 같이 광중(壙中)에서 자색(紫色)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상훈과 추모]

인동의 유림이 양성이씨의 열행과 부덕을 품신하여 표창하였으며, 1925년 8월에 정려각을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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