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1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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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寒食 |
영어공식명칭 | Hansik |
이칭/별칭 | 냉절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양하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4월 5일이나 6일경에 행하는 4대 명절 가운데 하나.
[개설]
경상남도 함양군의 4대 명절 중의 하나이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거의 4월 5일이나 6일경에 절기 제사를 지내고 조상의 무덤을 보수하였다. 현재는 한식 풍습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연원 및 변천]
한식의 연원은 중국의 개자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중국 춘추 시대에 진나라 문공이 왕이 되어 충신들을 포상하였다. 개자추는 문공이 곤경에 처하여 굶주리고 있을 때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 내어 바친 충신이었으나 포상자 명단에 들지 못하였다. 이에 개자추가 산중에 숨어 버리자 문공은 잘못을 뉘우치고 개자추를 찾아왔지만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불을 지르면 나올 것이라 여겨 면산에 불을 질렀고,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여 이날은 불을 지피지 않고, 찬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이것을 한식·냉절이라 하였다.
한식은 24절기 중의 하나인 청명과 같거나 하루 차이가 나므로 이날 성묘를 하고 묘를 깨끗이 하며 나무를 심기도 하였다. 이날만큼은 묘를 옮기거나 사토(莎土)[무덤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 일]를 하여도 손재가 없다고 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인 명절이어서 나라에서는 종묘와 능원에 제를 지내고 농가에서는 농작물의 씨를 뿌렸다고 한다. 조선 시대 때 내병조에서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구멍을 뚫고 삼으로 꼰 줄을 꿴 다음 양쪽에서 톱질하듯 잡아당겨 불을 만들었으며 이를 임금님께 올렸다고 한다. 이는 불의 주력을 숭배한 것이다. 수령들은 이 불을 받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때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의 불이 없는 날을 한식이라 여겼다고 한다. 이후 1960-19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한식의 의미보다는 식목일의 의미가 더 부각이 되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경상남도 함양군에서도 한식에는 묘제를 지내 왔으나 오늘날에는 거의 시월에 한 번 지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식과 청명이 거의 비슷하거나 같은 날에 들어 오늘날에는 한식보다 식목일이 더 부각되었으며 나무 심기 좋은 날로 여겨지고 있다.
한식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가 허물어진 봉분을 고치는 일을 주로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장묘 문화도 달라져 화장을 주로 하지만, 봉분이 있는 집안에서는 여전히 봉분을 돌보는 날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산이나 묘소 근처에 나무를 심기도 한다.
예전에는 먹거리 풍습으로 약밥이나 찬밥을 먹었으며 쑥이 가장 좋을 때라 쑥떡과 쑥국을 끓여 먹었다. 경상남도 함양군은 산지가 많아 쑥이 많이 나기 때문에 이즈음 쑥과 관련된 음식을 많이 해 먹었다.
요즘에도 한식날 특별한 음식을 해 먹지는 않지만, 특별히 날을 정하진 않아도, 이즈음 쑥으로 쑥국이나 쑥떡을 해 먹는 집은 종종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