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동 전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399
한자 細洞戰鬪
영어공식명칭 Battle of Sedong Villag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고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1년 4월 1일연표보기 - 세동 전투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51년 4월 1일연표보기 - 세동 전투 종결
발단 시기/일시 1951년 2월 7일연표보기 - 견벽청야작전 시행
발생|시작 장소 세동마을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지도보기
종결 장소 세동마을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지도보기
성격 빨치산 전투
관련 인물/단체 빨치산 이영희 부대|송전리 마을주민|국군토벌대

[정의]

1951년에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에서 발생했던 빨치산과 국군토벌 간의 전투.

[역사적 배경]

한국전쟁 때인 1951년 2월 7일에 지리산 일대 공비 토벌작전을 전개하던 중, 육군 11사단장 최덕신의 명령으로 빨치산 게릴라지구 내에 모든 산림을 비롯해 산간마을을 소개하는 견벽청야작전을 전개하였다. 빨치산의 보급로와 숙식을 차단함으로써 빨치산 세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적을 소탕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경과]

견벽청야작전으로 함양군 엄천지구 오지인 송전리·운서리·문정리 3개 마을을 소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총 200여 가구 6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은 살림살이도 없이 가축을 몰고, 인접마을을 포함한 외지로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마을을 떠나야 했다. 11사단 9연대는 공비토벌을 위해 비워진 마을을 모두 불태웠다. 폐허가 된 함양군 송전리 주민들은 최후 봉쇄선인 문하·한남·남호 등지에 식량과 가축들을 옮겨 놓고, 낮에는 마을에 들어가 일을 하고 밤에는 다시 되돌아 나오는 생활을 이어 갔다. 1951년 4월의 못자리를 설치할 시기가 되자 송전리 주민들은 농막을 짓고 일을 했는데, 빨치산들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 수색대원 1명과 민방위 특공대 8명이 농막 주변을 지키게 했다.

[결과]

1951년 4월 1일, 지리산 노장대 천연동굴에 머물던 빨치산 이영희(李英姬) 부대원 100여 명은 송전리 세동마을을 지나 수성골로 이동하던 중에 농막 주변에서 마을 주민과 경찰대원의 광경을 목격하고 집중 사격을 가하였다. 빨치산들의 공격으로 경찰과 특공대원 7명 사살, 2명 생포되는 참상을 입게 되었고, ‘세동 전투’라 부른다.

[의의와 평가]

한국전쟁 중 공비토벌을 위해 민간인 지역을 집단 소개시킨 작전에 의해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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