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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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李氏 |
영어음역 | Gyeongju Issi |
영어의미역 | Andong Gwo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인호 |
세거|집성지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 |모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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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이알평(李謁平) |
입향 시조 | 이타(李鼉) |
[정의]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경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 6촌 중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의 촌장인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며, 다른 이씨 중에서도 이알평에 연원을 두고 있는 본관이 많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묘지(墓誌)를 지으면서 신라 말 소판(蘇判)에 이른 이거명(李居明) 이후의 세계(世系)를 자세하게 적은 것이 계기가 되어 소판공(蘇判公)을 중시조(中始祖)로 모시고 있다. 중시조인 이거명의 16대손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여러 파로 분파되었다. 현달(顯達)한 가문으로는 상서공파의 ‘오신집[五臣집]’과 ‘백사집[白沙집]’, 익재공파의 ‘팔별집[八鼈집]’, 국당공파의 ‘팔정집[八廷집]’, 우의정 이완(李浣)의 ‘매죽헌집[梅竹軒집]’,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화곡집[華谷집]’ 등이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조선에 들어와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명신을 배출하였다.
제천에 입향한 경주 이씨 중 대표적 인물로는 이경윤이 있다. 이경윤은 문과를 거쳐 승지에 이르렀다. 특히 이경윤의 아들 이대수(李大遂), 이대건(李大建), 이대적(李大迪) 삼형제가 사마시에 입격함으로써 족세를 크게 떨쳤으며, 이대수의 아들 이시진(李時振)은 충렬로 정려를 받았다. 경주 이씨는 사화를 거치면서 지역에 내려왔지만 통혼과 임진왜란 때의 공훈을 통해 조선 중기 지역의 대표적인 재지 사족으로 성장하였다.
[입향 경위]
경주 이씨는 이공린(李公麟)의 넷째 아들인 이타(李鼉)가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하고 처의 고향인 제천에 이거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이공린은 이제현의 6세손이며, 박팽년(朴彭年)의 사위로 장인의 죄에 연좌되어 관직에 나가지 못하다가 사면되었다. 이타의 배위 의흥 박씨는 호군(護軍) 박지홍(朴之鴻)의 딸이다. 재사당 이원의 아들 이발은 출계하여 이타에게 입양되었으며, 연산군 때 통례로서 간쟁하다가 사망하였다. 이후 이타계는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현황]
1964년 「제천군각읍면씨족별통계표」에 따르면 경주 이씨가 제천읍에 255세대 거주하였으며, 1998년 마을지에 따르면 제천시 모산동, 송학면 송한리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최근에는 본관 성씨별 자료를 수집하지 않아 자세한 세대수는 알 수 없으며, 2000년 자료에 따르면 제천시에는 경주 이씨가 1,833가구 5,767명이 있었다.
[관련 유적]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에 경주 이씨 묘역이 있는데, 이곳에 이발, 이대수, 이경윤 등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