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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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端相 |
영어음역 | Yi Dansang |
이칭/별칭 | 유능(幼能),정관재(靜觀齋),서호(西浩),문정(文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제규 |
[정의]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능(幼能), 호는 정관재(靜觀齋)·서호(西浩). 할아버지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이고, 아버지는 대제학(大提學)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이다. 외할아버지는 박동량(朴東亮)이며, 부인은 이행원(李行遠)의 딸이다. 지촌(芝村) 이희조(李喜朝)가 아들이다.
[활동 사항]
이단상(李端相)[1628~1669]은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고, 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說書)·대교(待敎)·교리(校理) 등을 거쳐 이조와 병조의 정랑(正郞)을 역임하였다. 1655년(효종 6)에는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대간이 되었다.
효종이 승하한 뒤에는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잠시 청풍 부사(淸風府使)를 지냈으며, 1658년(효종 9) 응교(應敎)를 거쳐 인천 부사(仁川府使)가 되었다. 1664년(현종 5) 사헌부 집의가 되어 입지권학(立志勸學)에 관한 다섯 조목을 상소하고 스스로 관직을 떠났다.
홍명하(洪命夏)·송준길(宋浚吉)·조복양(趙復陽) 등이 학문과 덕행을 인정, 경연관(經筵官)에 추천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양주 동강(東岡)으로 은퇴하였다. 그 뒤 승정원 승지와 병조 참지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1669년(현종 10) 부제학으로 서연관을 겸하였으나 곧 사양하고 물러났다.
[학문과 저술]
부제학을 사퇴한 뒤 양주에 머무르면서 학문에 전념하였는데, 아들 이희조를 비롯하여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삼연 김창흡(金昌翕), 창계(滄溪) 임영(林泳) 등 쟁쟁한 학자들을 길러냈다. 저술로 『대학집람(大學集覽)』, 『사례비요(四禮備要)』, 『성현통기(聖賢通紀)』, 『정관재집(靜觀齋集)』 등의 유고가 남아 있다.
『정관재집』은 시문집으로 16권 6책의 목판본이다. 책머리에 송시열(宋時烈)·박세채(朴世采)의 서문과 책 끝에 문인 임영(林泳)·윤지선의 발문이 있다. 권1~권3에는 시, 권4~권6에는 교서(敎書)와 소(疏), 권7에는 계(啓), 권8~권13에는 서(書), 권14에는 서(序)·발(跋)·제문(祭文)·공이(公移) 그리고 권15에는 부록으로 박세채가 지은 행장(行狀)과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 등이 수록되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있고, 김수항(金壽恒)이 지은 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1680년(숙종 6) 민정중(閔鼎重)의 건의로 이조 참판 겸 경연양관 제학이 추증되었고, 다시 이조 판서로 추증되었다.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인천(仁川)의 학산서원(鶴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