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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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恭 |
영어음역 | Cheonggong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정의]
고려 후기 제천 출신의 승려.
[활동 사항]
청공(淸恭)에 대해 『제천군지(堤川郡誌)』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청공은 청풍 태생의 승려로 1317년(충숙왕 4) 왕사가 되었다. 만년에는 고향인 청풍에 퇴거하여 살았다. 청공의 공적에 따라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지방관이 감무에서 군수로 바뀌었다. 청공은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청풍 한벽루(寒碧樓)를 창건하였다.”
그런데 충숙왕 대 왕사를 지낸 청풍 출신의 혼구(混丘)[1251~1322]에 대해 「유원고려국조계종자씨산영원사보감국사비명(有元高麗國曹溪宗慈氏山瑩源寺寶鑑國師碑銘)」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보감 국사는 휘가 혼구, 자는 구을(丘乙), 구명은 청분(淸玢), 속성(俗姓)은 김씨이다. 아버지는 증첨의평리(贈僉議評理) 김홍부(金弘富)이며 청풍군(淸風郡) 사람인데, 황려 민씨(黃驪閔氏)의 딸에게 장가들고 복령사(福靈寺) 관음 불상에게 기도하여, 충헌왕(忠憲王) 27년[신해] 7월 27일에 국사를 낳았다.
열 살 때 무위사(無爲寺)의 천경 선사(天鏡禪師)에게 나아가 중이 되었으며, 보각 국존(普覺國尊)에게 종학(從學)하였다. 충렬왕 때 대선사(大禪師)에까지 올랐으며, 충선왕 때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을 제수 받고 ‘대사자왕법보장해국일(大師子王法寶藏海國一)’이라는 호를 받았다. 1313년 충숙왕이 즉위한 후 ‘오불심종해행원만감지왕사(悟佛心宗解行圓滿鑑知王師)’로 책명(冊命)받았다. 2년 후에는 은퇴를 청하여 영원사(瑩源寺)에서 있다가 1322년 임종 직전 송림사(松林寺)로 옮겨 임종하였다.
저술로는 『어록(語錄)』 2권, 『가송잡저(歌頌雜著)』 2권, 『신편수륙의문(新編水陸儀文)』 2권, 『중편지송사원(重編指頌事苑)』 30권 등을 남겼다. 왕은 애도하며 ‘보감국사(寶鑑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호(塔號)를 ‘묘응(妙應)’이라 하였다.”
현재 이 두 사람이 동일인이지 다른 인물인지 알 수 없지만, 혼구의 속명으로 보아 두 인물이 일정하게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