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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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Neobunae Adeulbawi |
영어의미역 | Son Stone of Neobuna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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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관련 지명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 |
채록지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 |
성격 | 전설|기자치성담|암석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남편|아내 |
모티프 유형 | 가문을 이어 준다는 주인과의 약조|바위에 치성을 드려 낳은 아들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 너부내마을에서 아들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너부내 아들바위」는 가문을 잇게 해달라는 주인 부부와의 약조를 지키려고 너부내 건너편에 있는 바위에 가서 치성을 드려 아들을 얻었지만, 아내를 걱정하던 남편은 계곡물에 휩쓸려 죽게 되었다는 기자치성담이자 암석유래담이다. 덕산면 도전리 너부내[廣川]마을에 ‘아들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그곳을 ‘바위절벽’, ‘바위낭떠러지기’라고도 부른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에서 간행한 『전설지』와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천시지』 등에도 이를 참고하여 동일하게 수록하고 있다.
[내용]
옛날에 나이 지긋한 한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남편이 이웃집 일을 해주며 살았다. 이들 부부는 모두 부지런하여 주인집 일을 자기 일처럼 했으며, 주인집도 한 식구처럼 대해 주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부부나 주인 부부 사이에 자녀가 없었다. 두 부부는 같은 처지라 서로 위로하며 살았다. 몇 년이 지난 후 주인 부부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주인 영감이 운명하기 전 이들 부부를 불러 놓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주겠다고 유언을 하였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당부하기를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낳아 가문을 잇게 해달라고 것이었다.
주인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부부는 아이를 낳아 주인 부부의 소원을 이뤄주는 것이 은혜 갚음이라 여겼다. 그래서 너부내 건너편에 있는 큰 바위에 가서 날마다 치성을 드리기로 하였다. 열 달이 지나도록 하루도 치성을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부인은 어느새 임신을 하게 되었고, 해산이 임박해 왔다. 어느 한 날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리고, 밤이 이슥해서 치성을 드리러 나가는 아내가 걱정이 되어 남편이 따라 나섰다. 산 계곡의 물은 금방 늘어나 내외가 건너는 너부내 가운데는 물이 가슴까지 채였고, 금방이라도 떠내려 갈 듯 물살이 세었다. 그러나 하루도 거르지 않겠다고 약속한 치성을 그만둘 수는 없어서 내외는 힘을 다해 건넜다.
너부내를 건넌 후 남편은 냇가에 남아 비를 맞으며 아내를 기다렸고, 아내는 혼자 커다란 바위에 올라 제물을 차려 놓고 치성을 드렸다. 남자가 산신에게 치성 드리는 것을 보면 부정을 타기 때문에 남편은 냇가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내의 치성이 길었고, 아내가 치성을 드리는 동안 냇가에 앉아 있던 남편은 한꺼번에 밀어닥친 물살에 휩쓸려 버렸다.
치성이 끝나갈 무렵 비가 개였고, 산속의 냇물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고요하게 흘렀다. 그러나 냇가에 남편은 없었다. 지루해서 먼저 돌아갔거니 생각한 아내는 혼자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아침 아들을 순산하였다. 그런데 사내아이가 태어나서 첫 미역국도 먹지 않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냇가에서 건진 남편의 시체를 들고 대문으로 들어섰다. 그 후로 사람들은 치성을 드린 바위를 ‘아들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너부내 아들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가문을 이어 준다는 주인과의 약조’, ‘바위에 치성을 드려 낳은 아들’ 등이다. 너부내마을에 위치한 아들바위의 유래를 알려 주는 「너부내 아들바위」는 아들은 얻지만, 아들을 낳기 하루 전 남편이 목숨을 잃게 되어 비극적인 이야기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