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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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雲面 뱃재 由來 |
영어음역 | Baegun-myeon Baetjae Yurae |
영어의미역 | Origin of Baetjae in Baegun-myeon |
이칭/별칭 | 「뱃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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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관련 지명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
채록지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
성격 | 전설|지명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경순왕 |
모티프 유형 | 용화산 미륵불을 향해 절한 경순왕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에서 뱃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백운면 뱃재 유래」는 경순왕(敬順王)[? ~978]이 황산사(黃山寺)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용화산 암벽에 조각된 미륵불에게 절을 올렸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백운면 화당리에서 강원도 원주로 넘어가는 고개를 뱃재 또는 배령(拜嶺), 배치(拜峙)라고 한다. 또한 백운면 방학리에는 경순왕의 이궁지(離宮址)가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에서 간행한 『전설지』와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천시지』 등에도 이를 참고하여 동일하게 수록하고 있다. 이들 문헌에는 모두 「뱃재[拜嶺]」로 되어 있다.
[내용]
경순왕은 신라 56대 왕위에 오른 지 9년 만에 왕건(王建)[877~943]에게 신라 천 년 사직을 물려주고 스스로 신하의 예를 취하였다. 왕건은 경순왕을 정승의 예로써 대우하고, 신라의 옛 땅을 식읍(食邑)으로 주었다. 그러나 경순왕은 각지의 명산을 찾아다니다가 방학리에 이궁(離宮)인 동경저를 짓고 머물렀다.
또한, 강원도 원주 용화산 암벽에 미륵을 조각케 하고, 황산사에 종을 달게 하였다. 경순왕은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황산사의 스님을 시켜 종을 치게 하였다. 그리고 지금의 원주로 넘어가는 고개에 가 있다가 종소리가 나면 미륵불을 향해서 절을 올렸다. 망국(亡國)의 왕으로 천 년 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절이었다. 그래서 이 고개를 뱃재, 배치라고 불렀다.
[모티프 분석]
「백운면 뱃재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용화산 미륵불을 향해 절한 경순왕’이다. 여기에서의 절은 망국의 왕으로 신라 천 년 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절이다. 이야기는 신라 마지막 왕의 처량하고 애처로운 모습을 ‘뱃재’와 연계해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