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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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樂洞長壽塔 |
영어음역 | Jangnak-dong Jangsutap |
영어의미역 | Jangsu Pagoda of Jangnak-dong |
이칭/별칭 | 「장수탑」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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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관련 지명 |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65-2 |
채록지 |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
성격 | 전설|장자못 전설|석탑형성담 |
주요 등장 인물 | 스님|시아버지|며느리|형제 |
모티프 유형 | 탑으로 변해 버린 장자의 집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에서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장락동 장수탑」은 시주를 온 노승에게 모래를 퍼 준 부자의 집이 탑으로 변했고, 두 형제의 죽음 때문에 장수탑이 조금 기울어졌다는 석탑형성담이다. 장락동에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이 위치해 있다. 보물 제459호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며, 흙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을 모방하였다고 하여 모전탑(模塼塔)이라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에서 간행한 『전설지』와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천시지』 등에도 이를 참고하여 동일하게 수록하고 있다. 이들 문헌에는 모두 「장수탑」이라고 되어 있으며, 1982년 『전설지』에는 장수탑이 기울어진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두 형제의 죽음 때문이라고 한다.
[내용]
옛날 장락리에 나이가 많은 스님이 시주를 왔다. 어떤 집 주인이 심술궂어서 곡식 대신 모래를 퍼 주었다. 옆에서 이것을 보고 있던 젊은 며느리가 다른 곳으로 가는 스님을 쫓아가서 쌀을 주고, 시아버지의 무례를 용서할 것을 빌었다. 노승은 며느리에게 얼른 이 자리를 피하라고만 이르고 홀연히 가 버렸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며느리는 우두커니 서있는데, 별안간 천지를 뒤흔드는 커다란 소리가 나더니 심술궂은 사람의 집은 탑으로 변하고 며느리는 돌로 변하였다. 노승이 착한 며느리에게 피할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었다. 장수탑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그런데 탑 옆에 큰 못이 생겼고, 못 속에 붕어 두 마리가 살게 되었다. 그 근처에 살던 나이 어린 두 형제 가운데 동생이 날마다 연못에 와서 붕어들과 놀았다. 이것이 샘이 난 형은 동생에게 붕어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동생은 싫다고 하다가 마지못해 붕어에게 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붕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동생은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 죽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후에 두 마리였던 붕어가 세 마리가 되어 다시 나타나 물속을 헤엄쳐 다니며 즐겁게 놀았다. 형은 붕어들을 잡아먹었다. 그랬더니 형 또한 죽고 말았다. 이때 형이 살던 집 쪽으로 탑이 조금 기울어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장락동 장수탑」의 주요 모티프는 ‘탑으로 변해 버린 장자의 집’이다. 약자에게 베풀지 못하고 인색한 사람은 재물이 아무리 넘친다 한들 결국에는 화를 당한다는 장자못 전설의 변이형으로 전국에 걸쳐 전승하는 광포설화이다. 성서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유형의 이야기로 세계적인 분포를 보인다. 「장락동 장수탑」은 단순히 보면 ‘선악상벌(善惡賞罰)’에의 강한 윤리관(倫理觀)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며느리에 집중하면, 며느리는 도승으로 표상되는 초월적 세계와 장자로 표상되는 세속적·물질적 세계의 중간에 위치한 중간자로서 인간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러한 유한성은 인간의 속성 또는 인간의 존재 양상으로 부각된다. 한편, 「장락동 장수탑」은 며느리의 행위가 명확하지 않으며, 탑이 기울어진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또 다른 이야기와 연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