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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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朱安洞支石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세호 |
성격 | 고인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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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북방식 |
크기(넓이 | 188×141㎝ |
두께) | 35~60㎝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57년 - 주안동 고인돌 인천박물관에서 발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5년 - 주안동 고인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미추홀 근린공원으로 이전 |
소재지 | 미추홀 근린공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던 고인돌.
[개설]
인천광역시에서 발견되는 청동기 유적으로는 간돌도끼[마제석부], 간돌화살촉[마제석촉], 반월형 돌칼[석도] 및 토기 조각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인 역시 고인돌 무리이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지역 고인돌 외에 원인천(原仁川) 지역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일곱~여덟 기, 주안동에 두 기, 문학동에 한 기가 조사·보고되었지만, 현재 그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는 학익동 고인돌 두 기, 주안동 고인돌 한 기, 문학동 고인돌 한 기뿐이다. 주안동 고인돌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완전한 형태의 고인돌 한 기와 이동된 고인돌 한 기가 있었다고 한다.
[위치]
주안동 고인돌의 원래 위치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는 용일 사거리 부근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주안동 고인돌은 1957년 인천 박물관이 주동이 되고 국립 박물관의 김원룡·윤무병·임천, 이화 여자 대학교의 이경성 등이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발굴 당시 고인돌은 뚜껑돌이 3분의 1 가량 흙에 매몰되어 있었던 상태였고, 발굴에 따라 뚜껑돌 아래 하부 구조가 드러났다. 고임돌의 수는 두 개로, 서쪽의 고임돌이 약간 내부로 기울어졌으며 석실의 남향 입구는 1매석으로 밀봉되어 있었다. 발굴 조사 결과, 지석묘의 구조가 북방식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형태]
지석묘의 뚜껑돌 크기는 약 188×141㎝이며, 두께는 35~60㎝이다. 묘실의 폭이 긴 쪽은 남북 방향이고, 뚜껑돌의 위 표면에는 한 변을 따라서 지름 약 3~6㎝ 정도의 성혈(性穴)[암반 표면에 홈처럼 파인 구멍으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음]들이 수십 개 관찰된다.
[출토 유물]
발굴 조사 결과,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현황]
발굴 조사 이후 주안동 고인돌은 시가지 확장으로 말미암아 1979년 8월 수봉 공원으로 이전되었으며, 2005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의 미추홀 근린공원으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