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326 |
---|---|
한자 | 尹世胄 烈士 生家地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노상하1길 25-3[내이동 881-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선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0년 - 윤세주 열사 생가지 발굴 조사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2월 8일 - 윤세주 열사 생가지 「윤세주 열사 어록비」 설치 |
소재지 | 윤세주 열사 생가지 - 경상남도 밀양시 노상하1길 25-3[내이동 881-2] |
성격 | 독립운동가 생가 터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윤세주가 태어난 집터.
[개설]
윤세주(尹世胄)는 1900년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서 태어났다. 생가 자택이 언제 건립되었고, 윤세주의 일가가 언제부터 거주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윤세주의 8대조인 윤이빙이 세거지인 전라도 무창에서 밀양현[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으로 이거한 17세기 후반 이후의 어느 시기로 추정된다.
1920년대 중반에 윤세주의 가족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감천리로 이주하였다. 윤세주가 의열단의 제1차 암살폭탄사건[일명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으로 투옥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수감되어 있던 시기이다. 윤세주의 옥바라지 등으로 가세가 기울어, 시내 중심가에서 다소 떨어진 곳으로 이주한 것이다. 이후 윤세주의 태어난 가옥은 소유주가 바뀌고, 성격 또한 상가로 바뀌었다.
현재 윤세주의 생가 터 인근에는 의열단기념관과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변천]
윤세주 열사 생가지는 1920년대 중반 윤세주의 가족이 밀양시 부북면 감천리로 이주하면서 소유주가 바뀌었다. 2009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2009년 항일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 당시 건물은 상가로 사용되고 있었다.
[위치]
윤세주 열사 생가지는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 있다.
[현황]
2022년 현재 윤세주 열사 생가지의 가옥은 멸실되고 없다.
[의의와 평가]
윤세주는 김원봉과 더불어 밀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다. 윤세주의 생가지를 보존하고 기리는 일은 항일독립운동의 현장이라는 경상남도 밀양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