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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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重大匡司徒廣理君 木像 |
영어공식명칭 | Wooden statue of Samjungdaegwangsado Gwangrigun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범북1길 43-16[교동 671-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태문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5월 2일 - 삼중대광사도광리군 목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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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6월 29일 - 삼중대광사도광리군 목상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장처 | 밀양시립박물관 - 경상남도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교동 480] |
원소재지 | 성황사 -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
성격 | 목상 |
재질 | 나무 |
크기(높이,길이,너비) | 74㎝[좌대 가로]|33㎝[좌대 세로]|135㎝[좌대 높이]|176㎝[인물 목상 높이] |
소유자 | 밀성손씨 문중 |
관리자 | 밀양시립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밀양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손긍훈의 목상.
[개설]
삼중대광사도광리군 목상(三重大匡司徒廣理君木像)은 밀양손씨의 입향조(入鄕祖)인 신라 말 호족 손긍훈(孫兢訓)의 모습을 나무로 조각한 것이다. 손긍훈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의 아들 신검을 황산전투에서 사로잡은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선정되고, 광리군(廣理君)에 봉해졌으며, 죽은 뒤에는 ‘삼중대광사도벽상공신(三重大匡司徒壁上功臣)’으로 추증(追贈)되었다. 원래 삼한벽공도대장군 박욱의 목상과 함께 추화산(推火山) 성황사(城隍祠)에 성황신(城隍神)으로 모셔졌지만 후손들에 의하여 춘복재(春福齋)의 현충사(顯忠祠)로 옮겨 모셔졌고, 지금은 밀양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삼중대광사도광리군 목상은 1995년 5월 2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한편 지금은 사라졌지만 2016년까지는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상부마을에 손긍훈과 박욱, 그리고 박욱의 두 부인을 모신 사당인 의충사(義忠祠)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매년 정월 14일 밤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형태]
삼중대광사도광리군 목상은 갑옷 대신 푸른 바탕에 구름무늬와 쌍학을 새긴 흉배가 있는 붉은 문관복을 입은 채 오른손으로 칼을 잡고 좌대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매서운 눈과 큰 키가 좌우를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 목상과 좌대는 분리되어 있다. 좌대의 크기는 가로 74㎝, 세로 33㎝, 높이 135㎝이고, 목상의 높이는 무릎을 구부린 것을 감안하면 176㎝ 정도이다.
[특징]
원래는 삼한벽공도대장군 박욱의 목상과 함께 진흙으로 만든 소상(塑像)이었다고 하나, 목상으로 바뀐 시기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밀양손씨 종친회에서는 매년 음력 3월[춘계]에 손긍훈의 영정이 있는 현충사에서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10월[추계]에는 무덤에서 제사를 지낸다. 손긍훈은 「손대장군 박대장군」과 같은 무용담이 지금도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설화로 채집될 정도로 박욱과 함께 밀양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