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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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曄 |
이칭/별칭 | 여회(汝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 여회(汝晦). 사간(司諫)을 지낸 윤시영(尹時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사랑 윤징(尹澄)이고, 아버지는 임천군수(林川郡守) 윤극신(尹克新)이며, 어머니는 동몽교관 남견손(南堅孫)의 딸 고성남씨(固城南氏)이다. 성척(成惕)의 딸 창령 성씨와 결혼했고, 사헌(司憲) 집의(執義)를 지낸 윤형언(尹衡彦)의 아버지이다.
[활동사항]
1580년(선조 13) 별시(別試)에서 병과(丙科)로 합격하여 한림(翰林)과 이조(吏曹) 낭관(郞官)을 거쳐 홍문관 교리(校理)에 이르렀다. 1591년(선조 24) 직강(直講)을 역임했고, 임진왜란 당시 고산 찰방(高山察訪)으로 있을 때 선조의 파천을 적극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았다. 1601년(선조 34)에는 함경도 재상경차관(災傷敬差官)으로 나가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그후 다시 외직으로 나가 서천(舒川) 군수로 있다가 죽었다. 유서경(柳西坰)과 망년지교(忘年之交)로 사귀었으며, 조상(弔喪) 시(詩)가 전해온다. 관직에 있는 동안 동생 윤돈(尹暾)의 후광을 많이 입었다.
[묘소]
죽은 뒤에 도승지(都承旨)로 추증 받았다. 묘는 수정구 금토동 산44번지[달래내로221번길 16] 능안골 남원윤씨 선영의 윤극신 묘역 아래에 북동향으로 위치하는데, 비문은 7세손 윤행임(尹行恁)이 썼다.
[상훈과 추모]
후에 도승지로 추증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