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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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之直墓 |
이칭/별칭 | 이지직 의 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3-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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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방형 봉분 |
건립시기/일시 | 1419년 |
관련인물 | 이지직 |
높이 | 1.3m |
지름 | 5.4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3-1 |
소유자 | 광주이씨 대종회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는 이지직의 묘.
[개설]
이지직[1354년~1419]은 여말선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初名)은 도(途), 자는 백평(伯平), 호는 탄천(炭川)이다.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이집(李集)의 아들이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1380년(우왕 6) 전구서승(典廐署丞)일 때 2등으로 급제하여 관동(關東)과 호서(湖西)지방의 관찰사를 지냈다.
1398년(태조 7)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으로 있었는데 소도(昭悼) 변란이 있자, 이를 극렬히 간하다 화를 입게 되었다. 이에 태종이 ‘이는 나의 친구인데 어찌 다른 사람의 부덕을 받고 하는 일이겠는가’라고 하고 변춘정(卞春亭) 또한 강력히 저지하자 금고의 처벌만 받게 하였다. 이후 광주(廣州)의 탄천(炭川)에 은거하며 독서를 일삼았는데, 배우러 오는 사람이 모두 탄천선생이라 하였다. 호는 여기에서 연유한 듯하다. 태종이 만년에 세종에게 다시 등용하라고 당부하여 세종이 즉위하면서 곧바로 형조 우참의(右參議)에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부임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다. 뒤에 청백리(淸白吏)가 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위치]
이지직의 묘소는 하대원동 태조사 부근의 이극돈 묘역 왼쪽의 나지막한 능선에 남향(南向)하여 있다.
[형태]
방형(方形)의 봉분은 뒷면에 두 단의 높은 토축활개를 마련하였다. 봉분의 앞면 하단에는 높이 34㎝, 너비 190㎝의 장대석 두 매로 둘레돌을 두르고 았다. 봉분의 크기는 높이 130㎝, 전후 3.8m, 좌우 5.4m이다. 또한 지직의 묘역 바로 위에는 배정경부인경주이씨(配貞敬夫人慶州李氏)의 묘가 있다.
묘소에는 봉분 중앙에 혼유석, 상돌, 장명등, 사각 향로석과 상돌 좌우로 묘표, 팔각 망주석, 복두의 문인석을 한 쌍씩 배치하였다. 또한 차양석을 계체석 상하로 두 개씩 배치하였다. 옛 석물은 봉분 우측의 묘표와 문인석뿐이다. 문인석은 좌우가 높이 155㎝에 얼굴 부분 42㎝의 소형이며, 복두(幞頭)로 통비형에 눈, 코, 입 등은 마모되었고 눈을 치켜 뜨고 있다. 기타 의문표시는 희미하다. 이극돈 묘역의 문인석과 마찬가지로 턱에 턱수염의 표현이 있다.
[금석문]
묘표는 봉분 좌우측에 각 1기씩 세워져 있다. 오른쪽의 원래 묘표는 백색화강암제의 비좌와 비신의 월두형이다. 비신의 비문은 전·후 양 면에 있으며, 앞면에는 세로 세 줄로 ‘贈議政府領議政行刑曺右參議寶文閣直提學李公諱之直之墓 貞敬夫人慶州李氏之墓’(증의정부영의정행형조우참의보문각직제학이공휘지직지묘 정경부인경주이씨지묘)의 비문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墓碣上下而上是夫人墓玄乙未十月立’(묘갈상하이상시부인묘현을미십월립)의 비문이 있다. 건립연대는 1653년(효종 4)이다.
봉분 좌측의 묘표는 백색화강암제의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운학문(雲鶴紋) 지붕돌[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신의 비문은 전·후·좌(前·後·左) 3면에 있으며, 앞면에는 세로 세 줄로 ‘贈議政府領議政行刑曹右參議寶文閣直提學廣州李公直之墓 貞敬夫人慶州李氏墓 在上’(증의정부영의정행형조우참의보문각직제학광주이공직지묘 정경부인경주이씨묘 재상)의 비문이 있다. 비문은 20대손 이채진(李埰鎭)이 서하였다. 후면의 음기는 10대손 通訓大夫行禮曹正郞兼春秋館記注官 休徵(통훈대부행례조정랑겸춘추관기주관 휴징) 이 찬하였으며, 건립연대는 1984년이다.
[현황]
현재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이씨 대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