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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321
한자 古阮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고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두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고원리 개설
법정리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고원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2.60㎢
가구수 169가구
인구[남/여] 293명[남 135명/여 158명]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관평 마을, 원촌 마을, 고적 마을, 지내 마을, 모산리를 통합하여 고원리(古阮里)라 하였다.

[자연 환경]

북쪽은 적성면 석산리 두류봉에서 내려오는 산맥이 적성면 내월리와 경계를 짓는다. 동쪽은 섬진강을 경계로 순창군 유등면 무수리와 연결되며, 서쪽은 적성면 운림리와 경계한다. 남쪽은 섬진강을 경계로 유등면 월탄리와 이어져 있다. 고원리는 산맥이 없이 섬진강을 끼고 평야 지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적성면 소재지로 2006년 도로 개설 시 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삼한 시대 부족 주거지도 발굴되었다. 일제 강점기 섬진강을 막은 어은정보(漁隱亭洑)에서 양수된 농업용수를 이용해 곡창 지대로 유명하다. 또한 1973년 순창군에서 제일 먼저 경지 정리를 실시한 곳이기도 하다. 국도 24호선이 지나가고 있어 교통이 발달하였으며, 아름다운 채계산과 백제 시대 역평현 터로 어느 지역보다 살기 좋은 환경이다.

[현황]

2021년 12월 31일 현재 고원리의 면적은 2.60㎢로 이 중 경지 면적은 논 1.10㎢, 밭 0.17㎢이다. 인구는 169가구, 293명으로 남자가 135명, 여자가 158명이다. 행정 마을은 관평 마을, 지내 마을, 모산 마을, 원촌 마을이다. 백제 시대와 신라 시대 때는 역평현적성현의 중심지로 현 터가 남아 있다. 동쪽에는 채계산이 있고, 그 밑으로 섬진강이 흐른다. 조약돌이 반짝이는 강가에 적성 3화[월화, 월선, 월계] 명기들이 뱃놀이를 즐겼던 대석교(大石橋)와 다리 옆에 100여 명이 앉아 즐길 수 있는 기생 바위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원촌리에는 많은 고인돌이 있었으나 근대화 물결로 경지 정리 때 많이 없어지고, 일제 강점기 때 우리 조상들의 부역으로 건설됐다는 원촌리적성교는 지금도 건재하다. 적성교는 6·25 전쟁 때 인민군이 남침하여 순창까지 밀고 내려오자 퇴로와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미군 전투기[B29호]가 다리 상판 2칸을 폭격하고 채계산에 부딪혀 산화한 역사적 사실을 묵묵히 말해 주고 있다. 국도 24호선을 주로 이용했으나 지금은 새로 제2 적성교를 건설해 이용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마을 앞 저수지를 활용해 벼농사 지은 것을 일본 사람들에게 빼앗겨 당시 주민들은 콩깻묵으로 연명하며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고원리에는 적성면 행정복지센터, 순창 경찰서 적성면 치안센터, 적성 초등학교, 순창 적성 우체국, 순창 농업 협동조합 적성 지점, 적성 보건 지소, 내월 보건 진료소 등이 있다. 1983년 연건평 372㎡의 2층 건물로 적성면 복지 회관이 지어졌으며, 이후 새마을 금고가 통폐합되면서 구 건물은 적성면 노인회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0.11 현행화 [상세정보] 가구수, 인구 변경, [현황] 인구 변경, 사무소→행정복지센터, 파출소→치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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