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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390
한자 鍾谷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종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대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종곡리 개설
법정리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종곡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2.97㎢
가구수 43가구
인구[남/여] 82명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종곡리(鍾谷里)는 서쪽으로 정읍시와 경계를 이루는 산지로 방산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적곡(赤谷) 마을, 북실 마을, 가운리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명칭 유래]

적곡(謫谷) 마을은 조선 시대에 잦은 당쟁과 사화로 선비들이 이곳에 은거하자 김신재가 후학에게 강(講)하기 적당한 장소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한편 마을 뒷산 바위가 종을 닮아 밤이면 종소리가 들린다 하여 종곡(鐘谷)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마을 재산을 숨겨 두었던 곳은 장재동(藏財洞)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장재울(臧財) 마을, 가운(暇雲) 마을, 장자골 마을, 두암(頭岩) 마을, 북실 마을을 묶어 적곡리(赤谷里)라 하였다. 전통 깊은 집성촌을 없애고 유생의 근거를 없애고자 ‘적곡(謫谷)’을 ‘적곡(赤谷)’으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다. 1996년 1월 다시 종곡리로 변경하였다.

[형성 및 변천]

종곡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형성되었다. 종곡리의 장재 마을, 적소 마을은 주변에 4개나 되는 선돌 등으로 미루어 부족 국가 시대부터 형성된 마을로 여겨진다. 두암 마을은 공자의 후예를 자처하는 공씨가 정착한 후 조선 전기에는 모두 300여 가구가 살았다. 특히 부안 김씨인 김백암이 내시 중추부사, 김백암의 동생 김농암이 상의원 주부를 지낼 무렵 관수당을 짓고 살았는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정자 아래 바위에 ‘관수당 마롱암 우암서(觀水堂磨聾巖尤庵書)’라고 글씨를 남길 정도로 권세 있는 동네였다. 관수당은 종곡리 마을 회관에서 가깝다.

[자연 환경]

종곡리는 북쪽으로 방산리, 동쪽으로 옥산리, 남쪽으로 신성리, 서쪽으로 정읍시 내장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구름이 쉬어 가는 곳이라는 뜻의 ‘가운(暇雲)’이라고 불릴 만큼 지대가 높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종곡리의 면적은 2.97㎢이며, 인구는 43가구, 82명이다. 주민 대부분이 쌀과 복분자, 블루베리를 재배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봉, 약초, 고사리 등의 생산이 많다. 가운 마을에는 보건 진료소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0.04 현행화 [상세정보] 가구수, 인구 변경
2022.09.30 현행화 [현황] 인구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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