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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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觀水堂磨礱巖巖刻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종곡리 산52-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서홍식 |
현 소재지 | 관수당 마롱암 암각서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종곡리 산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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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암각서 |
양식 | 행서 |
관련 인물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 |
크기(높이,길이,둘레) | 50㎝[세로]|240㎝[가로] |
소유자 | 부안 김씨 종중 |
관리자 | 부안 김씨 종중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종곡리 관수재 뒤편 바위에 새겨진 우암 송시열의 글씨.
[건립 경위]
관수당 마롱암 암각서(觀水堂磨礱巖巖刻書)가 언제 쓰였는지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아우 송시걸(宋時杰)이 순창 군수로 재임[1672~1675]할 때 쓴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순창군 쌍치면의 종곡 마을에는 송시열의 제자 농암(礱巖) 김택삼(金宅三)이 관수당(觀水堂)이라는 정자를 짓고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었는데, 이때 송시열이 김택삼을 방문하고 써 준 것으로 전한다.
[위치]
순창군 쌍치면 쌍계리에서 답동으로 가다가 시산리 쪽으로 가면 방산 삼거리가 나온다. 방산 삼거리에 방산 보건 진료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정읍 방향으로 직진하면 1㎞ 지점 우측에 부안 김씨의 선산 입구와 재실인 관수재(觀水齋)가 나온다. 관수당 마롱암 암각서는 관수재 뒤편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형태]
부안 김씨 선산 입구 야산에는 여러 개의 바위가 있는데, 이 가운데 높이 2m, 지름 4m 정도의 큰 바위 전면에 글씨를 새겨 놓았다. 글씨를 새긴 부분은 지상에서 150㎝ 부근이며, 글씨의 크기는 세로 50㎝, 가로 240㎝ 정도의 대자에 속한다. 마모가 되었지만 각자(刻字)의 깊이가 깊어 윤곽이 뚜렷하고, 비교적 정교하게 새긴 탓에 지금도 필획의 강약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관수당 마롱암(觀水堂磨礱巖)’이라고 행서로 새겨져 있으며, ‘우암 서(尤庵書)’라고 되어 있어 우암 송시열의 글씨임을 알 수 있다. 송시열의 글씨에 이어서 ‘부녕 김씨 세천(扶寧金氏世阡)’이라고 해서로 새긴 글씨가 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의 글씨이다. 관수당 마롱암 암각서는 송시열의 글씨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을 만큼 활달하고 기백이 있는 후기의 필치가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현황]
현재 관수당 마롱암 암각서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부안 김씨 종중이다. 글씨를 새긴 바위가 야외에 노출되어 있고 석질이 비교적 단단하지 못하며, 비와 바람에 무방비 상태여서 점점 마모가 심해지고 있다. 부분 부분 이끼와 잡초가 덮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서예사의 중요한 시기로 평가하는 양송체(兩宋體)의 한 사람인 우암 송시열의 암각서가 현재까지 온전하게 전하는 예는 우리나라에 많지 않다. 또한 송시열의 연고지도 아닌 순창군 쌍치면에 이러한 금석문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 가치를 더한다. 더군다나 송시열이 직접 방문하여 현장에 글씨를 새겼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모각하거나 번각한 암각서에 비길 수 없는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