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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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畏堂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밭매우길 6[매우리 25]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신상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56년 - 삼외당 중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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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삼외당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밭매우길 6[매우리 25] |
성격 | 정자 |
양식 | 팔작지붕 기와집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개설]
삼외당(三畏堂)은 선조 대 봉정대부(奉正大夫)로 사헌부 감찰, 문경 현감 등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김천일(金千鎰) 막하에 들어가 여러 차례 공을 세운 순창 출신 홍함(洪涵)[1549~1593]의 정자이다. 홍함이 관직에서 물러나 임진왜란에 출전하기 전에 정자를 지어 자신의 호를 붙여 삼외당이라 이름 붙이고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 충강공(忠剛公) 김제민(金齊閔)[1527~1599], 충장공(忠壯公) 양대박(梁大樸)[1544~1592] 등 당대 명사들과 교류하며 시문을 즐기던 곳이다.
삼외당이 있는 마을 이름을 모정리(茅亭里)라 한 것은 삼외당·청취정 등의 정자에서 유래한 듯한데, 현재는 매우리(梅宇里)로 바뀌었다. 매우리는 마을 뒷동산의 형상이 집안에 매화꽃이 만발한 모양이라 하여 붙여졌다.
[위치]
삼외당은 지방도 730호선에서 금과 농협을 지나 도보로 5분여 거리에 있다. 주소지는 순창군 금과면 밭매우길 6[매우리 25]이다.
[변천]
정자 상량문에 ‘숭정 기원 후 사 병진 이월 십오 일 입주(崇禎紀元後四丙辰二月十五日立柱)’라는 기록을 통해 1856년(철종 7)에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삼외당은 화강암 지반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주간 거리 180㎝]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로 지은 정자이다.
[현황]
삼외당 주위에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면 왼편으로 2000년 순창 여자 중학교에 흡수 통합된 금과 중학교, 오른쪽으로 금과 초등학교가 자리한다. 현재 정자에는 임제, 김제민, 양대박 등 당시 명사들과 여러 선비들이 교류하며 읊은 시문의 현판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때 의병장 등으로 참여한 당대 명사들의 교류 무대로 고풍스러운 향토 경관을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