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778 |
---|---|
한자 | 干阿之旌閭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승대 |
건립 시기/일시 | 1514년 - 간아지 정려비 건립 |
---|---|
이전 시기/일시 | 1932년 - 간아지 정려비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호계정으로 이전 |
이전 시기/일시 | 2000년 11월 - 간아지 정려비 담양군 창평면 해곡리에서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로 이전 |
현 소재지 | 간아지 정려비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
성격 | 정려비 |
관련 인물 | 간아지(干阿之)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104㎝[높이]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 있는 조선 전기 순창의 관비 간아지의 정려비.
[개설]
간아지(干阿之)는 훈도(訓導) 유문표(柳文豹)의 첩이었는데, 유문표가 세상을 떠나자 슬퍼하며 3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상례 기간 중 얼굴을 다듬지 아니하고 지극정성으로 복을 입었다. 부모가 거듭 개가하라고 강요하자 손수 자기 머리카락을 자르고 담양 얼그실 유훈도의 본가로 도망가서 한평생 절개를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간아지에 대한 이야기는 1517년(중종 12) 당시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남곤(南袞)[1471~1527]이 간아지에게 정문(旌門)을 내려 주고 복호(復戶)를 청하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위치]
1517년 정려를 하사받아 순창읍 하방정[현재 순창 초등학교 동편]에 비를 세웠으나, 1932년 경천 제방 공사로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호계정으로 옮겨졌다. 이후 호계정이 소실되며 담양군 창평면 해곡 마을 유문표의 묘 아래에 세워졌고, 2000년 11월 순창 군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옮겨 순창군청 앞 순창 등기소 옆에 세워졌다.
[형태]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104㎝이다.
[금석문]
비의 전면에는 ‘절부 고 훈도 유문표 첩 관비 간아지 지려(節婦故訓導柳文杓妾官婢干阿之之閭)’라 새겨 있고, 그 왼쪽에는 작은 글씨로 ‘정덕 구년 유월 일(正德九年六月日)’이라 적혀 있다. 정덕 9년은 1514년(중종 9)에 해당한다.
[현황]
간아지 정려비는 순창의 대표적인 정려 유적으로 간아지의 정절을 적은 안내판과 함께 순창 초등학교 정문 가까이에 있다. 순창 초등학교에는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48호인 순창 객사도 있어 역사 탐방 코스로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