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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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印釋譜券十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봉덕리 37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태훈 |
간행 시기/일시 | 1459년 - 월인석보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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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12월 22일 - 월인석보 권15 보물 제745-10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월인석보 권15 보물 재지정 |
소장처 | 구암사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봉덕리 374](N35° 27' 19.173"/E126° 53' 9.5244) |
발견|발굴처 | 구암사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봉덕리 374](N5° 27' 19.173"/E126° 53' 9.5244) |
성격 | 고도서 |
저자 | 세종|수양 대군 |
편자 | 세조 |
간행자 | 세조 |
권책 | 1권 1책 |
행자 | 7행 14자[「월인천강지곡」]|7행 15자[『석보상절』] |
규격 | 22.0×16.4㎝[반곽] |
어미 | 상하 내향 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구암사에서 발견되어 소장하고 있는 불교 관련 서책.
[개설]
월인석보 권15는 처음 29장 반엽의 결락본이 발굴되어 1998년에 성암 고서 박물관에서 입수하였다. 그 후 2000년 5월 11일 구암사(龜巖寺) 소장 고서 중에 월인석보 권15의 완본이 발굴되었다. 구암사(龜巖寺) 소장 월인석보 권15는 2000년 12월 22일 보물 제745-1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구암사는 백제 시대에 건립된 사찰로서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봉덕리 374]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세조가 1459년(세조 5)에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본문으로 하고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그에 대한 주석의 형식으로 합편하여 내용의 일부를 수정하고 보완하여 간행한 새로운 책이다. 월인석보의 ‘월인’은 『월인천강지곡』에서, ‘석보’는 『석보상절』에서 각각 따 온 것으로 서문 서명(序文書名)과 판심 서명(版心書名)에 일치하는 것이다. 월인석보의 편찬 경위는 세조가 수양 대군 시절에 세종의 명을 받아 모후인 소헌 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보상절』[전 24권]을 지었는데, 그것을 보고 세종이 친히 『월인천강지곡』[전3권]을 지었다는 것이다.
[형태/서지]
월인석보는 총 25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 처음 간행된 권1, 2, 7, 8, 9, 10, 11, 12, 13, 14, 15, 17, 18, 19, 23, 25와 재간행된 권4, 21, 22 등 총 19권이 있다. 순창군 구암사에서 발견된 월인석보는 권 제15로 분량은 1권 1책이다. 총 장수가 87장으로 비단이 섞인 한지에 인쇄되었다.
판식(板式)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상하 대흑구(上下大黑口)이고, 일반적으로 상하 내향 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다. 반곽(半郭)의 크기는 22.0×16.4㎝이다. 1면 7행에 1행의 자수가 『월인천강지곡』 부분은 큰 글씨로 14자이고, 『석보상절』 부분은 작은 글씨로 1자씩 낮추어서 판각하여 15자로 되어 있다. 협주 부분은 쌍행(雙行)으로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1행의 자수가 다소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구암사본은 『월인천강지곡』 294-302를 본문으로 하고, 저본 경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4, 「오백 제자 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 제8, 「수학 무학 인기품(授學無學人記品)」 제9, 「법사품(法師品)」 제10, 「견보탑품(見寶塔品)」 제11이다.
[구성/내용]
구암사본 월인석보 권15는 구성상 4단계로 되어 있다. 제1단계는 『월인천강지곡』 294-295곡으로 시작하여 『석보상절』이 26장 전면 6행까지 전개된다. 『석보상절』의 주석 형식으로 중간에 3장 전면 2행~3장 후면 1행부터 전면 6행~26장 후면 6행까지 사이사이에 단형의 협주 세문이 18번 들어 있다.
제2단계는 26장 후면 6행부터 40장 전면 1행까지이다. 이 단계에는 『월인천강지곡』이 없이 『석보상절』과 주석격인 단형의 협주 세문이 반복되고 있다.
제3단계는 40장 전면 1행부터 59장 후면 3행까지이다. 2단계와 마찬가지로 『월인천강지곡』이 없이 『석보상절』과 주석격의 단형의 협주 세문이 반복되고 있다.
제4단계는 59장 후면 4행부터 87장 전면 3행까지이다. 『월인천강지곡』 296곡 부터 302곡까지 7곡으로 이 부분을 선도하고 있는 이 내용이 『묘법연화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드러내고 있다. 『석보상절』은 63장 전면 1행부터 86장 전면 2행까지이며, 협주 세문이 64장 전면 2행부터 87장 전면 3행에 이르기까지 사이사이에 주석격으로 단형의 협주 세문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월인석보는 조선 전기 2대에 걸쳐 임금이 편찬·간행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순창군 구암사에서 발견된 월인석보 권15는 그 동안 완전한 상태로 전존(傳存)되는 판본이 없었다는 점에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물 제745호로 지정된 월인석보 중 빠진 권수를 보완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구암사본은 비록 앞뒤의 표지가 결락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낙장(落張)이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여서 학술 및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더욱이 완전한 초간 초쇄본(初刊初刷本)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다.
월인석보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된 이후 불교와 관련한 최초의 언해서(諺解書)라는 점에서 사료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문헌이다. 또한, 조선 초기에 유통된 중요 경전이 취합된 것이므로 당시 불교 경전의 수용 태도를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