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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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瑛 |
이칭/별칭 | 영옥(英玉),낙재(樂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훈 |
[정의]
조선 전기 순창에 거주한 고려조의 문관.
[가계]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영옥(英玉), 호는 낙재(樂齋). 할아버지는 조전(趙佺), 아버지는 충헌공(忠獻公) 옥천 부원군 조원길(趙元吉)이다. 형제로는 조유(趙瑜)가 있다.
[활동 사항]
조영(趙瑛)[1344~1428]은 1344년(충혜왕 복위 5) 출생하였는데, 모부인 김 씨의 태몽에 어떤 노구(老嫗)가 백벽(白璧)[흰 옥으로 만든 고리 모양의 구슬] 한 쌍과 백화(白花) 한 송이를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하여 이름을 영(瑛)이라 하였다. 고려조에서 벼슬이 서운관 부정(書雲觀副正), 전공 판서(典工判書)에 이르렀다. 조선을 건국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아버지 조원길이 벼슬을 버리고 순창으로 낙향하였는데, 조영도 함께 와 두문자정(杜門自靖)하였다. 태종이 이조 판서, 세자 사부(世子師傅)로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스스로 낙재라는 호를 지어 고려의 옛 서울인 개성의 하늘을 바라보며 정금대(停琴臺)에서 거문고 뜯는 것으로 낙(樂)을 삼다가 1428년(세종 10) 일생을 마쳤다. 조영은 옥천 조씨의 중시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