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817 |
---|---|
한자 | 龍遊寺-工夫-及第-林文洙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이동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정미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이동리에서 대과에 급제한 임문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용유사에서 공부하여 급제한 임문수」는 용유사에서 과거를 준비하던 나주 임씨 임문수(林文洙)가 아버지를 통하여 공부를 게을리 하던 자신을 깨우쳐 열심히 공부한 끝에 대과에 급제하였다는 인물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12월 양상화가 엮어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구전 설화』상의 216~218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동계면 이동리 유산 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이 마을로 피신을 와서 그대로 수대를 무관으로 살아온 나주 임씨가 있었다. 이들은 원래 양반의 후손이었으나 대과에 급제하지 못하였음을 늘 한탄하였다.
나주 임씨 가문에 임문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오수장에서 포목 장사를 하면서도 자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임문수를 용유사로 보냈다. 아버지는 임문수를 보내 놓고 사흘이 멀다 하고 아들이 먹을 식량을 용유사에 짊어져다 놓았다. 밤늦게 쌀을 짊어지고 가서 아들의 글을 읽는 소리가 들리면 말없이 쌀을 마루에 놓고 돌아오곤 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 임씨는 장사를 마친 후,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용유사를 가는 날이었기에 쌀을 짊어지고 어두운 밤길을 재촉하여 용유사로 갔다. 용유사 처마 밑에 서 있는데 그날따라 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났으나 아들이 글을 읽지 않는 것은 아들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이 부덕한 것이라 개탄하고 처마 끝 낙숫물이 떨어지는 곳에 꿇어앉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졸음에 겨워 잠시 잠깐 눈을 붙인 임문수가 우연히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아버지가 낙숫물 떨어지는 곳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임문수는 깜짝 놀라 뛰어 나갔다. 그러자 아버지는 “도련님! 도련님 덕으로 양반 한 번 됩시다.” 하였다.
임문수는 글을 읽지 않고 잠을 잔 것을 몹시 후회하고 다시는 글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글을 읽다가 무심결에 졸음에 겨우면 아버지가 낙숫물 떨어지는 처마 밑에 꿇어앉아 아들에게 ‘도련님’ 하며 부르던 모습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노력의 대가로 임문수는 마침내 대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전라도사 병조 정랑의 벼슬을 지냈다. 그는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유산 마을 나주 임씨의 중조가 되었다. 그 후로 용유사에서 공부하면 급제한다는 말이 전하여 올 만큼 용유사는 유명한 사찰이 되었다.
[모티프 분석]
「용유사에서 공부하여 급제한 임문수」의 주요 모티프는 ‘아버지의 간절한 가르침’이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광포 전설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나 석봉(石峯) 한호(韓濩)[1543~1605] 어머니의 한석봉에 대한 가르침 등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때 자식을 공부시키거나 자식의 나태함과 부족함을 깨우치기 위한 부모의 행동은 평범하지가 않다. 「용유사에서 공부하여 급제한 임문수」에서도 낙숫물 떨어지는 곳에 무릎을 꿇고 있는 아버지의 행동은 임문수를 크게 깨우치게 하고, 이를 통하여 임문수가 스스로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이외에 순창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용유사와 관련된 설화로는 「통령한 용유사 주지와 호랑이」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