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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328
한자 馬墳洞戰鬪
영어의미역 The Battle of Mabun-dong
이칭/별칭 분투골 싸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천리 마분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심현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1593년 8월연표보기
발생(시작) 장소 경상북도 울진군 마분동
관련인물/단체 김언륜

[정의]

임진왜란 중 1593년 경상북도 울진군 덕천리 마분동에서 김언륜이 왜군과 벌인 전투.

[역사적 배경]

김언륜은 1565년(명종 20) 북면 고목리 지장골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동네 지장서재(智藏書齋)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틈만 있으면 병서 읽기를 좋아하였다. 1592년(선조 25) 27세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듬해 8월 울진에서는 고읍성 전투와 덕천리 분투골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1593년 8월 울산에 상륙한 왜군 수천 명이 고읍성에 쳐들어오고 강릉에 상륙한 왜적이 남하하여 울진에 침입하였다. 장군은 고목리 가치산 소나무 가지마다 야등을 밝히고 동남향으로 푸른 막을 치는 등 위병으로 위장케 했다. 또한 장유대에서 망을 보며 덕천 앞 호반에 작은 배를 띄어 놓는 등 기묘한 전법을 썼다.

[경과]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울진에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으므로 김언륜고산성에 있는 주호(朱皥) 장군을 찾아가 왜란에 대한 대책을 협의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왜적이 갈령을 넘어 부구와 죽변으로 내려오자 덕천리 마분동 십장곡에서 김천상 등의 부장을 모아 작전 계획을 세웠다. 왜병이 마분동 분투곡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김언륜이 북을 크게 울려 일제히 공격을 명하니 매복했던 장병들이 크게 함성을 지르며 공격하였다.

왜병은 불의의 기습에 당황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때 김언륜은 선두에서 말을 타고 쇠도리깨와 칼을 휘두르며 돌진하니 왜병의 시체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왜군이 전황을 듣고 구원병을 보내어 공격하니 아군은 서쪽 산을 등지고 동시에 남쪽과 북쪽의 적에 대치하여 싸웠다. 칼날에 불꽃이 튀기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조총의 위력과 아군의 병기 부족으로 패하고 말았다.

[결과]

마분동 전투에서 김언륜은 28세의 아까운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모함으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분동 전투 이후 역전 분투했던 이 골짜기를 분투곡이라고 하였고 사람과 말이 수없이 죽어 쌓였다 하여 마을 이름을 마분동이라 한다.

김언륜의 휘하 장수 김천상 등 9명은 패전의 분함을 참지 못하여 고목리 구장곡에 모여 가슴을 치고 통곡하다가 각각 자기 무명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한 그릇에 받아 바위에 올려놓고 하늘을 향해 제사를 올리며 “우리 아홉 장수는 오직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한다.”라고 한 뒤 선조가 파천한 의주를 향해 길을 떠났으나 그 후의 행적은 찾을 수가 없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국난이 발생했을 때, 관군이 아닌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모아 왜군을 물리친 사건으로 지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켜 준 전투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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