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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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順伊 |
영어공식명칭 | Lee Sun-i |
이칭/별칭 | 루갈다,유희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대길 |
출생 시기/일시 | 1762년(영조 38) - 이순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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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01년(순조 1) 12월 28일[양력 1802년 1월 31일] - 이순이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4년 - 이순이 복자품(福者品)에 오름 |
출생지 | 이순이 출생지 - 서울 |
활동지 | 이순이 활동지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 |
성격 | 종교인 |
성별 | 여자 |
대표 경력 | 동정 부부 순교자|2014년 시복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서 활동한 종교인.
[개설]
이순이(李順伊)[1762~1801]는 한국 천주교회 초기에 입교하여 평생을 동정으로 살기로 결심한 뒤, 유중철과 혼인해서 4년 동안 동정부부로 신앙생활을 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시아버지 유항검, 남편 유중철 등과 함께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했고, 2014년 복자품(福者品)에 올랐다.
[활동 사항]
이순이는 동정 부부 순교자(童貞夫婦殉敎者)이다. 어릴 적 이름은 유희, 세례명은 루갈다로 서울에서 아버지 이윤하(李潤夏)와 어머니 안동권씨[권신철(權哲身)의 누이동생] 사이의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권씨의 보살핌 속에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장했다. 14세 되던 1795년(정조 19)에 주문모(周文謨)[야고보] 신부에게 성체성사를 받았는데, 이때 성례(聖禮) 보존을 결심하며 하느님께 동정(童貞)을 바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조선의 풍습으로 동정 생활이 어려웠다. 1797년 주문모 신부의 소개와 어머니의 동의하에 동정을 바치기를 원하는 유항검의 장남 유중철과 혼인했다. 1798년 9월 시댁인 전주 초남[현재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에서 동정서원(童貞誓願)을 하고, 남편 유중철과 더불어 순교하기까지 4년 동안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과 같은 결혼생활을 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일어나 시아버지 유항검과 남편 유중철 등이 먼저 체포당하고, 10월 22일경[음력 9월 15일] 나머지 집안식구들도 함께 체포당하였다. 시아버지 유항검은 9월 17일[양력 10월 24] 남문 밖에서 능지처참으로, 남편 유중철과 시동생 유문석은 10월 9일[양력 11월 14일] 전주감영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이때 루갈다는 귀양을 언도받고 유배지로 가다가 다시 감옥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12월 28일[양력 1802년 1월 31일] 시어머니 신희(申喜), 시숙모 이육희(李六喜), 시사촌 동생 유중성 등과 함께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를 당하였다. 이순이의 나이 20세였다.
[사상과 저술]
이순이는 순교하기 전에 어머니 권씨와 가족들에게 보낸 옥중서한을 남겼는데, 1802년(순조 2) 1월 29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큰오빠 이경도(李景陶)[가롤로]가 순교 전날 어머니 권씨에게 보낸 서한, 그리고 1827년(순조 27) 전주감옥에서 옥사한 동생 이경언(李景彦)[바오로]의 일지 등과 합쳐져서 『루갈다 초남이 일기 남매』라는 제목으로 필사(筆寫)되어 전해 내려온다.
[묘소]
이순이의 유해는 순교 후 전주 초남리(草南里)에 안장되었다가, 1914년 전동성당의 윤사물(尹沙勿)[1859~1915, Baudounet, Francois Xavier] 신부와 신자들에 의해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치명자산으로 이장되어 유항검, 유중철, 신희, 이육희, 유중성, 유문철 등 6인의 유해와 함께 합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이순이는 2014년 8월 16일 방한한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거행된 시복식(諡福式)에서 윤지충을 비롯해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복자품(福者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