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는 수령 약 35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
-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 감악산 정상부에 있는 신라 시대의 절터. 감악사(紺嶽寺)의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1 경기도(京畿道) 적성현(積城縣) 불우조(佛宇條)에 ‘감악산’이라고 기록하면서, 동각(東閣) 김신윤(金莘尹)과 관련된 고사를 함께 수록하고 있다. 또한 『범우고(梵宇攷)』[1799년 왕명에 의해...
-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세워진 건물과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기술이자 예술. 건축의 본질은 쾌적하고도 안전한 생활의 영위를 위한 기술적인 전개와 함께, 공간 자체가 예술적인 감흥을 가진 창조성의 의미를 가지며,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건축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주거 건축, 종교 건축, 관청 건축, 휴양 건축, 복지와 교육 건축, 상업과 공업 건축 등으로...
-
양주 회암사지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의 천보산 자락에 위치하며, 고려 말, 조선 초 최대의 왕실 사찰(王室寺刹)인 회암사가 있던 곳이다. 조선 전기의 최대 사찰이자 현재 양주시의 유서 깊은 사적지인 회암사를 그 역사적 내력, 회암사와 인연을 맺은 고승들, 가람의 구조, 유물 들을 중심으로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회암사는 고려 말 전국 사찰의 총본찰(摠本刹)이었으며, 조선 초기...
-
경기도 양주시 양주2동에 속하는 법정동. 고읍동(古邑洞)이라는 이름은 조선 초기에 양주의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고읍(古邑)·구읍(舊邑)·고읍내(古邑內)·구읍내(舊邑內)라고도 하였다. 고읍동의 옛이름은 고읍리였다. 고려 시대에는 견주(見州)라는 독립적인 행정 구역의 치소가 있었으며, 1397년(태조 6)에는 양주의 부치(府治)가 동촌 대동리[현 서울특...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서 발원하여 파주시와 고양시 일대를 흐르는 하천. 조선 제8대 임금 예종(睿宗) 비 장순왕후(章順王后)의 능인 공릉이 파주시 조리읍에 들어선 후 공릉천(恭陵川)이 되었다. 곡릉천(曲陵川)으로도 불렸으나 오류로 판명되어 공식 명칭이 공릉천으로 확정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파주목에는 보신천, 고양현에는 가둔천으로 적혀 있다. 고양시 지역에서는...
-
고려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의 남쪽 한강 부근에 있었던 나루.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국가에서는 교통로 상의 강변 요충지에 진[혹은 관진(關津)·진관(津關)]이나 도(渡)·도진(渡津)을 설치하여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검색하거나, 여기에 배치된 관선(官船)인 진도선(津渡船)[나룻배]를 이용하여 국가의 명령 전달이나 사람과 물자 수송 등 교통과 통신 기능을 담당하게 하였다. 유명한 나...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성황당. 국수당은 관아터 및 유양초등학교 뒤쪽에 있는 골짜기와 골짜기에 있는 성황당[서낭당]을 아울러 이르는 이름이다. 원래 국사당(國師堂)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 그 수호신사(守護神祠)로서 북악산과 남산[목멱산] 꼭대기에 두었던 사당이다. 각 지방에서도 민간 신앙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굿을 하는 장소를 마련하고 고을 주...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에 있는 충신 권절(權節)의 조선 후기 정려(旌閭). 정려란 전통 시대에 국가가 충신·열녀·효자의 행실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해당 인물이 살던 마을 입구 또는 집 앞에 세워 준 문(門)을 가리킨다. 정문(旌門)·정려문(旌閭門)·홍살문이라고도 한다. 권절[1422~1494]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서조(瑞操), 호는 율정(栗亭)이다. 수양대군(首陽大君...
-
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가 23부, 336군으로 개편되었다. 신관제(新官制)에 의한 23부제가 1895년 6월 23일에 시행됨에 따라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었다. 한성부에 소속된 군은 양주 이외에 한성·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 등 11개 군이 더 있었다. 23부제는 18...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연성(金演性)이 아들이다. 김병기(金秉氣)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의병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투쟁을 전개해 한말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려고 애썼다. 1910년(순종 4)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투쟁을 멈추지 않고 1913년 9월 의병장 임병찬(林炳瓚)·이인순(李寅淳)·전용규(田瑢圭)...
-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문신. 김병시(金炳始)[1832~1898]는 문호 개방과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이후 1895년 을미사변 등 우리나라 근대의 격동기에 정부의 중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온건과 보수의 길에 서서 개량주의를 지향하는 정치가로 일관하였다. 특히 갑신정변을 주도한 혁명 세력은 물론 온건 개화 세력 등과도 정치적으로 대립한 보수주의자였다....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아버지인 김한우(金漢佑)의 사당. 인빈 김씨는 조선 제14대 국왕인 선조의 후궁으로, 14세가 되던 해에 후궁이 되었다. 천성이 온화하고 부덕이 있어 40여 년간 선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인빈 김씨가 세자를 낳자 김한우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지방도 349호선을 따라 양주시 장흥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편에 일영리...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에 있는 김해 김씨 집성촌. 김해 김씨의 시조는 김수로(金首露)이다. 김해 김씨는 10세손인 김무력 대에 크게 번창하였고, 그의 손자가 바로 삼국 통일의 주역인 김유신(金庾信)이다. 후손들은 김수로를 시조로, 김유신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김유신의 후대에 가세가 크게 번창해 148여 개 파(派)로 나뉘었는데, 대표적인 파는 김목경(金牧卿)의 경파(京派),...
-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 지역에서 천자의 시험을 해결한 정승 아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나무토막의 상하 구별」은 조선에 인재가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하여 대국 천자가 나무토막의 상하를 구별하라는 시험을 내자 정승의 어린 아들이 영특한 기지로 문제를 풀어서 천자의 부마가 되었다는 지혜담이다.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출간한 『양주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81...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천자의 병을 고친 어린 아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낙반식 벽상토(落飯食 壁上土)」는 조선의 어린아이 의사가 피부병에 걸린 중국의 천자를 우연히 본 현상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명약으로 고쳐 주었다는 치료담이자 우행담이다.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으나 채록 및 수집 정보는 나와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중국에서 천자가...
-
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행정면이자 법정면. 남면(南面)이라는 땅 이름은 감악산 남쪽에 있는 지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남면의 출발은 파주 적성군에서 시작하였으므로 남면이라는 땅 이름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양주로 편입된 이후에는 양주 지역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남면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외부 사람들은 양주시에서 북쪽에 위치하는데도 남면이라...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남양부부인 홍씨(南陽府夫人洪氏)의 신도비. 남양부부인 홍씨[1410~1456]는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韓氏), 즉 인수대비(仁粹大妃)의 어머니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이조판서 홍여방(洪汝方)의 딸이다. 태종 때 외교관으로 활약한 양절 한확(韓確)에게 시집가서 3남 6녀를 낳았는데, 그중 6녀가...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에 있는 이성계(李成桂)의 딸인 숙신옹주(淑愼翁主)와 사위 홍해(洪海)의 조선 후기 사당. 숙신옹주는 조선 제1대 국왕인 태조 이성계와 후궁 김씨(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401년(태종 1) 태조가 옹주에게 택지와 집을 주어 자손이 거주할 수 있게 한 문서인 숙신옹주대사급성문(淑愼翁主家垈賜給成文)이 현존한다. 숙신옹주의 남편인 홍해의 봉호는 당성위(唐...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남양 홍씨 집성촌. 남양(南陽)은 현재의 경기도 수원시와 화성시 일대이다. 남양 홍씨의 시조는 당(唐) 태종이 고구려에 파견했던 홍천하(洪天河)의 후손이라고 하나 확실치 않다. 대체로 홍은열(洪殷悅)을 기세조(起世祖)로 보고 있다. 홍은열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의 통일을 달성하여 삼중대광 태사(三重大匡太師)에 올랐다. 남양 홍씨는 남양군파...
-
양주목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곡(壺谷). 아버지는 부사 남득명(南得明)이다. 남용익(南龍翼)[1628~1692]은 1646년(인조 24) 진사가 되었고, 164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시강원 설서, 성균관 전적, 삼사를 지냈고, 병조좌랑과 홍문관 부수찬 등 중앙의 요직을 거쳐 경상 도사로 나갔다. 1655년(효종 6...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증조할아버지는 밀직부사 남군보(南君甫), 할아버지는 풍저창 부사 남익저(南益㫝)이다. 아버지는 지영광군사를 지낸 남천로(南天路)이다.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朴氏)로 중랑장 박종(朴琮)의 딸이다. 부인은 순창군부인(順昌郡夫人) 임씨(任氏)이다. 형은 시중(侍中)을 지낸 남을번(南乙蕃)이다. 아들은 남근(...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충신 남을진(南乙珍)의 묘와 신도비. 조선 시대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부름을 받았으나, 고려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감악산 남선굴에 은닉하면서 삶을 마감한 남을진의 묘와 신도비이다. 남을진의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아버지는 남천로(南天路)이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1368년(공민왕 17) 현량과에 급제하였고, 고...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옥새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다시 찾은 옥새」는 옥과 새라는 이름의 친구가 그 이름 덕분에 대국 천자의 시험을 통과하고 천자의 옥새를 찾은 공로로 벼슬까지 하고 금의환향하는 우행담이다.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으나 채록 및 수집 정보는 나와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글방에서 공부하는 두 학생이 있었는데 한 명은 가난...
-
경기도 양주시 불곡산 자락 남향에 위치하는 유양동(維楊洞) 일대가 정치 행정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조선 중종 때부터이다. 그 이전 양주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은 지금의 천보산(天寶山) 자락을 배경으로 한 고읍동 일대였다. 이는 조선 중기 양주의 중심지가 바뀌는 사태가 벌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런 선택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연산군 시대가 있었다. 연산군은 왕실 공식 수렵장으로서 강무장(...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에 있는 논. 대왕전(大王田)은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宣祖)가 제11대 임금인 중종(中宗)의 셋째 딸이며 자신에게는 고모가 되는 정순옹주[여성군 송인(宋寅)의 부인]의 장례 때 장지가 있는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에 와서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대왕전의 동쪽으로는 소래산 자락이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굿배미라는 마을의 야트막한 언덕이...
-
경기도 양주시 회천2동에 속하는 법정동. 덕계동(德溪洞)이라는 땅 이름은 도덕리(道德里)에서 ‘덕’자와 돈계리(遯溪里)에서 ‘계’자를 따서 만들었다. 도덕리는 도덕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돈계리는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박율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덕계동의 옛 명칭은 덕계리였다. 덕계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는 수령 약 35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납작한...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와 덕계동, 은현면 도하리·용암리, 광적면 석우리·가납리 등지에 걸쳐 있는 산. 도락산(道樂山)은 두락산(頭落山), 돌압산(突壓山), 돌압산(突押山), 돌앞산, 노락산으로도 불리었다. 이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린 배경에는 몇 가지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모든 산들이 서울 남산을 향해 가는데 불곡산이 가로막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나서 덕계리...
-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 지역에서 서화담(徐花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도술로 중을 제압한 서화담」은 도술로 유명한 서화담이 일본에서 온 중과 겨루는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완전히 제압했다는 신이담이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서경덕(徐敬德)[1489~1546]은 별호인 서화담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서화담은 황진이(黃眞伊),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리기...
-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경기도 양주 출신 인물들. 1910년 불법적 한일 강제 합방이 이루어지고, 1910년에서 1920년대에 걸쳐 점차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이 잇따르면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조직화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이는 3·1 만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후에도 국내 및 국외에서 직접...
-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는 자연 마을. 도락산(道樂山)[440m]에서 발원하여 이곳 비암산(鼻巖山) 자락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시내가 1㎞ 지점에서 남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급하게 돌린다. 따라서 밖에서 시내를 볼 때 상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숨어 있는 시내’라 하여 둔계(遯溪)라 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됭계로 불리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전라북도 부안군 남하면에...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입암리·구암리에 있는 산. 망당산(望唐山)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네 가지 설이 있으나 어느 것이 정설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첫째, 원래는 명당산(明堂山)이었으나 조선 중종 때 임금의 묘지를 잡으러 지관들이 이곳에 들르자 남양 홍씨들이 이곳은 명당산이 아니라 망할 망(亡)자를 쓴 망당산(亡堂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 산을 망당산으로 불렀...
-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고구려의 군. 본래 지금의 양주시 일대는 고구려에 속하였다가 백제 근초고왕이 취한 이후 백제 군현으로 편제되었다. 그러나 다시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다시 고구려 군현이 되었다. 특히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7 지리지에서는 매성군이라 칭하고 있으나 같은 지역을 놓고 『삼국사기』 권35 지리2 신라 한주 내소군조 및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에 있는 조선 시대 왕족 무림군(茂林君) 이선생(李善生)의 사당. 무림군 사당(茂林君祠堂)은 이선생[1410~1474]의 시호인 소이(昭夷)를 따서 소이사(昭夷祠)라고도 한다. 이선생은 조선 제2대 국왕인 정종의 15남으로, 자(字)는 낙보(樂甫)이다. 1428년(세종 10) 과거에 급제하고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세 차례 다녀왔다. 사망 이후 원래 경기...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사적비. 무학대사[1372~1405]는 고려 말~조선 초의 이름난 승려로, 이름은 자초(自超)이고 호가 무학(無學)이다.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小止禪師) 아래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며,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교의 교리를 배운 후 묘향산에서 수도하였다. 1392년(태조 1)에는 태조의 부름을 받고 스...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묵은면(默隱面)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인 민무질(閔無疾)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여흥 민씨 집안에서 이 지역을 사패지(賜牌地)로 하사 받은 후, 어느 누구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가운데 외부에 가려 있고 황무지가 많은 척박한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후기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돌고개에 있는 골짜기. 문장동(文章洞)은 개울에 있는 바위에 ‘문장동천(文章洞天)’을 비롯한 여러 글자가 새겨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동천’이란 명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키는 말로 ‘문장동천’은 문장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이다. ‘문장동천’이라고 쓰여 있는 바위에 ‘임오오월각(壬午五月刻)’이라고 새겨져 있어 시기를 알 수 있다. 임오년은...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형상화한 예술 및 그 작품. 양주는 산수가 아름답고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많은 문인들이 풍광을 시로 노래하였다. 또한 양주 출신으로 많은 문인들이 활동하였는데, 김병연(金炳淵)[일명 김삿갓]이 대표적이다. 벽초 홍명희는 『임꺽정』을 통해 양주 관련 이야기를 소설 속에 담기도 하였다. 특히 오늘날 양주시의 문학계에서는 김삿...
-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지정 주체에 따라 국가 및 도·시 지정 문화재[향토 유적]로 구분되며, 유형에 따라 유형 문화재·무형 문화재·기념물 등으로 나뉘며, 지정 여부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나뉜다. 2011년 현재 양주시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 9점[보물 3점·사적 2점, 천연기념물 1점, 중요 민속문화재 1점, 국가 무형 문화재...
-
1945년 9월 7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미군이 경기도 양주를 포함하여 남한을 통치한 시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항복하면서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이 분할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38도선 이남에 대해서는 태평양 미육군총사령부 총사령관 맥아더가 1945년 9월 7일 ‘조선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사령부 포...
-
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수석동에 있던 나루. 진(津)[나루]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주요 수상 교통로에 설치한 교통·통신 기관의 하나로서, 강을 오가는 사람과 물자를 통제·관리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미호진(渼湖津)은 현재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를 지나 팔당과 미사리를 거쳐 왕숙천(王宿川)이 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인 강동대교 직전에 있었다. 미호진에서...
-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바위의 명칭 유래와 특징. 경기도 양주시에서 유래가 전해지는 바위로는 빗접바위·갓바위·개구리바위·농바위·마귀바위·배맨바위·벼락바위·선돌바위·선유동천바위·신암바위·애경바위 등이 있다.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산97-1번지 보메기 북서쪽에 있는 바위이다. 큰 바위가 쪼개져서 빗접을 세운 것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에는 수원 백씨 각처 선농기(水原白氏各...
-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행정읍이자 법정읍. ‘백석(白石)’이라는 땅 이름은 백석읍 방성리와 양주읍 유양리·어둔리에 걸쳐 있는 양주산성[구 양주 대모산성]에 흰 돌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양주산성에는 흰 돌이 없고, 다만 방성리에 소재한 양주소놀이굿전수회관 부근의 배나무 과수원에 흰 돌이 있어 이를 ‘백석’의 기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서 하패리로 넘어가는 고개. 봉내미고개는 근처에 봉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혹은 남을진(南乙珍)이 조선 건국에 반대해 하패리 쪽에 은거하였는데 이곳에 바위가 많고 노적가리가 있어 부엉새가 새끼를 치기 때문에 봉황리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봉데미고개라고도 불리었다. 봉내미고개는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 산50-2번지와 산66번지 사이의...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 있는 수령 약 300년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느티나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나뭇과의 낙엽 교목으로, 잎은 부채 모양이며 한군데에서 여러 개의 잎이 난다. 높이는 40m까지 자란다. 암수딴그루로 5월에 꽃이 피는데, 암꽃은 녹색이며 수꽃은 연한 노란색이다. 열매는 핵과(核果)로 10월에 노랗게 익는다. 봉...
-
경기도 양주시 지역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신앙 및 포교 활동을 하는 종교와 그 활동. 고구려 372년(소수림왕 2)에 전진(前秦)의 순도(順道)가 불교를 전파한 이래 귀족들의 반대를 받기는 했지만 초부족적 성격을 갖고 있던 불교를 수용함으로써 삼국 시대 불교는 국가 이념과 사상의 통일, 호국 사상 고취 등 고대 국가 체제 정비와 왕권 정립에 기여하기에 이르렀다. 양주에서 가장 오래...
-
경기도 양주시에서 행하고 있는 사진 촬영 활동 및 관련 예술. 사진은 19세기 초 프랑스 화가인 루이 쟈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진이 더욱 활성화된 것은 영국의 화학자 존 프레더릭 고더드에 의해서였다. 취급이 더욱 간편해지면서 사진은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사업으로 번창하게 되었다. 이렇게...
-
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양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 지역민의 동조와 호응 속에서 무장 의병 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고장이다. 특히 임진강과 한남정맥의 전략적 지세와 활발한 의병 활동으로 1907년 전국의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13도 창의대진소를 결성하고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을 때 본부...
-
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수’라는 땅 이름은 원래 양주 백석과 감악산에서 내려오는 두 물줄기가 합쳐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상수(相水)]인데, 이곳에 상수리나무가 많이 서식하므로 또 다른 의미가 발생하였다[상수(橡樹)]. 일설에는 고려 말의 유신(遺臣)으로 조선 왕조에 관리로 나아간 홍지(洪智)와 관련된 땅 이름이라고도 한다. 즉 홍지가 태조 때 죽으니, 태조는 무...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암각문.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개울가에 여러 바위에 ‘문장동천(文章洞天)’을 비롯한 다양한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석현리 암각문(石峴里岩刻文)이다. 원래 동천(洞天)이란 명산(名山)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키는 말로, 문장동천은 문장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이다. ‘옥순암(玉筍岩)’·‘분설담(噴雪潭)’·‘관서암(觀書岩)’·‘...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성공한 아기장사」는 어린 나이에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소년의 신이담이자 영웅담이다. 「성공한 아기장사」는 아기장수 설화의 유형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에서도 유사한 유형이 발견된다. 「성공한 아기장사」는 신이한 능력을 타고난 아이가 오랑캐들...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시대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의 터. 고려 전기의 성황신은 국가 수호의 의미를 가진 신으로 각 지방관이 입묘(立廟)하여 춘추(春秋)로 제사를 지냈다. 이후 점차 민속화하여 고려 중기에 이르러 전국 각 지방으로 퍼졌으며, 후기에는 토속적인 고유 신앙과 결합되어 제사를 지냈다. 조선 건국 초에는 국가의 공적 의례에 포함되어 전국적으로 군현의 읍치...
-
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중 양주도호부[지금의 경기도 양주시]에 해당하는 부분. 『세종실록지리지』는 1424년(세종 6) 편찬에 착수하여 1454년(단종 2) 총 8책 7권[권 149~155] 분량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중 「세종실록지리지 양주도호부」 부분은 제1책 권149에 수록되어 있다. 양주도호부는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시·양주시·의정부시·동두천시·...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여말 선초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판사를 지낸 송대원(宋大原) 대에 집안이 일어났다. 아들은 부사 송여해(宋汝諧), 진사 송여익(宋汝翼), 생원 송여려(宋汝勵)이다. 딸은 의정(議政)을 지낸 정광필(鄭光弼), 교리 박계한(朴季翰)에게 출가하였다. 손자는 군수 송세충(宋世忠), 참봉 송세량(宋世良), 진사 송세일(宋世一), 현감을 지낸 송...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있던 조선 후기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묘비와 명문. 숙빈 최씨 묘표(淑嬪崔氏墓表)는 영조의 생모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1670~1718]의 묘소를 나타내기 위해 세운 비석과 명문이다. 숙빈 최씨의 묘소는 처음에는 숙빈 묘라 하였다가 1753년(영조 29)에 묘호를 소령원(昭寧園)으로 격상시켰으며, 묘비는 영조가 친히 썼다고 한다. 1718년(숙종 4...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는 수령 약 400년의 소나무. 신산리 소나무는 양주시 지정 소나무 보호수 두 그루 중 하나이다. 소나무는 소나뭇과의 상록 침엽 교목으로, 높이는 35m까지 자란다. 잎은 두 잎이 뭉쳐나며 피침 모양이다.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구과(毬果)로 이듬해 가을에 맺는다. 육송(陸松)이라고도 한다. 신산리 소나무는 일부 가지의 끝이 고사되어 있으나 상태는...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감악산 정상 부근에 있는 바위. 신암바위는 고려 말 공양왕(恭讓王) 때 참지문하부사를 지낸 충신 남을진(南乙珍)이 1392년 조선의 개국 후에 태조(太祖)의 부름에 따르지 않고 감악산 남선굴(南仙窟)에 은거하면서 망국의 한을 풀기 위해 개성을 향하여 통곡하던 바위라고 한다. 충신의 피맺힌 원혼이 얽혀 있다고 하여 신암(神巖)이라 하였으며, 후생들이 남을진...
-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 있는 조선 전기 세종의 사위 안맹담(安孟聃)의 사당. 안맹담 사우(安孟聃祠宇)는 안맹담[1415~1462]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안맹담의 시호를 따서 양효공 사우(良孝公祠宇)라고도 한다. 안맹담의 자(字)는 덕수(德壽), 시호(諡號)는 양효(良孝)이다. 1428년(세종 10)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의 차녀 정의공주(貞懿公主)와 혼인해 죽성군(竹城君)이 되...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들이 조선 독립을 선언하자,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구장(區長)이었던 안종규(安鍾奎)는 양주군 백석면에서도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안종규는 다수의 지역 주민들을 규합하여 3월 27일 형인 안종태(安鍾泰)와 함께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하는 고려 후기 지방 행정 제도. 원의 지배하에 지방 행정 구역의 편제를 변경함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양광도는 1314년(충숙왕 1)에 정식 명칭이 되었다. 지금의 양주시 일대는 양광도 관할인 남경유수관 양주에 속한 3군 6현에 포함되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10 지리 양광도]를 살펴보면 “양광도(楊廣道)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의 땅이다....
-
김원보(金元寶)를 시조로 하고 경기도 양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양주 김씨의 시조는 김원보로, 신라 56대 왕 경순왕(敬順王)의 4남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이다. 김원보는 고려 고종 때 예부 상서와 영돈녕 판추밀원사를 지내고 양주백(楊州伯)에 봉해졌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양주에 세거했고, 경주 김씨(慶州金氏)로부터 떨어져 나와 양주를 본관으로 삼아 양주 김씨가...
-
경기도 양주시 남면 매곡리에 있는 개항기 전통 가옥. 양주 매곡리 고택(楊州梅谷里古宅)은 양주시 남면 휴암로[매곡리 282-3번지]에 위치한다. 전해져 오는 말에 의하면, 양주 매곡리 고택은 조선 말 정국이 혼란해지자 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가 은신처로 삼기 위해 서울의 고옥(古屋)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명성황후의 경호원 김종원은 명성황후로부터 동대문 밖에 은...
-
송도성(宋道成)을 시조로 하고 경기도 양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양주 송씨의 시조는 송도성으로, 조선 시대에 장악원 정을 지냈다. 그가 처음 양주에 정착하고 그의 후손들이 양주에 세거하면서 여산 송씨(礪山宋氏)에서 떨어져 나와 양주를 본관으로 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주부를 지낸 송희주(宋希周), 직장을 지낸 송순령(宋舜鈴)이 가문을 일으켰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 영조 때 병...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조선 후기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愼氏)의 능묘. 양주 온릉(楊州溫陵)은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이자 원비인 단경왕후 신씨[1487~1557]의 능이다. 단경왕후 신씨의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아버지는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 신수근(愼守勤)이다. 1499년(연산군 5) 중종이 진성대군(晉城大君)으로 있을 때 혼인하여 부부인(府夫...
-
조잠(趙岑)을 시조로 하고 양주를 본관으로 하는 경기도 양주시 세거 성씨. 양주 조씨의 시조는 조잠으로, 고려 시대에 호장을 지내고 후일 판중추부사에 추증되었다. 관련 문헌이 남아 있지 않아 선대가 어떠한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조잠은 고려 시대 사람인 조군우(趙君祐)의 손자이며, 조경질(趙景質)의 아들이라고 한다. 1453년(단종 1) 계...
-
일제가 농촌진흥운동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한 농촌 관제 단체. 농촌진흥회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 관료-유지 지배 체제의 형성과 함께 식민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발전시킨 주요 기구 중 하나이다. 양주진흥회도 일본인과 조선인 대지주의 가혹한 수탈에 대항하는 기구로서가 아니라 단지 지주와 소작인 간의 상호 부조와 농민의 자력갱생 등을 요구하는 기구로서 만들어졌다. 일제는 강점과...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3·1 운동 이후 무력만으로는 한국을 지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일제는 그때까지의 무단 통치 방식을 변경하였다. 조선 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齊藤實]는 ‘문화의 발달과 민력(民力)의 충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른바 문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한편, 1920년대 초반 한국은 노동 운동, 농민 운동의 이념과 조직...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고려 전기~조선 시대의 절터. 회암사(檜巖寺)가 정확하게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에 ‘1174년(명종 4) 금(金)나라의 사신이 회암사를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1313년(충선왕 5)에는 태고(太古) 보우(普遇)[1301~1382]가 회암사에서 광지(廣智)에게 출가하였다고 하며, 134...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고려 전기~조선 시대의 절터. 회암사(檜巖寺)가 정확하게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에 ‘1174년(명종 4) 금(金)나라의 사신이 회암사를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1313년(충선왕 5)에는 태고(太古) 보우(普遇)[1301~1382]가 회암사에서 광지(廣智)에게 출가하였다고 하며, 134...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檜巖寺)에 있는 조선 전기 승려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부도. 무학(無學)[1327~1405]은 삼기(三岐)[현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출신으로 속성은 박씨(朴氏)이고, 휘는 자초(自初), 당호(堂號)는 계월헌(溪月軒)이다. 1344년(충혜왕 복위 5) 18세에 출가하여,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 불법을 배웠고, 1346년(충목왕 2) 부도암에 머물면서...
-
경기도 양주는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치열한 쟁탈전의 현장으로서, 고려 시대에는 개성과 조선 시대에는 한양과 가까운 근기(近畿) 지방에 속함으로써 수많은 부침(浮沈)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부침 속에는 역사에 오롯이 이름 한 줄로 남았거나 혹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사연들이 녹아 있다.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과...
-
1466년부터 1895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지방 행정 제도에 의해 설정된 목(牧)·부(府)·군(郡)·현(縣) 중에서 양주는 가장 큰 규모의 행정 단위인 목에 해당하였으며, 해당 지방관의 명칭은 목사(牧使)였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었던 양주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1466년(세조 12) 양주도호부를 양주목(...
-
1678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에 있는 어의궁(於義宮) 소속의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 어의궁 위전답 타량 성책(楊州牧於義宮位田沓打量成冊)」은 1678년(숙종 4) 양주목에서 어의궁 소속의 위전(位田)과 위답(位畓)의 규모와 토질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어의궁은 효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다. 인조의 계비(繼妃)인 장렬왕후(莊烈王后)...
-
1719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연잉군방(延礽君房)이 새로 구매한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 연잉군방 매득 전답 타량 성책(楊州牧延礽君房買得田沓打量成冊)」은 1719년(숙종 45) 12월 연잉군방에서 양주목 백석곶면 우장리, 광석면 삼고개(三古介)[지금의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 일대에 구매한 전답의 규모와 토질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연잉군[1694~1776]은...
-
1725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창의궁방(彰義宮房)이 새로 구매한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 창의궁 매득 전답 타량 어람 성책(楊州牧彰義宮買得田沓打量御覽成冊)」은 1725년(영조 1) 3월 양주목에서 창의궁방이 새로 구매한 경기도 양주목 백석면 소재의 전답 9필지를 측량한 뒤 만든 책이다. 창의궁(彰義宮)은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주했던 집이다...
-
1727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에 있는 어의궁(於義宮)의 율원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목 풍양 접동면 구궐기지 어의궁 율원 타량 어람 성책(楊州牧豊壤接洞面舊闕基址於義宮栗園打量御覽成冊)」은 1727년(영조 3) 초 양주목에서 동목에 있는 어의궁 소유 율원의 규모를 정확히 측량해 영조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어의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던 궁궐로...
-
1395년부터 141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도읍을 한양, 즉 예전의 양주로 옮기면서 옛 양주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동촌(東村) 대동리(大洞里)로 강제로 이주시키고 양주를 양주군(楊州郡)으로 강등시켰다. 1395년(태조 4) 고려 시대 견주 지역으로 다시 한 번 이주시킨 후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양주군을...
-
경기도의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시. 동쪽으로 포천군, 서쪽으로 파주시 및 고양시, 남쪽으로 서울특별시 및 의정부시, 북쪽으로 동두천시 및 연천군과 각각 접해 있으며, 동서의 거리는 20㎞, 남북의 거리는 30㎞이다. 대체로 산지가 많이 발달해 있으며, 평지는 적은 편이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수많은 전설이 깃들어 있어 영산이라고 일컬어지는 감악산(紺嶽山)[675m], 양주시의 주산...
-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나 찾아볼 수 있다. 왕건이 전국의 군·현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는 성씨가 왕실 및 일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주의 토착 성씨는 조선 전기 사회 상황을 전하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1724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용동궁(龍洞宮)이 구입한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양주지 동십리 돌곶지 천장동 복재 용동궁 매득 전답 어람 성책(楊州地東十里乭串地天藏洞伏在龍洞宮買得田沓御覽成冊)」은 1724년(경종 4) 1월 양주목에서 용동궁이 구입한 동목(同牧) 동십리 돌곶지 천장동 산척주회팔리(山脊周回八里) 도국(都局) 내에 있는 전답을 측량한 후 국왕의 열람을 목적으로 작...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관립 교육 기관. 양주향교(楊州鄕校)는 1401년(태종 1)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1610년(광해군 2)에 다시 세웠다. 이후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8년에 복원하였다. 강학소인 명륜당(明倫堂)이 앞에 오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이 뒤에 오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하고 있다. 홍전문(紅箭門)[홍살문...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양주 관아(楊洲官衙)에 행차하여 활을 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792년(정조 16)에 세운 사적비이다. 1792년 9월 정조가 광릉(光陵)[세조의 능]에 행차할 때 폭우로 다리가 무너져 동쪽 길을 버리고 북쪽 길을 택하였는데, 행차 후 돌아오는 길에 양주 관아에서 3일간 민정을 살피고 사대(射臺)에서 활...
-
1792년 정조가 경기도 양주와 포천의 백성들에게 특혜를 제공할 목적으로 직접 발급한 문서. 「어제유 양주 포천 부노민인등 서(御製諭楊州抱川父老民人等書)」는 1792년(정조 16) 9월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세조의 능인 광릉(光陵)에 행차한 뒤 인근 양주·포천의 노인들을 불러 그들의 어려움을 경청한 후 각종 혜택을 제공할 목적으로 이 지역 백성 및 관리들에게 내린 윤음(綸音)이...
-
경기도 양주시 삼숭동에서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로 넘어가는 고개. 조선 태조가 무악대사와 회암사(檜巖寺)를 찾았을 때 산세를 보려고 봉양리의 칠봉산[당시 어등산이라 했음]을 올랐다가 천보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20리쯤 되는 이 고개로 내려와서 어하고개라 하였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원바위고개라고 하는데, 이는 미군이 전략상 필요에 의해 표시한 ‘1Y[원와이]’를 그대로 읽으면서 변한...
-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인 여영원(呂榮元)의 정려(旌閭). 여영원[1595~1627]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화백(華伯), 시호는 양장(讓壯)이다. 1617년(광해군 9)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첨정 등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에 참전하였으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심하다가 자결하였다. 여영원 정려(呂榮元旌閭)는 양주시 평화로 1970번길 75...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시대 여제(厲祭)를 지내던 제단 터. 여제는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이나 전염병을 퍼뜨리는 귀신인 여귀(厲鬼)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의 각 군현에 여단을 두어 역병을 예방하였다. 여제단(厲祭壇)을 줄여서 여단(厲壇)이라고도 하는데, 동쪽의 성황단, 서쪽의 사직단과 함께 관아에서 필수적으로 세우는 제단이었...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驛)과 관청에 지급된 토지. 교통의 중심지에 설치된 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지급된 전답을 역토(驛土), 지방이나 중앙 관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 관청에 지급된 토지를 관둔전(官屯田)이라 하며 이를 합하여 역둔토(驛屯土)라 한다. 『양주정간책(楊州井間冊)』에 의하면 조선 시대 양주에는 6개의 역토와 14개의 둔토(屯土)가 있었다. 양주 지...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양주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역사적 중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더욱이 양주 지역의 남쪽과 북쪽을 흐르고 있는 한강과 임진강은 수로에 근거한 교통의 편리함, 풍부한 수자원, 광활한 평야라는 지리적 장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이를 둘러싼 군사적 쟁탈전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한강과 임진강을 접하...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속하는 법정리. 연곡리(蓮谷里)는 연평리(蓮坪里)와 난곡리(蘭谷里)에서 ‘연’자와 ‘곡’자를 따서 지었다. 연평리라는 땅 이름은 연못이 있는 들판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래하였고, 난곡리라는 땅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에 있었던 피난말에서 변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연곡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이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
-
1765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연희궁(延禧宮) 묘소 주변 등의 전답을 추가 매입해 측량한 뒤 만든 토지 대장. 「연희궁 묘소외 청룡 백호 식목처 추입 전답 타량 성책(延禧宮墓所外靑龍白虎植木處追入田沓打量成冊)」은 1765년(영조 41) 3월 양주목에서 연희궁 묘소의 내청룡(內靑龍) 근처의 전답 및 외청룡(外靑龍)·백호(白虎)의 나무 심는 곳을 단장하기 위해 추가 매입한 전답 현황을 상...
-
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영서역(迎曙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개경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양주 치소에서 서쪽 60리[24㎞]...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오산리에 있는 수령 약 5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
-
경기도 양주시에서 공자(孔子)의 정치 이념, 학문, 의례에 관한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던 사상. 유교(儒敎)는 공자가 제창한 정치 이념, 도덕 수양의 방법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사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여말 선초의 무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득휴(得休). 아버지는 우부대언(右副代言) 유총(柳總)이다. 아들은 유원지(柳源之), 유은지(柳隱之), 유연지(柳衍之)이다. 손자는 유종(柳淙)이다. 유만수(柳曼殊)[?~1398]는 고려 공민왕 때 보마배행수(寶馬陪行首)에 올랐고, 장군 등 무관직을 두루 거쳐 벼슬이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이르렀다. 1374...
-
경기도 양주시에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증조할아버지는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이고, 할아버지는 사용(司勇) 윤희림(尹希林)이며, 아버지는 군자감 정 윤변(尹忭)이다.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형은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이다. 윤근수(尹根壽)[1537~1616]는 1558년(명...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윤희섭(尹喜燮)[188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희섭은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어서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이 체결되는 등 충격적인 사건...
-
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법정면.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기존의 묵은면(默隱面)과 현내면(縣內面)의 대부분 지역을 합치면서, 묵은면의 ‘은’자와 현내면의 ‘현’자를 따서 은현면(隱縣面)이라고 하였다. 은현면이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묵은면과 현내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은현면은 삼국 시대부터 별도의...
-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경기도 양주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일으킨 국권 회복 운동. 의병 운동은 1894년 발발한 갑오 농민 운동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봉기한 이후 20여 년간 전개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과 투쟁의 강도가 강화되었다. 군대 해산 이전에는 이인영(李麟榮)·최익현(崔益鉉) 등 지방의 명망 있는 유생 의병장이 의병 운동을 주도하면서 반일 항전을 촉...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이자 정치가. 이강국(李康國)[1906~1955]은 경기도 양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서울로 이주하였지만 집안이 몰락하여 충청남도 예산 등지의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하였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보성중학교에 특대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며, 1925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당시 『동아일보』에 그의 사진과...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정치가·청년운동가·종교운동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계호(季皜), 호는 월남(月南). 아버지는 이희택(李羲宅)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1864년(고종 1) 강릉 유씨(江陵劉氏)와 결혼하였다. 이상재(李商在)[1850~1927]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는 전통 교육을 받았다. 1881년(고종...
-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 지역에서 사위 고르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야기로 사위 삼기」는 마음에 드는 데릴사위를 고르려고 이야기 잘하는 사람을 찾는 장인의 다소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사위 후보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지혜를 발휘하여 성취하는 소화(笑話)이다. 소화는 웃음을 유발하는 흥미 위주의 이야기인데, 「이야기로 사위 삼기」는 그중에서도 지혜를 발휘...
-
양주목사를 역임한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징지(澄之), 호는 매죽헌(梅竹軒). 아버지는 인조반정 공신 이수일(李守一)이며, 어머니는 완산 이씨(完山李氏)로 이귀년(李貴年)의 딸이다. 이완(李浣)[1602~1674]은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인조반정 공신으로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서(李曙)의 추천으로 만포 첨사(滿浦僉使)가...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관료.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여(允汝), 호는 춘사(春史). 아버지는 이해석(李海錫)이고, 교육가이자 명신여학교 초대 교장인 이정숙(李貞淑)이 여동생이다. 이원상(李源商)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효계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한 이원상은 후에 양구군수·천안군수·안산군수·죽산군수를 역임하였다. 이원상은 1907년 의병을 일으킨 왕...
-
근대 경기도 양주 출신의 여성 교육자.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해석(李海石)이고, 오빠는 죽산군수를 역임한 이원상(李源商)이다. 이정숙(李貞淑)[1858~1935]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471번지[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16세 때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조카인 조영하(趙寧夏)와 혼인하였다....
-
1689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인빈방(仁嬪房)이 구입한 동목(同牧) 소재의 제전(祭田)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인빈방 제전 양주 풍양 복재 매득 후 계하 면세 전답 개타량 성책(仁嬪房祭田楊州豊壤伏在買得後啓下免稅田沓改打量成冊)」은 1689년(숙종 15) 3월 경기도 양주목에서 인빈방이 구입한 동목 소재 제전을 정확히 파악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책의 말미에 타량관(打量官) 및 양...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납작한...
-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일제 식민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양주는 서울의 동북 방면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현재의 동두천시·남양주시·의정부시·포천시·구리시 등과 서울의 동북쪽이 모두 양주 지역에 해당되었다. 즉, 1912년 당시 양주 지역은 32면 343동리의 대규모 고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1914년 면제 개편 때 양주는 16면...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사경(士經), 호는 정곡(靜谷). 고조할아버지는 임중선(任中善), 증조할아버지는 임효돈(任孝敦), 할아버지는 임한(任漢), 아버지는 공조 판서 임유겸(任由謙)이다. 어머니는 이신(李愼)의 딸이다. 부인은 신제담(辛悌聃)의 딸이다. 형은 대사간을 역임한 임추(任樞)이다. 아들은 임중신(任重臣)이고, 손자는 임...
-
경기도 양주 출신의 임꺽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홍명희(洪命熹)의 대하 역사 소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은 한국 근대 역사 소설의 초창기인 1928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후, 몇 차례 연재 중단을 거듭하다가 1940년 『조선일보』가 폐간되자 『조광』으로 발표 지면을 옮겼으나, 결국은 완결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소설 『임꺽정』은 연재된 시기와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
-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추정되는 임꺽정이 주인공인 소설 『임꺽정』을 원작으로 한 대하드라마. 「임꺽정」은 1996년 11월 10일부터 1997년 4월 6일까지 SBS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로 토요일 오후에 방영되었다. 제작 기간은 3년이었으며, 본래 36부작으로 계획되었으나 44부작으로 종영하였다. 임꺽정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양주에서 드라마의 일부가 촬영되었다. 1995년 양주군 백...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태로(台老). 고조할아버지는 판서 임유겸(任由謙)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임간(任幹), 할아버지는 임익신(任翊臣)이며, 아버지는 형조 참판 임광(任絖)이다. 부인은 원주 변씨로 승지 변효성(邊孝誠)의 딸이다. 임윤석(任允錫)[1606~1685]의 아버지 임광은 1634년(인조 21) 좌부빈객(左副賓客)이 되어...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 크게 동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일본과의 교역을 단절하여 임진왜란 직전에는 양국간의 교섭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일본...
-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7년 동안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전쟁을 가리킨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를 포함시켜 말한다. 우리 민족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던 임진왜란이라 하면, 단연 이순신(李舜臣)...
-
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행정면이자 법정면. 장흥(長興)이라는 땅 이름은 조선 시대 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기록에 전하고 있다. 따라서 장흥면(長興面)은 백석읍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래 이름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지역이다. ‘장흥’이라는 이름을 우리말로 풀면 ‘오래도록 길이 흥한다’가 된다. 땅 이름이 같은 전라남도 장흥군의 경우 고려 인종(仁宗) 때에 인종의 비인...
-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는 전주 이씨 경녕군파의 집성촌. 전주 이씨 경녕군파(敬寧君派)의 파시조인 경녕군(敬寧君)은 조선의 2대 국왕인 태종의 제1서자 이비(李示+非)[1395~1458]이다. 이비는 어릴 때부터 효도와 우애가 돈독하였고, 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의 5대에 걸쳐 왕실과 국정 문제를 자문하였다. 세종 때에는 사은사(謝恩使)로 명(明)나라를 방문하였다. 2000년...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는 전주 이씨 주부공파의 집성촌. 전주 이씨 주부공파(主簿公派)의 파시조는 목조(穆祖)[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의 동생인 주부(主簿) 이영습(李英襲)이다. 전주 이씨 덕도리 집성촌의 입향조(入鄕祖)는 이영습의 12세손인 이영식(李永式)으로, 조선 선조 때에 진주목사를 지냈다. 1810년경 선암리 보막동으로 이주한 뒤 후손들이 현재까지 약 200년...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에 있는 전주 이씨 덕천군파의 집성촌. 전주 이씨 덕천군파(德泉君派)의 파시조는 덕천군(德泉君)으로, 조선 2대 국왕 정종의 10남인 이후생(李厚生)[1397~1465]이다. 경서(經書)의 대의(大義)를 통달하였다고 한다. 전주 이씨 선암리 비동 집성촌의 입향조(入鄕祖)는 조선 성종의 아들 익양군(益陽君)의 8세손인 이태동(李泰東)이다. 후손은 1690년...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는 전주 이씨 경녕군파의 집성촌. 전주 이씨는 대성으로 2000년 현재 전국적으로 808,511가구 2,609,890명이 있다. 전주 이씨 경녕군파(敬寧君派)의 파시조는 조선 2대 국왕 태종의 제1서자인 경녕군(敬寧君) 이비(李示+非)[1395~1458]이다. 이비는 어릴 때부터 효도와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의 5대에 걸쳐 왕...
-
경기도 양주 지역에 남아 있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 사찰의 터. 절터는 화재나 이전, 폐사 등의 이유로 현재는 그 사찰의 터만 남아 있는 자리로, 당대의 불교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절터에서 발굴되는 사찰의 제도나 조각품, 건축물, 공예품, 회화 등의 불교문화 유적들은 당대 불교문화의 수준이나 특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경기도 양주시에서...
-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의정부에 묘소가 있는 여말 선초의 문신. 본관은 동래. 자는 중상(仲常), 호는 설학재(雪壑齋). 아버지는 감찰 대부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 정양생(鄭良生)이다. 어머니는 찬성 안축(安軸)의 딸 순흥 안씨이다. 첫째 부인은 참의 이인(李嶙)의 딸 고성 이씨이고, 둘째 부인은 좌윤 윤승경(尹承慶)의 딸 파평 윤씨이다. 아들은 정효경(鄭孝卿), 정선경(...
-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에 있는 조선 전기 도학자 정렴(鄭𥖝)의 묘. 정렴[1506~1549]의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사결(士潔), 호는 북창(北窓)이다. 아버지는 정순붕(鄭順朋)이다. 정렴은 천문·지리·의서·복서(卜筮) 등에 두루 능하였고, 매월당 김시습, 토정 이지함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奇人)으로 꼽힌다. 또한 약재에도 조예가 깊어 1544년(중종...
-
1730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정빈방(靖嬪房)이 새로 구매한 전답을 측량해 만든 토지 대장. 「정빈방 신 매득 전답 타량 성책(靖嬪房新買得田沓打量成冊)」은 1730년(영조 6) 3월 경기도 양주목에서 정빈방이 새로 구입한 동목(同牧) 백석면 고령리(高嶺里)[지금의 양주시 백석읍 기산리] 소재 전답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정빈(靖嬪)은 영조의 후궁이며, 진종(眞宗)...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시회(時晦), 호는 수몽(守夢)·설촌(雪村). 아버지는 진사 정유성(鄭惟誠)이고,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증찬성 윤언태(尹彦台)의 딸이다. 부인은 한산 이씨(韓山李氏)로 영의정 한흥부원군(韓興府院君) 이산보(李山甫)의 딸이다. 딸은 병조 참지(兵曹參知) 나만갑(羅萬甲)에게 출가하였다. 정엽...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 있는 충신 조견(趙狷)과 남을진(南乙珍)의 조선 후기 사당. 정절사(旌節祠)는 고려 말의 충신인 조견[1351~1425]과 남을진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조견은 1392년(태조 1) 상장군으로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는 데 앞장서 조선이 개국된 후 개국 공신에 책록되었다. 남을진은 조선이 개국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적성(積城) 감악산(紺嶽山...
-
경기도 양주시에 사당이 있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거경(巨卿), 호는 송산(松山). 초명은 조윤(趙胤).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덕유(趙德裕)이고, 어머니는 오의(吳懿)의 딸이다. 형은 조선 왕조 창건에 공을 세운 영의정부사 조준(趙浚)이다. 조윤은 고려가 망하자 자를 종견(從犬)으로, 이름은 조견(趙狷)으로 바꾸고 은거하였다고 하나 『조선왕...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양. 고려 충선왕의 장인인 문하시중 조인규(趙仁規)의 4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도판서 조덕유(趙德裕)이고, 아버지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준(趙浚)이다. 부인은 태종의 둘째딸 경정공주(慶貞公主)이다. 자녀는 아들 조무영(趙武英)과 딸 넷을 두었다. 딸 하나는 문종의 처남이었던 김중엄(金仲淹)에게...
-
1945년 해방 직후 재결성된 조선공산당의 경기도 양주 지역 지구당. 조선공산당은 1925년 서울에서 결성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몇 차례 와해되는 등 굴곡을 겪었다. 그러다 국내 사회주의자들 중 경성콤그룹 세력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이 전개되어 1945년 9월 11일 다시 결성되었으며 여운형(呂運亨), 박헌영(朴憲永), 허헌(許憲), 김원봉(金元鳳) 등이 의장단에 포함되었다...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시대 양주(楊州)는 원래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이었다. 1392년 새롭게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고려 후기까지 양주로 불리던 한강 북부의 한양부가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수도로 선정하였으며, 기존의 아전과 백성들을 견주(見州),...
-
경기도 양주시에 사당이 있는 여말 선초의 무신. 본관은 한양. 호는 퇴촌(退村). 중국에서 귀화한 조지수(趙之壽)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순후(趙珣厚)이고, 아버지는 조세진(趙世珍)이다. 조선 개국공신 1등 조인옥(趙仁沃)과 개국공신 2등 조온(趙溫)과 친척으로, 그들의 출세에 힘입어 한양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李成桂)와는 사돈 관계이다. 조영무(趙英茂)[?~14...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공신인 조영무(趙英茂)의 사당. 조영무[1338~1414]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중국에서 귀화한 조지수(趙之壽)의 고손이다. 조선 건국 후 개국공신 3등에 올랐고, 한산군(漢山君)에 봉해졌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는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으로 정해지고,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에도 공을 세웠...
-
조선 초기 경기도 양주를 관할하던 최고위 관직. 양주는 고구려의 북한산군으로 고려 시대에 남경유수관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1308년(충렬왕 34) 한양부(漢陽府)가 되었다. 한양부는 현재의 서울을 포함하여 교하군·견주·포주·행주·고봉현·봉성현·심악현·풍양현·사천현까지를 포함하는 넓은 영역이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한양부를 도읍으로 정하면서 현재의 서울 지역에 도성이 건설되었다. 1...
-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진답면(陳畓面)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 민무질(閔無疾)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여흥 민씨 집안에서 이 지역을 사패지로 하사받은 후, 어느 누구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가운데 외부에 가려있고 항상 농사를 짓지 않고 물이 차 있어 질퍽한 논이라는 뜻에서 진답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진답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
-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 지역에서 아이의 지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천자를 이긴 아이」는 대국 천자가 중국의 바람을 다 막을 휘장과, 두만강 물을 다 담을 가마를 만들어 올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 달라고 했는데, 아이가 천자를 만나 불가능한 일을 지혜로써 해결하고 벼슬을 얻었다는 지략담이다.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출간한 『양주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8...
-
경기도 양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로마 교황을 으뜸으로 하는 전 세계 교회를 일컬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 혹은 가톨릭 교회와 같은 뜻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서학(西學), 서교(西敎), 천주학(天主學) 등으로 불리다 천주교로 정착하였으며, 가톨릭으로도 쓰인다. 1784년(정조 8)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와 이벽(李檗), 정약전(丁若銓) 등...
-
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청파역(靑坡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김포·부평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숭례문[남대...
-
경기도 양주 지역 출신이거나 양주에 연고를 두고 국가나 왕을 위해 충성을 바친 신하.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로서 충효 사상을 강조하였으므로 매우 많은 충신과 효자, 열녀를 배출하였다. 양주 또한 이 지역 출신자나 연고를 둔 인물 중에서 충신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래서 양주에는 충신과 효자, 열녀를 표창하기 위하여 세운 정문(旌門)이 많이 남아 있다. 양주의 충신을 살펴보면...
-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과 동두천시 탑동동·송내동, 포천시 설운동에 걸쳐 있는 산. 양주시 봉양동의 내촌동 뒷산에서 보면 일곱 봉우리가 뚜렷하게 보인다 해서 칠봉산(七峰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특히 10~11월이면 단풍나무 사이로 기암괴석이 펼쳐진 모습이 한 폭의 비단 병풍과 같다고 하여 금병산(錦屛山)으로도 불렀다. 조선 시대에는 어등산(於等山) 또는 어등산(於登山...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남양부부인 홍씨(南陽府夫人洪氏) 묘 앞에 있던 코끼리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조선 시대 무덤. 남양부부인 홍씨는 조선 초기 재상인 양절공 한확(韓確)의 부인으로, 인수대비 한씨(仁粹大妃韓氏)의 어머니이며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의 외할머니이다. 향년 47세로 사망한 남양부부인 홍씨는 현재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기와집말의 양지바른 언덕에 묻혀 있는데, 무덤...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와 백석읍 홍죽리 및 파주시 광탄면 기산리에 걸쳐 있는 산. 여덟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산을 통해 해를 맞는다 하여 팔일봉(八日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 온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조선 21대 왕인 영조(英祖)와 생모 최씨에 관련된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영조의 생모 최씨는 무수리였는데, 최씨가 죽자 아들 영조는 살아서 천대를...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 있는 평양 조씨 집성촌. 평양 조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의 무신인 조춘(趙椿)이다. 조춘은 추밀원 부사로 남송(南宋)에 가서 금(金)을 정벌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워 상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5세손인 조인규(趙仁規)가 고려 충숙왕의 장인이 되었고 후일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평양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파는 제주공파(濟州公派), 병사공파(兵事...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에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느티나무에 이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뭇과의 낙엽 교목으로, 높이는 40m까지 자라며, 잎은 부채 모양으로 한 군데서 여러 개가 난다. 암수딴그루로 5월에 꽃이 피는데, 암꽃은 녹색이고 수꽃은 연한 노란색이다. 열매는 은행이며, 핵과(核果)로 10월에 노랗게 익는다. 하패리...
-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고 양주의 옛 지명의 하나였던 한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한양(漢陽)은 현재의 경기도 양주시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한양 조씨의 시조는 조지수인데, 덕원부 용진현에서 세거하던 사족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에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이 개국하자 조지수의 후손들이 한양으로 이주하고 그곳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파는 안정공파(安靖...
-
1750년대에 편찬된 『해동지도(海東地圖)』의 경기도 양주목에 해당하는 부분. 『해동지도』는 국가 차원에서 제작된 방대한 분량의 채색 필사본 지도로, 조선 전도를 비롯해 도별도, 군현 지도, 세계 지도가 망라되어 있다.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9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태고 4709-41]. 그중 「해동지도 양주(海東地圖楊州)」는 오...
-
임진왜란 당시 경기도 양주 해유령에서 왜적을 상대로 벌인 전투. 16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 크게 동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일본과의 교역을 단절하여 임진왜란 직전에는 양국 간의 교섭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일본은 오랜 내란을 끝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홍명형(洪命亨)의 정려(旌閭). 홍명형[1581~1636]의 자(字)는 계통(季通), 호(號)는 무적당(無適堂), 시호는 의열(義烈)이다. 1612년(광해군 4)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이후 전적·형조 참의 등을 지냈다. 1639년(인조 17)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김상용(金尙容)과 함께 분신자살하였다. 이때 홍명형의 부...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 자는 명철(明哲). 아버지는 동지 홍상부(洪尙溥)이다. 부인은 개성 왕씨로 왕족 수연대군(壽延大君) 왕규(王珪)의 딸이다. 자녀는 4남 3녀를 두었다. 홍지(洪智)는 고려 말 임진 도승을 역임하였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정6품 벼슬인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을 내렸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출사하...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홍지(洪智)의 묘. 홍지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명철(明哲)이고, 아버지는 홍치(洪値)이다. 고려 유신(遺臣)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친구 사이였다. 조선 건국 후 관직을 낮추어 임진도승(臨津渡丞)이 되었다가 나중에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거부하고, 절의를 지켜 낙향하여 시와 글로...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 순교자인 황사영(黃嗣永)의 묘. 황사영[1775~1801]은 남인계 가문 사람으로,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이다. 세례명이 ‘알렉산델’로 알려져 왔으나 교회사가들에 의해 ‘알렉시오’로 확인되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시 천주교 교세와 순교자들의 약전 및 포교 방안 등을 담은...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에서 우고리로 넘어가는 고개. 황새등고개는 황새들이 많이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이곳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어 황새들의 서식처가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황새 등처럼 쉽게 넘어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물안재고개라고도 한다. 황새등고개는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 음지말에서 우고리 한걸음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조선 정종의 15남인...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 1174년(명종 4) 금나라 사신이 회암사에 온 적이 있다는 기록과 보우(普愚)가 1313년(충선왕 5)에 회암사에서 출가했다는 사실이 있어 회암사는 늦어도 12세기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1328년(충숙왕 15)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들어온 지공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
경기도 양주시 율정동에 있는 박물관. 양주시에서 회암사지를 경기 북부 최고의 관광지와 역사 교육의 장으로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종합 정비 계획을 수립하여 연차적으로 회암사지 발굴 조사, 유적 및 단지 정비 등 회암사지 종합 정비 계획[총 사업비 580억 원] 중 하나로 2012년 10월 19일 회암사지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총 사업비는 127억 원이 투입되었다. 회암사지 종합 정비...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檜巖寺址) 8단지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청기와. 청기와는 평기와에 유약을 발라서 청색의 색채가 드러나도록 번조한 것이다. 특히 중국 명나라에서 성행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세종 대에 처음으로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회암사지 출토 청기와는 양주 회암사지 발굴 조사 시 왕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정전(正殿)의 옆에 위치하는 대장전 터에서...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 보광전 터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청동제 금탁(琴鐸). 금탁은 불구(佛具)의 하나로 보통 풍경(風磬) 또는 풍탁(風鐸)이라고 부르며, 경세(警世)의 의미를 지닌 도구로서 수행자의 방일(放逸)이나 나태함을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 풍탁은 처마 끝에 매다는 작은 종으로, 속에는 붕어 모양의 쇳조각을 달아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