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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616
한자 金堤郡官衙-鄕校
영어의미역 Gimje-gun Government Office and Hyanggyo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 7-3|교동 39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나종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7년 7월 31일연표보기 - 김제군 관아와 향교 사적 제48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제군 관아와 향교 사적 재지정
성격 사적
양식 팔작지붕(동헌·내아)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정면칸수 7칸[동헌]
측면칸수 4칸[동헌]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 7-3|교동 39 지도보기
소유자 김제시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와 향교.

[개설]

김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벼농사가 발달한 지역으로 농업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던 시대에 다른 지역에 비해 군(郡)으로서 읍의 격이 높은 지역이었다. 현존하는 관아 와 향교 건물들은 그에 따른 위계를 보여 주고 있다.

[위치]

김제 시가지의 중심에서 볼 때 서쪽 성산(城山) 아래에 향교가 있고, 약 130m 거리에 관아가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구시가지 지역이다.

[변천]

김제군 관아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동헌, 내아, 피금각, 관리사로 부르는 건물 1채가 남아 있다. 김제 향교는 대성전이 조선시대 건물이고, 명륜당과 문루인 만화루 등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에 다시 지었다.

[형태]

김제군 관아의 동헌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주춧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자연석의 윗부분을 판판하게 다듬어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윗부분 중 기둥이 닿는 부분만을 원형으로 조금 돌출시켰다. 앞면과 옆면 둘레의 모든 칸에는 문이 있으며, 이 문의 문살은 띠살로 되어 있다. 축대는 반듯이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92㎝ 높이로 쌓았다. 건물 안은 왼쪽에 앞면 두 칸, 옆면 한 칸의 방이 있고 나머지 부분은 마루로 되어 있다.

관아의 내아(內衙)는 현재 ㄷ자형 안채만 남아 있는데, 동쪽이 트인 ㄷ자형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ㄷ자 중 북쪽에는 동편에 커다란 부엌이 있고, 그 왼편에 2칸짜리 방과 마루로 된 1칸짜리 골방이 있으며, 남쪽에는 가운데에 부엌 1칸이 있고, 그 좌우에 2칸짜리 방이 하나씩 붙어 있다. 그리고 서쪽에는 마루가 놓여 있어 남쪽과 북쪽의 방을 연결시켜 주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기둥 위의 도리는 다섯모로 접어 놓았다. 그리고 대청 전면뿐 아니라 가옥의 모든 기둥을 두리기둥으로 세웠다.

[현황]

김제군 관아와 향교는 2007년 7월 31일 사적 제48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김제시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제군 관아와 향교는 인접한 거리에 함께 보존되고 있어서 조선시대 행정 기관과 교육 기관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즉, 관아와 향교를 중심으로 지방 통치와 교화 기능을 담당하던 당시 우리나라 읍치(邑治)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관아의 동헌과 내아가 함께 있는 경우도 드문 예로서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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