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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726
한자 羅州羅氏集姓村
영어의미역 Naju Na 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
집필자 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나주 나씨 집성촌.

[개설]

나주나씨(羅州羅氏)는 중국 백익(佰益)의 후예로, 주대(周代)에 대라씨(大羅氏)로 나국(羅國)에 봉해져 나씨가 되었고, 한나라 초에 예장(豫章)으로 옮겨 예장나씨가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시조 나부(羅富)가 봉명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사이에 송나라가 멸망하니 발라현(發羅縣)[지금의 나주]에 정착하고 고려조에 출사하여 벼슬이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에 이르렀다. 이후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형성 및 변천]

나주나씨는 나부를 시조로 하고 나석(羅碩)을 입향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나석은 진사 나수영(羅守永)의 셋째 아들이며 시조 나부의 5세손이다. 여러 관직을 지내고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졌으며, 1388년경(우왕 14) 나주에서 김제로 이거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금양군파를 형성하면서 지금의 김제시 신풍동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6세손 낙천와(樂天窩) 나중우(羅仲佑)는 나석의 큰아들로 공민왕 때 순유진사·중문·중정대부전교시령·예문관지제고·춘추관편수관을 지냈다. 고려의 국운이 다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켜 입천(立天)[지금의 김제시 신풍동]으로 내려온 뒤, 태조 이성계가 우의정 벼슬을 내리고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6세손 나안세(羅安世)는 승문원교리·외군헌부관을 지냈다. 팔효사(八孝祠)용암서원(龍巖書院)에 배향되었다. 7세손 나응허(羅應虛)명종 때 사헌부감찰·청주목판관·청주진병마절제도위를 지냈다.

[현황]

관련 유적으로 김제시 신풍동 안터에 팔효사가 있다. 1629년(인조 7)에 창건하였으며, 나안인(羅安仁)·나안의(羅安義)·나응허, 나응삼(羅應參)·나의(羅扆)·나표(羅表)·나계(羅禊)·나한명(羅漢明) 등을 배향하고 있다. 김제시 하동에 있는 지음서원(芝陰書院)에는 묵재(黙齋) 이귀(李貴)를 비롯하여 주은 나협(羅悏), 산정 나수눌(羅守訥), 취죽헌 고봉익(高鳳翼), 희입재 나처대(羅處大), 근구재 나희후(羅喜厚) 등을 배향하고 있다. 이 밖에 세효문(世孝門), 나중우 신도비(羅仲佑 神道碑), 나득강 신도비(羅得康 神道碑)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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