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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이 타령」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740
영어의미역 Gakseoritaryeong| Beggar's Song
이칭/별칭 「품바타령」,「장타령」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집필자 이윤애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타령|구전민요
형성시기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후
출현음 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
기능구분 장타령|장만센가|각설이타령
형식구분 장타령|각설이 타령
박자구조 4박자 6소절|8소절
가창자/시연자 김시라

[정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장터의 각설이가 기층들의 한과 아픔을 풍자에 섞어 노래한 민요.

[개설]

「각설이 타령」은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후 지배계층이 나그네로 혹은 거지·정신병자·병신 등으로 위장하여 걸인 행각을 하거나, 광대·백정·줄타기 등의 재인으로 전락하여 불렀던 구전민요이다. 음지에 사는 인간들이 속악한 세상을 향하여 던지는 야유, 풍자, 해학, 무심, 허무, 영탄 등은 웃음을 자아나게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비애감을 맛보게 하는 독특한 민족 문학적 성격이 드러난다.

「각설이 타령」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활발하게 불린 것은 광복 직후, 6·25전쟁, 자유당 시절이었다. 공화당 때인 1968년에 법으로 걸인 행각을 금지시키면서 전국에서 「각설이 타령」이 한 동안 사라졌다. 구전되던 노래를 각색하여 극작가 김시라가 연극 「품바」로 올리게 되면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전라남도 무안은 품바의 발상지다.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에 있는 천사촌을 배경으로 밑바닥 인생의 한과 아픔을 풍자에 섞어 노래한 타령이다. 품바란 각설이 타령의 후렴구에 사용되는 일종으로 장단 구실을 하는 의성어였으나, 현재는 각설이나 걸인의 대명사로 일반화되었다. 자유당, 공화당 시절에는 입방귀의 의미로 쓰였는데 아부 아첨하여 관직에 오른 자, 기회주의자, 매국노 등의 문전에서 “방귀나 처먹어라. 이 더러운 놈들아!”라는 의미로 입방귀를 뀌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과 울분을 표출했다고 한다.

일로읍 의산리는 품바의 고향으로, 일로역에서 동남쪽으로 무안중학교를 지나 인의산으로 가는 길목인 밤나무골 공동묘지 아래가 천사촌이다. 작품의 주인공 천장근은 별명이 김작은이, 본명은 천팔만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목포에서 태어나 부두 노동자로 일하다가 일본으로 실어가는 공출미 때문에 파업을 일으켜 수배를 받던 중 일로로 피신하여 걸인 행세를 하였다. 6·25때 좌익들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인을 잃었다. 자유당 때에는 100여 명을 휘하에 두고 천사회[걸인회]를 조직하여 율법을 세웠으며, 민폐를 끼치는 자는 엄하게 다스렸다. 그 후 공화당 시절 주민등록 관계로 걸인들이 연고지를 찾아 떠나고 구걸도 금지되자 땅꾼·막노동꾼 등으로 지내다가 1972년 60여세로 타계했다.

각설이란 말은 깨우칠 각, 말씀 설로 가진 것 하나 없고 조롱의 대상인 각설이가 그 상황을 뛰어 넘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학, 풍자, 날카로운 비판의 한 판 춤으로 5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걸인패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각 지방을 떠도는 각설이들이 주로 부르기 때문에 「각설이 타령」을 일명 「장타령」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각설이 타령」은 각설이들의 신세타령이고, 「장타령」은 서민들이 장의 이름과 지명을 엮어 불러 기억하기 쉽도록 만든 노래라 할 수 있다.

[채록/수집상황]

‘품바’란 명칭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신재효의 ‘한국 판소리전집’ 중 「변강쇠가」이다. 품바란 타령의 장단에 맞추어 흥을 돋우는 소리라고 하여 ‘입장고’라 불렸는데, 그 말은 ‘입으로 뀌는 방귀’란 뜻이다. ‘품’는 일인극으로 일제강점기부터 자유당 말기까지 전국을 떠돌며 살다가 간 각설이패 대장[천장근]의 일대기를 1982년 12월 무안군 일로읍 인의예술회[연출 김시라]가 주관하는 향토창작연극제에서 초연되어 4천여회 이상 국내외에서 공연한 향토극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1대 품바 정규수에 의해 1500회가 넘게 품바 공연이 이어졌다. 정규수는 연극평론가협회 회장 구히서가 제정한 히서연극상을 수상한 바 있다.

[구성 및 형식]

「각설이 타령」으로 구전되어 온 것은 대부분 사설이 엇비슷한 「숫자풀이」와 같은 유형이다. 하지만 8·15해방 이후 불리어졌던 「숫자풀이」는 ‘해방가’라 하여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다. 일반 민요, 속요 그리고 잡가에 「각설이 타령」의 가사를 이입하여 부르는 경우가 제일 많다. 민요나 잡가 가사를 발췌하여 「각설이 타령」의 곡조에 실어 부르는 경우가 있으며, 순수한 「각설이 타령」으로만 전해오는 것도 있다.

1. 악식

「장타령」은 4박자로 된 4소절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으나 간혹 8소절도 눈에 띄고, 「각설이 타령」은 4박자에 6소절, 8소절로 된 경우가 많다. 다른 노래와 판이하게 다른 것은 타령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 ‘품바’라는 입방귀를 뀌어 시작과 끝을 알림이 특이한 점이다. 상황에 따라 분위기가 다양하다. 경사, 잔치 집에서는 흥겹고 신명나게 부른다. 초상집이나 제삿집에서는 애절하거나 숙연하게 부른다. 때로는 위로한답시고 우스운 동작이나 재미있는 사설로 웃기는 경우도 있어 같은 사설 곡조지만 상황에 따라 눈물과 웃음이 크게 교차한다.

2. 속도와 장단

당겼다, 늘였다, 늘어뜨렸다, 뽑아 올렸다 등 경우에 따라 발림도 넣고, 힘 있는 드렁조에서 살며시 빠져 나와 인어걸이·완자걸이 등 그 기술이 변화무쌍하다. 장단은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등으로 맞추기도 하고, 일정한 장단 없이 자유분방하게 처리하기도 한다.

3. 시연자별 차이

그 맛이 달라서 걸쭉걸쭉 넘어가는가 하면, 한이 서린 애조로 가슴을 치기도 하고, 판소리처럼 사설조가 많은가 하면, 민요처럼 구성지게 부르는 경우 등 매우 다양하다.

[내용]

1. 「각설이 타령」

얼시구 시구 들어간다. 절시구 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요놈의 소리가 요래도오 천양을 주고 배운 소리/ 한푼 벌기가 땀이 난다. 품 품 품바가 잘이한다.// 네 선생이 누군지 남보다도 잘이한다./ 논어 맹자 읽었는지 대문대문 잘이한다./ 냉수동이나 먹었는지 시원시원 잘이한다./ 뜨물통이나 먹었는지 걸직걸직 잘이한다./ 기름통이나 먹었는지 미끈미끈 잘이한다./ 밥은 바빠서 못 먹고 죽은 죽어서 못 먹고 술을 수리수리 잘 넘어간다./ 저리시구 이리시구 잘이한다. 품바품바나 잘이한다.// 앉은 고리는 등고리, 선소리는 문고리/ 뛰는 고리는 개구리, 나는 고리는 꾀꼬리/ 입는 고리는 저고리, 품바품바 잘이한다.// 한 발 가진 깍귀 두 발 가진 까마귀 세 발 가진 통노귀 네 발 가진 당나귀/ 저리시구 이리시구 잘이한다 품바품바나 잘이한다.[전국 공통]

2. 「각설이 타령」[자진모리]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여름바지는 솜바지, 겨울바지는 홑바지/ 당신본께로 반갑소 내꼬라지 본께로 서럽소/ 일자나 한자나 들어나 보오소 일자리 없어서 굶어 죽을 판/ 이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이판사판 사까다지판/ 삼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삼일빌딩 호화판/

사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사짜기짜 살 살판/ 오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오적들이 난장판/ 육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육씨문중에 장설판/ 칠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칠전 몽둥이에 불이날판/ 팔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팔자 타령이 절로날판/ 구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구세주가 와야할판/ 십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십원짜리 하나가 아쉬울판/ 밥은 바빠서 못 먹고 떡은 떫어서 못 먹소/ 죽은 죽어도 못먹소, 술은 술이술이 잘 넘어간다/ 어허이 품바가 잘도헌다[어허이 품바가 잘도 헌다]/ 품바허고 잘도헌다[품바허고 잘도헌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소/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품바허고 잘도헌다.

3. 「각설이 타령」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왔네/ 내란 놈이 이래뵈도 정승판서 자재로서/ 팔도 감사 마다하고 돈한푼에 팔려서 각설이로 나섰네/ 각설이라 역설이라 동설이를 짊어지고 지리구지리구 돌아왔네// 동삼먹고 배운 공부 기운차게도 잘헌다/ 초당 짓고 배운공부 실수 없이 잘헌다/

논어맹자 읽었는지 자왈자왈 잘 헌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 잘헌다// 인심좋은 양반님네 심청전을 읽어 봤냐?/ 난 골백번도 더 봤다// 맘씨고운 심청아씨 삼삼백석에 몸을 팔어 맹인아빠 눈을 떴소/ 심술궂은 뺑덕어미 남에것만 탐내더니 용케 죽어서 지옥갔소/ 아가아가 울지마라 열흘 굶은 나도 있다./ 울저녁만 참아다오/ 복스러운 주인마님 먹다남을 찌꺼길랑 없다 말고/ 보태줘여// 앉은 귀신을 깍귀 두발가진 까마귀/ 세발가진 통노귀 네발가진 당나귀/ 먹는 귀신은 아귀라. [연극 「품바」 중에서]

4. 「장타령」

일자한자 들고봐 일월이송송 해송송/ 밤중새별이 완연하다 두이자를 들고봐/ 두이라니 두이라니 한나라 생기랴고/ 왜장청장 목을 안고 진주남강으로 떨어 졌네/ 석삼자 들고봐 삼칠은 불로초/ 정든 부모를 섬기자고 효자말이 완연하다/ 넉사자를 들고봐 사시장철 바쁜길/ 외 나무 다리서 만났네 다섯오자를 들고봐/ 오관청관 관운장 적토마를 빗겨타고/ 제자창작을 찾어간다 여섯육자를 들고봐/ 육관대사 성진이 팔선녀 데리고/ 희롱을 헌다 일곱칠자를 들고봐/ 칠년대한 봄 가뭄 억수장마 온다고/ 만인간이 춤을 춘다 여덟팔자 들고봐/ 팔십이 생남하여 그놈의 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설설 긁힌다 아홉구자 들고봐/ 구옥산중 늙은 중 아홉선비 거나리고/ 굽실굽실 나려온다 장자를 들고봐/ 장대중의 곽장대 광대중의 그 중의 엇[이하 생략].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각설이 타령」은 유사음을 따라 노래하기 때문에 문장상으로 모순되는 점을 가지고 있으나 그런대로 어희적 미감(美感)을 안고 있다. 이렇게 민요에서는 뜻에 얽매이지 않고 재치 있는 수사법을 대담하게 사용하여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현황]

1982년 12월에 초연된 일인극 「품바」 공연은 4천회를 넘어서게 되었다. ‘가장 낮은 사람’인 각설이의 애환을 타령으로 극화한 김시라는 김제시 김천동 출신으로 고향에서 ‘자랑스러운 전남인’으로 뽑혔다. 그 이후로도 관객이 꾸준히 동원되어 2010년 3월 현재 18명의 품바가 출현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시라에 의해 1982년 천사촌을 배경으로 한 「각설이 타령」으로 엮어 처음으로 극화한 뒤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밑바닥 인생’의 애환과 당시 사회를 풍자한 「품바 타령」의 가사와 가락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968년 6월 28일 4천회 공연 기록을 돌파하였다. 또한 한국 연극사상 최장기·최다 공연, 최대 관객동원이라는 이정표를 만들었다. 우리 연극으로는 처음으로 ‘가장 위대한 평론가는 관객’이라는 것을 입증시켰다. 1994년 ‘한국기네스북’에 기록됐고, 미국 10대 도시에서 60회 순회공연을 실시하여 백상예술대상을 받는 등 이 시대의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김시라는 『품바시대』 상·하권을 썼고, 「품바」, 「남바」 등의 희곡도 남겼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김시라는 김제시 김천동 출신으로 고향에서 ‘자랑스러운 전남인’으로 뽑혔다.
=>김제시 김천동이 있는지요? 여러 자료에 전남 무안출신이라는데?

1968년 6월 28일 4천회 공연 기록을 돌파하였다.
=>1982년에 시작됐다는데 1968? 1988년이나 1998년이 아닐까요?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관한 자료를 보내주시면 검토후 반영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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