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군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만경군의 동일도면·동이도면·북이도면을 병합하고, 당시 동이도면 공덕리에 있는 공덕저수지[일명 공덕지]에서 이름을 따서 공덕면(孔德面)이라 하였다.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던 지역으로, 백제시대에 내리아현(乃利阿縣),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이성현(利城縣), 조선시대에 만경현(萬頃縣)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
-
1895~1914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행정구역 상 옛 명칭. 갑오·을미개혁기인 1895년(고종 32)에 조선 정부는 행정체계 근대화 추진의 일환으로 기존의 지방행정구역을 조정하였다. 1895년에 금구군과 만경군을 분할하여 전주부 금구군이 되었고,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금구군은 전라북도에 속한 26개 군 중 3등군에 포함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금구군은...
-
1403년부터 1994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가 멸망하면서벽골군은 757년(경덕왕 16) 중국식 한자명인 김제군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현으로 격하되었고, 1403년(태종 3) 김제현에 지군사[1466년 군수로 개칭]를 두었고, 1466년(세조 12) 김제군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1670년 발간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
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
-
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
-
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청하면·진봉면·공덕면·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어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로 행해지면서 두내산현(豆乃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
-
두경령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시조 두경령(杜慶寧)은 송(宋)나라에서 병부상서를 지내다가 고려시대에 만경(萬頃)을 식읍지로 하사받았다. 만경은 백제 때는 두내산현(豆乃山縣)이라 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만경현(萬頃縣)이라 하였다. 고려 문종 때 현내 주산(主山)에 두씨 2세조 두지건(杜之建)을 장사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종은 동학 농민 운동이 모두 진압되고 난 후 지방 행정구역 제도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1895년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이때 만경현과 금구현이 군으로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만경군·금구군은 김제군과 함께 전주부[관찰사]에 속하게 되었다.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됨에 따라 3개 군은 전라북...
-
1914년부터 1995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일제는 기존 행정구역의 모호한 경계로 인한 행정상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지역의 자치 기구를 붕괴시키며 중앙 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1914년 지방 행정구역을 조정하였다. 이때 고려 대상이 된 것은 통폐합 대상 군·면의 규모와 인구 수 등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만경군의 관할 구역은 군내면, 남일면, 남이면,...
-
통일신라와 고려·조선 때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현재 김제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당시 이곳에는 당시 벽골·두내산·무근촌(武斤村)·수동산(首冬山)·내리아(乃利阿)·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의 고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백제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가 어떠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통일신라는 757년(경덕왕 16) 당의 방식을...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에 있는 백산면 관할 행정 기관. 전라북도 김제시를 구성하는 1개 읍[만경읍], 14개 면[죽산면, 백산면, 용지면, 백구면, 부량면, 공덕면, 청하면, 성덕면, 진봉면, 금구면, 봉남면, 황산면, 금산면, 광활면], 4개 행정동[요촌동, 신풍동, 검산동, 교월동] 중 백산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백산면사무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의 행정 서비스...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서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신리·양명리·하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신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가 되었다가 동년 8월 31일 상신리를 서도리로 변경하였다. 경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고, 마을 위아래로 하천이...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서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신리·양명리·하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신리라 하고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가 되었다가 동년 8월 31일 상신리를 서도리로 변경하였다. 경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고, 마을 위아래로 하천이...
-
757년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통일신라는 757년(경덕왕 16)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면서 전국에 걸쳐 행정 지명을 모두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고쳤는데, 그때 내리아현(乃利阿縣)은 이성현(利城縣)으로 개칭되어 김제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이성현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김제시 공덕면...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제시는 전라북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은 전주시·완주군, 남쪽은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해 있다. 김제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김제-만경평야의 중심을 이루어 온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 시설인 벽골제[사적 제111호]가 자리하고, 농경문화 체험을 주요...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김제시는 전라북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동쪽은 전주시·완주군, 남쪽은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해 있다. 김제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김제-만경평야의 중심을 이루어 온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 시설인 벽골제[사적 제111호]가 자리하고, 농경문화 체험을 주요...
-
1910년 한일병합으로부터 1945년 8·15 해방에 이르는 기간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 한일병합은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일제 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강제 편입된 사건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 또는 일제병탄(日帝倂呑)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 정...
-
1392년부터 일제강점기 전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김제의 역사. 조선시대 지방 통치제도는 이미 태종 대[1400~1418년]에 대개 확립되었고, 세조 대[1455~1468]에 일부가 개정되었으며, 이것이 그대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리게 되었다. 김제 지역에는 조선시대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는데 우선 1403년(태종 3)에 김제현이 군으로 승격되었다. 1415년(태종...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서예가. 최규상(崔圭祥)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춘곡(春谷)·설송(雪松)·설하(雪霞), 자는 백심(伯心)이다. 초명은 규하(圭夏)로 지었으나 후에 보근(輔根)이라 불렀다. 호는 처음에는 춘곡(春谷)으로 불렀다가 전주로 이거하며 설송으로 불렀고, 말년에는 설하(雪霞)라 하였다. 당호는 노하당주인(老霞堂主人) 또는 취묵헌주인(醉墨軒主人)이라 하였다. 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