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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042
한자 食生活
영어의미역 Dietary Customs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승대

[정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개설]

김제 지역은 천혜의 지리적 여건과 토질 그리고 알맞은 기후로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김제는 일찍이 농업의 발상지로 여겨져 왔다. 더욱이 백제시대에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금만평야의 복판에 수리 토목을 일으켜 벽골제(碧骨堤)라는 저수지를 시축하고 우리나라 수전의 기원을 이루어 놓았다.

이로 말미암아 주곡인 쌀의 생산은 전국적으로 식생활에 풍요를 가져왔다. 비단 쌀 뿐만이 아니라 비산비야(非山非野)에서 생산되는 보리·조·콩·기장 등도 김제는 물론이거니와 도내 공급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따라서 김제 지역은 매일 반복하여 먹는 일상음식을 자급자족하고 있으며, 여기에 사회문화적으로 필요한 명절음식과 의례음식, 향토음식 등을 만들어 먹으면서 식생활을 영위해 왔다.

이렇게 고대로부터 농경문화가 발달한 김제 지역은 의·식의 풍요로 가옥 또한 어느 곳보다 발달되었다. 역사상 이 지역의 농업 발달은 삼한의 역사와 연관이 있다. 삼한 지역은 농업에 적합한 자연환경과 금속문화의 섭취로 일찍이 농구가 발달되어 농업 생산력을 증대하였다.

특히 이 지역과 관련이 깊은 마한의 농업 기술 발전에 힘입어 삼한 전역에 걸쳐 도작과 견직 등의 수공업이 발달하였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1920년에 고대미 자료인 탄화미(炭化米)를 발견한 이래 1966~1967년에 두 번째로 호남평야의 중심인 동진강 유역에서 볍씨 자국의 토기가 발견됨으로써 도작문화의 기원과 전파 경로를 찾는 중요 자료로 등장하였다.

[도작문화]

1. 볍씨의 출토

고대 한·중·일 등 동아시아 지역 도작문화의 기원과 전파 경로 등을 추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인 볍씨 자국이 찍힌 토기 조각이 동진강 유역인 부안군 주산면 소산리와 동진면 반곡리에서 각각 출토·확인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사실은 1975년 제18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발표된 「부안지방 고대 유적군과 볍씨 자국 토기판」이라는 논문에서 밝혀졌다. 확인한 볍씨 자국 토기 조각은 1966~1967년 동진강 유역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 채집한 토기 조각으로, 1975년에 실측 조사하다가 발견된 것이다. 이는 일본에 처음으로 벼농사를 전수한 나라가 우리나라이며, 그것도 호남 지방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는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고고학계가 규명해 낸 벼농사에 관한 최초의 일본 기착지는 북구주 지역일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구주에 처음으로 벼농사를 전수한 나라가 중국 대륙이었는지 혹은 한반도였는지에 대해서는 그를 증명할만한 분명한 자료가 없었다. 다만, 고대미의 흔적 즉 낭시의 볍씨 흔적을 찾고자 많은 한국 및 일본의 고고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그 동안에도 최초로 일본 북구주 지방에 벼농사를 전수한 나라가 우리나라 한강 이남의 서해 연안 지방, 즉 우리나라 호남 지방일 것이라는 추측은 있었다. 왜냐하면 그 동안 발굴된 토기·석기 및 묘제 등에서 이곳 한서 지방의 것이 북구주 지방에서 발굴된 것들의 조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2. 수도작의 발달

김제를 옛 마한 시절에는 벽비리국(辟卑離國)이라 일컬었다. 비리(卑離)는 백제의 부리, 신라의 벌·발·불·화(火)와 같은 말로서 평야나 성읍을 표시하는 것이며, 비리국(卑離國)은 비비리국(卑卑離國)의 탈오(脫誤)로 백제의 부부리현(夫夫里縣)으로 보고 있다. 백제시대에는 벽골군이라 불렀다. 골자는 홀이라고도 쓰고 있는데 성읍을 뜻하는 우리 고어이다. 이는 모두 ‘벼의 골’이라는 뜻으로 도향의 이름으로 풀이되고 있다. 벽골제는 바로 ‘벼의 골 둑’을 말하는 것이다. 그 뒤 통일신라 때 김제로 개명되었으나, 이 또한 벼를 황금시 했던 농본사상에서 연유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즉 황금을 캐내는 벼의 둑으로서 ‘김제’인 것이다.

이렇듯 도작문화의 핵을 이루었던 벽골제는 김제 시내에서 광막한 남쪽 벌판으로 부안 가도를 달려 약 6㎞ 되는 곳인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시작된다. 신용리에서 남쪽으로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명금산 북단까지 엇비슷하게 뻗어 있는 둑을 바라다 볼 수 있으니, 이것이 곧 유명한 벽골제의 제방이다.

소백산계의 노령산맥인 모악산상두산을 비롯하여 군소연봉(群小連峰) 서북에서 발원하는 풍부한 수원을 이에 저장시켰다가 금만경평야를 위시해서 정읍시·부안군 일부 등 3개 시군의 관개몽리(灌漑蒙利)에 이용하였으니, 예전 도작문화 발상지의 기원을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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