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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173
한자 玉盛里-竹山面-
영어음역 Okse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옥성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4.08㎢
총인구(남, 여) 562명[남자 282명, 여자 280명]
가구수 250가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1914년 대옥산리의 ‘옥’자와 신성리의 ‘성’자를 따서 옥성리(玉盛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김제군 반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성리·대옥산리·소옥산리·내재리·제내리·신흥리 일부, 대촌면 신학리·산리·경제리 일부, 월산면 후장화리 일부, 홍산면 신동리·명마리를 병합하여 옥성리라 하고 김제군 죽산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죽산면 옥성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진강(東津江) 하구와 가까운 원평천(院坪川)신평천(新坪川) 사이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부안과 김제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해당하여 일찍이 내재역(內才驛)이 설치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내재역에 관리 18명, 노비 9명, 갈아 탈 수 있는 말 14필이 있던 것으로 미루어 옥성리동진강 유역의 교통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김제 주변의 교통 체계는 부안에서 내재역까지, 내재역에서 앵곡역(罌谷驛)까지, 앵곡역에서 전주까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현황]

2010년 1월 5일 현재 총 250가구에 562명[남자 282명, 여자 280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22가구가 빈집이다. 전체 면적은 4.08㎢로 대지 0.18㎢, 논 2.26㎢, 밭 0.61㎢, 목장 0.01㎢, 임야 0.49㎢이다. 서쪽으로 서해안고속국도가 지나고, 내재(內才) 앞으로 국도 23호선이 지난다. 자연마을로 내재·명마(名馬)·백바우·옥산(玉山)·장시랑·방죽안 등이 있다.

내재는 삿갓재[笠峙, 24m]를 주봉으로 한 산으로 둘러싸인 구릉 안에 있고, 아들을 많이 두기를 원하는 뜻에서 처음에는 아들 ‘자(子)’자를 써서 ‘내자(內子)’라 하였다. 얼마 뒤 재주가 많고 영특한 자손이 나기를 바라는 뜻에서 아들 ‘자’ 대신 재주 ‘재’(才)’자를 써서 내재로 고쳤다.

명마는 화초산(花草山)[30m]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말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명매기골이라고도 한다. 백바우는 마을 한가운데에 바위인 백암(白岩)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나중에 백씨들이 들어와 대옥산(大玉山)으로 고쳤다.

옥산은 마을의 지세가 작은 옥쟁반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시랑은 시랑(侍郞) 벼슬을 지낸 장씨 일가가 터를 잡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 뒤 신평천 직강 공사 후 새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다 하여 신동(新洞)이라 하였다. 방죽안은 조선시대에 역말 터가 있었고, 농사를 짓기 위해 제방을 쌓았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 표기하여 제내(堤內)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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