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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치문학교 학생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495
한자 金提致文學校學生運動
영어의미역 Student Movement at Gimje Chimun Elementary School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창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학생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43년 2월 말(음)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44년 11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마쓰오카 집(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동계리 중리뜸)지도보기
관련인물/단체 박병화|황염규(黃濂奎)|김제경찰서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군 백구면 유강리에 있었던 치문학교 학생들이 벌인 항일 운동.

[역사적 배경]

김제 치문학교 학생운동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전황은 날로 악화되었고, 그에 비례해 한국인들의 독립 열망이 커지고 있던 상황에서 발생했다.

[발단]

1943년 2월 말 민속놀이의 하나로 지난해 액운을 쫓기 위한 ‘매굿’을 치는 날 밤에 지금의 백구면 유강리에 있던 치문학교 5학년 급장 박병화가 소란한 틈을 타서 공덕면 동계리 중리뜸의 일본인 여교사 ‘마쓰오카’ 집에 몰래 들어가 일장기를 찢고 도주하면서 시작되었다.

[경과]

일장기 훼손 사건은 즉시 신고가 되어 백구면 지서 소속 경찰이 출동하여 박병화를 체포한 뒤 조사하였는데, 그가 연소자인 데다 본인이 폐병 환자라고 진술하는 바람에 훈방되었다. 그 무렵 치문학교 남쪽 철도변에 있던 ‘시마모토’의 집 앞길에서 학생 수명이 밤에 일본어로 ‘장개석 만세’를 제창하고 도주하는 사건이 있었다. 또 만경강 제방 위 호남선 횡단로 남쪽에서 유강리 사이의 철로 고정용 큰 못이 50여 개나 뽑혀 열차 통행이 곤란한 일이 벌어졌는데, 이를 선로 보수원들이 발견하여 부용역에 알리고 증거물을 제시하였다. 부용역 직원들이 이리역에 두둔하고 있던 일본군 헌병대에 긴급 연락하고 헌병대는 이를 관할인 김제경찰서 고등계에 이첩하였다.

[결과]

김제경찰서 고등계에서 수사한 끝에 치문학교 5학년 담임교사인 황염규(黃濂奎)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강의를 했기 때문에 벌어졌다고 판단했다. 김제경찰서는 황염규를 체포하여 7개월 동안 가둔 뒤 1944년 11월 11일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하였다. 치문학교는 11월 2일 폐교 조치되었다. 1993년 황염규는 건국포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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