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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942
한자 金一植
영어음역 Gim Ilsi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채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운동가|행정가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성별
몰년 1950년경연표보기
본관 경주
대표경력 초대 광활면장

[정의]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사회운동가이자 행정가.

[개설]

김일식(金一植)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에서 태어났다. 8·15해방 후 초대 광활면장을 역임하였다.

[활동사항]

김일식은 1923년 일본인 재벌 아부방차랑(阿部房次朗)이 지금의 광활면을 간척지로 만드는 공사를 벌일 때 아버지를 따라 광활면으로 이사를 왔다. 광활면은 당시 동진강 하류의 개펄이었는데, 아부방차랑이 공사비 150만 원을 들여 6년에 걸쳐 제방 10㎞를 구축하고 1,830㏊의 간척지를 막아 농경지로 개답한 것이다.

김일식은 아부방차랑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서 농사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농업기술 전문학교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2년 뒤 학교를 수료하고 귀국하여 동진농업주식회사에 사무원으로 들어가 은파리 4답[현재의 김제시 광활면 은파리 진흥마을] 감독으로 일하게 되었다.

8·15해방 후 치안이 불안해지자 광활 지역에서도 민족청년단이 구성되었는데, 이때 군당 부단장으로 뽑혀서 당시 홍희종 군당 단장과 함께 지역 개척에 앞장섰다. 당시 광활 지역은 행정은 진봉면에서 관장하고 치안은 성덕지서에서 담당하는 등 행정과 치안이 각각 분리되어 있어 주민들의 불평이 많았다. 이에 김일식홍희종과 함께 치안 행정의 독립을 강력히 주장했고, 마침내 1947년 4월 5일 김제경찰서 동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이후 주민들이 지리적인 이유를 들어 광활 지역을 진봉면에서 분리하여 면으로 승격시켜 줄 것을 당국에 건의하여, 1949년 10월 22일 「전라북도령」 제10호에 의거 진봉면에서 광활면이 분할되었다. 김일식은 그 해의 선거에서 광활면 초대 면장으로 당선되었다. 김일식은 이후 무엇보다 교육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뜻을 같이하는 몇몇 친지들을 모아 야학당을 설립하여 우리말을 가르치면서 문맹 퇴치에 앞장섰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지 얼마 후 실종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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